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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 Mar 12. 2024

실존하는 하와이버전 비둘기 아저씨

하와이 해변에 가기 전 꼭 필요한 준비물이 있다.

바로 먹을거리다.

우리나라처럼 해변 앞에 편의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변 근처에서 식당을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와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카일루아 비치도 예외는 아니다

.

그래서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을 준비해 비치로 출발했다.


카일루아 비치 뒤편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초록색 풀로 가득한 공원 곳곳에 테이블이 있었다. 물놀이를 시작하기 전 이 공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테이블에 앉아 준비해 온 도시락을 펼치고 나니 이곳이 외국임을 실감한다.

한적한 외국 공원에서의 피크닉은 늘 꿈꿔왔던 바다. 이 장면을 인스타 감성으로 찍어보았다.

그러나 인스타 감성이 담긴 사진과 현실 속 세상은 달랐다.


1. 밥이 뭣이 중요하냐며 빨리 바다에 가서 첨벙거리고 싶은 아이들과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나의 몸부림.

2. 외국이라는 낯선 환경에 사람들도 보이지 않아 왠지 모를 으스스함 

(나중에 보니 사람들은 모두 해변 앞에 모여 있었다.)

3. 숙소에서 카일루아까지 40분 거리지만 근처에서 헤매느라 한 시간 지나 도착했다.

그래서 식어버린 도시락의 온도.

4. 먹을 것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몰려든 비둘기들.

5. 비둘기만 보면 날려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

(밥 먹는데 옆에서 꽤나 푸드덕거리며 먼지를 날렸다.)


그렇게 감성 피크닉 아닌 현실 피크닉을 마친 후 수영하러 비치로 갔다. 카일루아 비치는 맑은 물 색깔과 고운 모래를 갖고 있다. 수심도 얕어서 어린이와 함께 물놀이하기에 좋은 해변이다. 이런 점이 좋아서 하와이 여행 중 두 번이나 방문한 곳이다. 아이들과 바다에서 파도타기 놀이를 신나게 한 후 잠시 모래사장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그때 갑자기 시선을 사로잡는 광경이 펼쳐졌다. 비둘기가 떼로 나타났다. 수십 마리가 넘는 비둘기 떼가 한 곳을 향해 날아간다. 마치 철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가는 모양새다. 그들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한 분이 있었다.


비둘기들은 아저씨 근처로 하나 둘 착지하였고, 몇 마리는 어깨나 무릎에 내려앉았다.

영화 ‘나 홀로 집에’ 속 비둘기 아줌마가 떠올랐다. 하와이 버전의 비둘기 아저씨였다.

다만 이분은 노숙자로는 보이지 않았고, 비둘기를 이끌고 장소 이동을 한다는 점이 달랐다.


아저씨는 자신을 찾아온 비둘기에게 모이를 흩뿌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을 하며 손을 한번 들었다.

놀랍게도 그 손짓에 비둘기들이 모두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장관이었다. 그런데 그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반대편 방향으로 날아갔다. 비둘기가 먹이를 향한 집념이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손짓에 ‘응! 우린 이제 배불러. 그럼 안녕!’ 하고 인사하며 헤어진다고?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오해였다. 비둘기들은 몇 백 미터를 날아가다가 방향을 돌려 다시 아저씨에게 날아갔다.


하늘에 그들만의 유턴 신호등이 있는 것처럼 턴을 하였다.

헤어짐이 아니라 다시 먹이를 얻기 위한 아부였던가?

먹이를 먹을 때마다 비행쇼를 보여주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인가?

아저씨에게 비행쇼를 보여주려면 앞으로 나아가야지 왜 뒤편으로 날아간 것일까?

내게 이런 궁금증을 한 아름 남기고 아저씨는 비둘기 떼를 이끌며 해변을 따라 걷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광경에 아이들은 열광했고 나는 어리둥절했다.


‘해변’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새가 무엇인가? 누구나 갈매기를 먼저 떠올릴 거이다. 우리나라에는 새우깡에 길들여진 갈매기가 있다. 갈매기들은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어도 오고, 배를 타도 따라온다. 그래서 바다에 사는 새가 갈매기라는 건 우리 집 애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불현듯 나는 아까 점심 먹던 공원에서 본 비둘기가 이 광경의 복선이었음을 깨달았다.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 해변이 비둘기의 서식지였던 것이다. 우리가 점심 먹을 때 몰려와 먹을 것을 갈구했던 비둘기들은 아이가 쫓아내도 다시 날아와 테이블 근처에 머물렀다. 이 끈기에 탄복해 사람들은 비둘기에게 남은 음식을 주었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비둘기는 쉽사리 사람 곁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에 물음표가 계속 생겨난다.

이 아저씨는 언제부터 모이를 주기 시작했을까?

이 숙련된 비행쇼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해변엔 며칠에 한번 나오는 건가?

매일 지속되는 사이인가?

이 아저씨가 안 나오면 이미 길들여진 비둘기들은 어디서 배를 채울까?

갈매기와 비둘기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

그리고

 

이곳엔 갈매기가 없을까?


그렇게 나는 이제 해변을 생각할 때 갈매기가 아닌 비둘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하와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카일루아 비치의 기억이 비둘기 떼로 뒤덮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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