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섬의 코나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에서 출발한 지 12시간 만에 도착한 곳이다. 저녁비행기라 숙면을 취하지 못했고 돌봐야 할 어린아이들이 함께한 여행이었다. 피곤이 몰려왔다.
이번 여행은 친정엄마도 함께 했다.
대부분의 모녀사이가 그러하듯 출산 후 친정엄마의 도움이 절실해졌고, 아예 친정 근처로 이사를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보는 사이라 친정엄마와 함께 여행도 자주 다녔다.
처음엔 나도 초보 엄마였고 아이도 어렸다. 아이를 보는 게 서툴고 능숙하지 못했기에 경험 많은 어른의 도움이 필요했다. 엄마는 유모가 되어 아이들을 봐주기도 하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우리 부부의 어리숙한 부분을 채워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에게도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고 엄마는 나이가 들며 아이 봐주던 일을 조금씩 덜어내기 시작했다.
함께 태국 여행을 갔을 때였다. 공항에서 짐을 찾느라 여권을 잠깐 엄마에게 맡겼다. 그런데 여권을 어딘가에 떨어트린 것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어린 손주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 여권을 흘린 줄도 몰랐단다. 다행히 누군가가 찾아 주어서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사건은 평소 꼼꼼한 당신 모습에 오점을 남겼다. 물건을 잃어버린 경험도 없는 사람인데, 잃어버린 것도 몰랐다니! 아마도 이때 엄마는 자신의 포지션을 바꾼 것 같다.
‘왕년에 대장부’ 기질이 있던 엄마는 집안의 모든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었다. 일처리도 또렷하게 잘하는 사람이라 가족들이 많이 의지했다. 자기 주도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날부터 자식에게 주도권을 넘기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리 부부의 의견을 존중하며 조용히 따르는 여행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 나를 따르라 ‘ 는 자의식을 내려놓고 변화를 선택했다.
그래서 더욱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이 편안했다. 엄마를 신경 쓰며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뒤에서 우리 부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아이들을 함께 케어해 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런 친정 엄마와 함께 온 하와이 여행이다. 이제 렌터카를 빌리러 가는 일만 남았다. 셔틀을 타고 렌터카 사무실에 가면 된다. 먼저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조금 기다리니 우리가 탈 버스가 왔다.
‘버스 온다!’ 남편이 외쳤다.
짐을 챙겨 아이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친정엄마가 타지 않는다.
정류장엔 아무도 없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7살 된 딸이 말한다.
“할머니 저 버스 탔어.”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킨 버스는 이미 출발했다.
응?
하늘이 노랗다.
렌터카만 빌리면 12시간 여정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이동이 휴식으로 바뀔 시간이 머지않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닥친 사건으로 휴식의 시간이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저 버스는 몇 번이었지? 어디 가는 버스인가?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었다.
다행히 친정 엄마가 핸드폰을 갖고 있었다. 부디 전원을 켜서 로밍을 해야 하는데, 자동 로밍 제한을 걸어 놓았었다. 우리의 ‘왕년에 대장부’는 핸드폰이라는 전자기기엔 도통 기를 펴지 못하는데 로밍 제한을 잘 풀 수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가 간다!
통화에 성공했다.
첫 번째 정류장에서 하차해 주변에 보이는 것을 설명해 주면 우리가 찾아가 보기로 했다.
친정엄마는 ‘버스 온다’는 소리를 듣고 눈에 보이는 첫 번째 버스에 올라탔다고 한다. 우리가 짐을 챙긴 후 버스에 타기를 기다렸으나 버스가 출발한 것이다. 엄마도 당황해서 뒤늦게 정류장을 돌아봤지만 정류장에 우리는 없었다.
이윽고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했다. 다행히 코나 공항은 시골 같은 한적함이 있는 곳이다. 정류장부터 렌터카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5분~10분 내에 도착할 거리였다. 아주 가까웠다. 바둑판무늬의 너른 주차장에 각자의 구역을 나눠 렌터카 회사들이 위치해 있었다.
엄마가 탄 버스도 다른 회사의 렌터카 셔틀버스였고 하차한 곳을 알아낸다면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우리는 당황한 마음을 달래고 남편은 렌터카를 찾으러, 나는 친정 엄마를 찾으러 갔다. 전화로 엄마의 위치를 파악한 후 한달음에 달려갔다. 다행히 뛰어가면 닿을 거리였다. 짧은 이별 끝에 만남이 얼마나 반갑던지.
이번 일을 계기로 엄마는 태국 여행에 이어 또다시 새로운 포지션을 장착했다.
'앞장서지 않기. 무조건 뒤따라 가기.'
어릴 적 엄마가 내게 무수히 많이 했던 그 말이 떠오른다.
"엄마 잃어버리면 돌아다니면서 찾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엄마가 찾아갈게."
이제 내가 엄마에게 똑같이 말한다.
"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내가 찾아갈게."
엄마는 여행을 통해
엄마의 역할을 나에게 하나씩 넘겨주었다.
세대교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