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그동안 아이들과 해외여행은 동남아 휴양지만 갔었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좋아하기도 하고 거리도 가깝고 휴가답게 쉴 수 있는 곳이 동남아 휴양지이기 때문이다. 동남아 휴양지에서 호캉스를 즐겼다. 근처 관광지가 있더라도 가지 않았다. 날씨도 더운데 아이들까지 데리고 땀 흘리며 경치를 보는 게 의미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와이 여행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하와이를 동남아와 같은 휴양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에메랄드 빛 바다만 상상하며 여행을 계획했던 게 오산이다.
하와이엔 관광지가 많으며 쇼핑의 천국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런 하와이를 몰랐다는 건 하와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솔직히 ‘모른 척하고 싶었다’고 정정해야겠다.
관광지와 쇼핑 장소가 많으면 걷는 구간이 많다는 뜻이고 그럼 아이와 함께 가기에 어려운 여행지라는 뜻이다. 하와이로 여행지를 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확정한 여행지를 힘들 것 같다는 이유로 변경하고 싶지 않았다. 애들이 좋아하는 수영을 할 있으니 견딜 수 있을 거라는 최면을 걸며 여행을 떠났다. 내가 몰랐던 건 수영도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라는 것과 관광지와 쇼핑몰이라는 옵션이 여행에 얼마나 큰 난관이 될지 그 크기를 짐작하지 못했을 뿐이다.
관광지는 어른에게나 뜻깊고 흥미롭지 어린아이들에게는 힘들기만 하다. 멀리 보이는 멋진 산의 풍경. 감탄을 부르는 맑은 하늘, 아름다운 꽃 한 송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아이들은 개미 한 마리. 메뚜기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가 즐거움을 주는 존재이다. 이들은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 앞 놀이터에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먼 거리를 이동하여 곤충이나 동물을 보는 과정이 피곤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 20대까지 엄마의 ‘저 하늘 좀 봐. 너무 예쁘지 않니?”라는 질문에 ‘매일 보는 하늘이 뭐?’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아이들이 경치에 감탄하길 바라는 건 욕심일 것이다.
쇼핑도 마찬가지다.
장난감 가게가 아닌 어른들 물건으로 가득한 가게의 쇼핑은 아이들에게 지루한 대기 시간이 될 뿐이다. 남편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연애할 때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여자친구의 쇼핑 시간을 참아 주었을 뿐 결혼 후 함께 쇼핑한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그러니 아이들은 어른들의 쇼핑 시간을 더욱 참기 힘들 것이다.
하와이 여행에 유모차 한 대를 가져갔다. 둘째 아이가 외출할 때 꼭 필요한 게 유모차이기 때문에 고민 없이 챙겼다. 그런데 간과한 사실이 있다. 7살 큰애도 아이라는 사실이다.
둘째를 낳은 후 큰애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무얼 해도 동생보다 잘하기 때문에 다 큰 아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째가 태어났을 때 겨우 4살인 꼬마였는데, 줄곧 큰 아이를 큰애 취급했다. 의젓한 모습에 대한 기대치가 커서 여행도 어른처럼 잘 견딜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래서 당연히 유모차는 어린 둘째의 것. 사실 7살은 유모차 탈 나이가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여행지에선 큰 애도 앉아서 쉴 수 있는 유모차가 필요했다.
많이 걷다 보면 쉽게 피곤해 어른도 의자에 앉아 쉬고 싶다. 7살 큰애가 그랬다. 호시탐탐 동생의 유모차를 노렸다. 1인용 유모차지만 아이들이 작아 두 명이 겹쳐 앉을 순 있다. 오랜 시간 이동은 불편하지만 잠깐은 괜찮다. 하지만 둘째가 너그럽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누나가 원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소유욕이 강해져 내 자리를 침범한 누나를 물리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는 곧 싸움으로 번졌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은 더 피곤했다.
이렇게 여행하는 내내 유모차와 씨름했다. ‘유모차를 서로 차지하려는 아이들의 다툼’과 ‘유모차를 하나 더 사야 하는 걸까?’하는 내적 갈등에 시달렸다.
결국 유모차를 사지 않았지만 애초에 쌍둥이 유모차를 챙겨가지 않은 걸 여태 후회한다.
유모차가 두대였다면 여행이 많이 편해졌을까? 그랬다면 하와이 여행에 대한 만족도가 몇 프로 더 상승했을까 궁금하다.
어쨌든 늘 다리 아픈 아이를 케어하느라 부부가 번갈아 가며 업고 다녔다. 너무 피곤했다.
이런 피로의 누적으로 여행을 밤늦게까지 지속할 수 없었다. 숙소로 빨리 귀가해 쉬고 싶었다. 저녁은 거의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온 후 숙소에서 먹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여행을 가더라도 2~3일 짧게 다녀온 후 집에서 휴식을 하며 충전했다. 그런데 휴식 없는 보름간의 강행군은 당연히 힘든 일정일 것이다.
늘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음날 차를 타고 나가는 일정을 반복했다.
쉬고 싶어서 숙소의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걸 선택해도 그건 내게 운동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쉰 날은 없었다. 큰 맘먹고 온 하와이인데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쉬움 없이 다 보고 싶은 마음에 한국인의 여행 스타일 대로 열심히 밖으로 나갔다.
나 혼자 다니기에도 피곤한 스케줄이었다. 그런데 애들까지 챙기며 다니려니 더욱 피곤했다. 피곤함을 숨기지 못하는 맑은 영혼의 아이들이 힘들다고 징징거린다. 남편은 하와이 여행 내내 입안이 다 헐었다. 극기 훈련이었다. 무엇을 위해 이 여행을 온 것인지 헷갈린다. 우리 부부는 밤에 숙소 1층에 있는 BAR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지 못한 채 한국에 돌아왔다. 하와이 밤거리를 거의 보지 못했다. 아쉬움이 가득하다.
극기 훈련 같은 힘든 기억이 가득하지만 여행을 후회하진 않는다. 이런 기억이 여행을 더욱 강렬하고 오래 추억하게 하니까. 하지만 동일한 조건으로 또 가라고 한다면 고민하겠다. 미취학 아동과 하와이 여행은 극기훈련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 하와이 여행을 갔다면 더욱 즐거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누군가가 미취학 아동과 하와이 여행을 계획한다면 꼭 유모차를 챙기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리고 덧붙이겠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미취학 아동은 동남아 휴양지에서 수영하며 쉬는 게 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