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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Aug 01. 2024

발걸음 : 에메랄드 캐슬, 1997

운명의 전조

혹시 운명을 믿는 편인가?

나의 경우엔, 그리 될 것은 그리 될 전조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기억을 거슬러, 에메랄드 캐슬의 발걸음이 나온 발매일을 찾아보았다.

1997년 4월 1일.

1997년. IMF 라는 사건만이 내 머릿속에 있었는데,

그랬구나. 그 해 우리에게 에메랄드 캐슬이 있었구나.


IMF 전까지 대한민국 사회는 인심이 참 좋았다.

눈높이를 낮추면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직장 내 복지도 선진국을 따라가며 나날이 개선되고 좋아졌다.

그 당시 내가 근무하던 곳과 내가 살던 집은 꽤나 거리가 멀었는데,

회사에서는 본인의 차량이 있는 사람에게는 따로 주유비를 지원해줬다.

그 주유비에 눈이 멀어 나도 운전면허를 땄다.

그리고는 깍두기로 불리던 빨간색 모닝을 헐값에 구입했다.


차는 생겼으나, 서툰 운전에 날마다 진땀이 났다.

출근할 일이 아득해서 잠이 잘 오지 않았고,

그러니 남들보다 1시간 먼저 출발해서 한적한 도로를 달려 쓸데없이 일찍 출근했다.

그러고 나면, 퇴근할 일이 또 깜깜했다.

퇴근은 나 먼저 출발할 수 없으므로,

차선변경을 못한 채 버스 뒤를 졸졸 쫒아가다보면, 내 차도 정류장마다 다 멈춰섰다.

거기서만 끝나랴? 집앞 주차장에 주차하는데도 하세월이었지.

이쯤은 누구나 다 한번 겪을 초보운전 시절이 아닌가.


그 시절 나에게는 나만 바라보던 한 남자가 있었다.

(이전 편에 말했듯이 현 남편인 남자분)

그땐 친한 후배로 지냈는데, 내가 차를 사서 쩔쩔매고 있는 걸 알고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운전연수를 해주겠다고 나선 건 물론이고,

내가 낸 접촉사고에도 자기가 나서서 소명하고 사과했다.

그러고도 안되겠던지 출근길에 자기가 옆에서 같이 가주겠단다.

그리고 퇴근 할 때 다시 데리러 오겠단다. (그는 아직 학생이다)

그럼 는 어떻게 다시 돌아갔지?

아...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면 조금 더 자세히 기억하고 있으면 좋았을걸...

슝~ 날아가서 그 시절의 우리를 바라보고 싶어진다.

어리고 풋풋한 우리 영혼을 들여다보면, 어떤 드라마 영화보다 재미있을텐데...


그때 우리는 사귄다고 생각한 적 없고, 요즘 말로 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마음과 호의를 몰랐던 건 또 아닌거 같다.


그가 나를 데리러 온 길에, 드라이브를 했다.

그게 단 한번인지 여러번인지 기억이 흐리다.

내가 운전해야 실력이 늘었을텐데,

그가 운전을 잘하니까 그가 운전하는 옆에 태연히 앉아있었다.

그러니 운전이 늘었을 리 없지...


꽤 멀리 대청호 주변까지 달려갔던 기억이 있고,

해가 지고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나오던 노래.

에메랄드 캐슬의 발걸음.

그 노래의 참을 수 없는 후렴구를 함께 불렀다.

- 처음부터~~ 너~란 존재는~ 내겐 없었어~~

그 밤의 드라이브가 내 기억에 또렷이 남은 이유다.


처음 가보는 길에 호기심이 많은 건 그때부터였던가.

우리가 살던 대전의 외곽, 경계의 멀리까지 운전해 나왔다.

이 길을 더 가도 괜찮은가? 불안할 만큼 멀리.

멀리서 도심의 불빛이 반짝거렸고, 저건 어디지?

저기까지 가볼래? 하던 그 곳.

지금 우리가 20년을 넘게 살고 있는 곳이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동네로 돌아올 때면 그때 생각이 든다. 그건 운명의 전조 같은 거였어.

결국 여기서 우리가 살려고 그 때 이 언덕을 함께 넘어왔던가.

우리의 운명은 1997년의 그 밤부터 움트고 있었던가 싶어지는.





발걸음 (youtube.com)


발걸음  4:09


해 질 무렵 날 끌고간 발걸음
눈 떠보니 잊은 줄 알았던 곳에
아직도 너에 대한 미움이 남아 있는지
이젠 자유롭고 싶어
시간은 해결해 주리라 난 믿었지
그것조차 어리석었을까
이젠 흘러가는 데로 날 맡길래
너완 상관없잖니
처음부터 너란 존재는 내겐 없었어
니가 내게 했듯이
기억해 내가 아파했던 만큼 언젠가 너도
나 아닌 누구에게 이런 아픔 겪을테니
미안해 이렇게밖에 할 수 없잖니
정말 이럴 수 밖에
너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너를 사랑할 수 없고
너를 미워해야 하는 날 위해
처음부터 너란 존재는 내게 없었어
니가 내게 했듯이
기억해 내가 아파했던 만큼 언젠가 너도
나 아닌 누구에게 이런 아픔 겪을테니
미안해 이렇게밖에 할 수 없잖니
정말 이럴 수 밖에
너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길
너를 사랑할 수 없고
너를 미워해야 하는 날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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