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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 Feb 06. 2024

한밤중 호텔에 울려 퍼진 그놈 울음소리

하와이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큰 걱정거리가 있었다.

과연 아이가 비행기를 잘 탈 수 있을까?’ 이다.

생각해 보자.  이 아이는 태어난 지 겨우 3년차인 사회생활 새내기.

내 안의 본능에 충실할 때이다. 간신히 배변의 본능을 제어하기 시작한 유아기다.

똥오줌 가리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내 감정을 숨길 수 있는 우아함은 미처 습득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여행의 시작이 비행기라는 밀폐된 공간!

8시간을 앉아서 버텨야 하는 것이다.

그럼 상당히 불편하겠지. 이제 본능이 움직일 때다.

답답하다는 생각에 미치면 칭얼거림으로 시동을 걸면 된다. 그래도 개선의 여지가 안보이면 본인이 느끼는 불편의 크기를 보여줄 것이다.  이 때 갖고 있는 모든 능력치를 보여줄 공산이 크다.


소리지르기, 울기, 눈물, 콧물 범벅하기, 발버둥이라는 몸짓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할 것이다.

비행기에 탑승중인 많은 사람들은 배려해야 할 대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배려는 사회성을 장착한 엄마가 해결해야 할 몫.

이렇듯 나에겐 아이와 비행기 타기라는 첫 관문이 공포영화처럼 두려웠다.


그런데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엄마 몰래 한 뼘 더 성장해 있었다.

여행이 즐거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기분 좋은 설렘으로 무장한 채 비행기 탑승을 기다려 줬다.

게다가 이렇게 탑승한 비행기 앞좌석에서 아이는 대단한 걸 발견한다. TV가 틀림없는 기내 모니터를 보고 열광했다. 집에 TV가 없기 때문에 무려 일인당 한 개씩 주어진 미디어의 등장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어린이 프로그램의 종류가 너무 많아 비행 시간내에 다 시청할 수 없을 지경이였고, 심지어 게임도 가능하다. 아이는 리모콘을 요리조리 누르며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모를 선택장애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설렘이 너무 과했다는 것이다.

밤 비행기를 타서 취침 시간이 지났는데, 흥분한 상태라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자극이 너무 많아도 탈이였다.

그래도 울면서 다른 승객들께 민폐가 되는 것보다는 웃으며 비행기를 타는 게 낫다고 위로하며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거의 밤을 꼴딱 샌 채로 하와이 호눌룰루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제 빅아일랜드로 간다.

이는 국내선 비행이 한 번 더 남아 있다는 뜻이다.

환승 대기를 하고 비행기를 또 탔다.

국내선 이동시간은 한시간도 안 되지만, 국제선에서 보던 모니터가 없다. 드디어 칭얼대기 시작한다.

수면도 부족했고 몸도 피곤했을 터였다. 어른인 나도 힘들었으니 아이는 오죽했을까.

이런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준비한 게 있다. 몰래 사 놓은 장난감을 깜짝 선물로 안겨주었다. 언박싱하는 즐거움으로 잠깐 시간을 벌었다.




빅 아일랜드에 도착 후 렌터카를 빌려 호텔 체크인을 했다.

한국에서 출발한지 거의 하루가 지났고 긴 이동이 마무리되었다.

드디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숙소에 도착하면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두번째 오판이였다.

수면부족과 시차적응이 동시에 찾아왔다.

공포영화 같은 일은 비행기 안이 아닌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피곤하면 자면 되는데, 이렇게 쉽게 연결되는 눈꺼풀 닫기라는 본능이 따라오지 못했다.

아이는 이 상황에서 엉뚱하게도

아까 써먹지 못한 ‘본능 동원 세트’를 꺼내 들었다.




동화책에서는 종종 어린이들의 이런 서툰 감정표현을 내 안의 숨겨진 공룡이 나온 것이라고 묘사한다.

화가 난 공룡을 잘 달래서 돌려보내면 된다고. 공룡과 나를 분리시켜 준다.

이 사실을 알면 6500만년전 멸종한 공룡이 너무 억울하여 벌떡 복원되어 나올 일이다. 이 세상에 없다고 공룡을 포악한 이미지로 어린이들에게 각인 시키는 게 맞는 건가요?

아무튼 나는 동화책에서 알려준 대로 내 아이가 아닌 공룡과 맞서 싸우고 있다.

소리지르고 울면서 에너지를 최대화하니 잠이 올 리 만무하다.

진정시켜야 하는데, 피곤이 극대화된 아이는 쉽사리 공룡의 탈을 벗지 못했다.

하와이의 시간은 자정이 넘었고,

아이는 계속해서 울고 있다.

나도 속으로 운다.

이 리조트의 방음 상태는 어느 정도일까?

아파트에서도 새벽에 울면 위 아래층으로 소음이 전달된다.

리조트는 더욱 방음에 취약할텐데,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으니, 차라리 비행기 안에서 울었으면 리조트에서 괜찮지 않았을까.

기내 안에서도 아이 울음소리는 승객들에게 짜증을 유발했을 것이다.

그래도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건데,

하와이에 휴식하기 위해 온 숙박객들에게

한밤중 아이 울음소리라는 경우의 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런 민폐가 있나.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고 몸 둘 바를 몰랐다.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가 아닌 호텔에서의 폭발은 나를 더 지치게 했다.

그렇게 한시간여의 씨름 끝에 아이의 공룡은 사라졌고 잠들게 되었다.




다음날, 긴장이 풀린 나는 몸살에 단단히 걸려 하루 종일 호텔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하와이에서의 여행이 시작 되었다.


#하와이#하와이여행#아이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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