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은 여행*8] 비바람

귤과 함께 서귀포, 9일 차

by 천백희

오늘은 아침 일찍 요가인데 무슨 마음의 흐름인지 더 일찍인 4시 50분에 일어났다... 이럴 수가.

정신이 들어서 일어나서 캐릭터 그림을 끄적거리며 그리다 피곤함에 5시 40분쯤에 다시 잠들었다가 6시 반쯤 일어났다.

일주일간 계속 날씨가 좋았는데 오늘은 새벽부터 엄청나게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 소리에 깬 건가? 새벽 어스름에 몰아치는 파도들이 언뜻 보였던 것도 같다. 게다가 문자로는 호우주의보 경보가 내렸다.

다시 자고 일어났더니 상당히 피곤했지만 그냥 화장 등을 생략하고 요가하는 곳에 가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비오는 12월 새벽 제주 귤나무들

아유 근데 버스 타러 가는데 진짜 난리 부르스 우산이 버스 타러 가는데만 한 다섯 번 뒤집어졌다.

엄청난 바람을 뚫고 버스를 타러 가자 미리 시간을 본 버스가 금방 와서 그나마 얼른 몸을 실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서 요가학원까지 6분 정도 걸어가야 했는데 전쟁도 그런 전쟁이 없었다.

우산이 대략 10번은 뒤집어지고 아무리 비 안 오는 쪽으로 몸을 돌려도 다른 방향에서 우산이 뒤집어져서 난리 부르스였다.

우산도 막내 고모께서 일본에서 사 온 우양산 겸용 작고 가벼운 거였는데. 우산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이걸로 어떻게 학원까지 버틸 수 있나 싶기도 하고

우여곡절 끝에 학원에 도착하자 패딩은 전부 젖어있고 머리도 다 난리이고 (오늘따라 드라이가 맘에 들게 잘 됐는데, 어쩐지!) 우산은 그래도 잘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신발도 다 젖고 안에 양말도 젖고 입고 간 청바지도 죄다 쫄딱 젖어있었다. 근데 또 온도는 따뜻해서 패딩이 더워서 땀나는 이상한 날씨.

고생 고생하며 갔는데 심지어 7시 33분이라 너무 일찍 도착해서 학원 자체가 오픈을 안 해있었다. 이런...

그래도 약 40분쯤엔 직원분이 오셔서 문을 열어줬다. 범섬이 보이는 바다 뷰 요가였는데 도착하자 비가 너무 미친 듯이 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의 폭풍의 언덕이었다.

범섬 배경의 요가 원데이 클래스가 열리는 "프립캠프"

그래도 건물 안은 무척 따뜻해서 더웠다. 축축해진 짐들을 책상에 펼쳐두고

카페와 작은 요가 공간이 마련된 곳에 가서 사진을 찍고 몸을 풀고 있자 사람들이 한두 분 오시고 선생님도 오셔서 수업 시작을 했다. 총 6명이 하는 수업인데 친구들인 3분은 좀 나중에 오셨다. 비가 그렇게 오는데도 전원 참석! 그만큼 탐나고 인기 있는 수업이긴 했다. 12월은 거의 꽉 차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1번째로 도착한 덕분에 가장 뷰가 잘 보이는 뒷자리 맨 오른쪽을 선점. 범섬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였다.

요가 선생님은 차분한 분위기로 너무 힘들지 않게 수업을 잘해주셨다. 날도 운동하다 보니 비가 좀 개서 멀리로 범섬이 아련히 물안개 사이로 보이는데 그것도 너무나도 운치가 있었다! 힐링이 저절로 되더라.

요새 늦잠 자다가 아침 댓바람부터 비바람을 맞고 와서 요가를 하려니 살짝 띵하기도 했지만 참 좋았어

도착한 직후. 비가 너무 내려서 범섬이 보이지 않는다.
"프립캠프" 내부
수업 시작 전... 비가 점점 많이 온다.

수업이 끝나자 날이 더 개고 해가 떴다. 수업 참석하신 분 중 활발한 분이 계셔서 그분이 사진도 찍어주시고 나도 최선을 다해서 그분의 인생(?) 사진을 찍어드렸다.

범섬을 배경으로 브릿지

그 후 그분이랑 어쩌다 보니 대화를 나누게 되어서 엄청 수다를 떨며 거기 프로그램에서 주는 커피도 홀짝홀짝 마셨다. 수업이 9시에 끝났는데 거의 10시 10분까지 수다를 떨었나 봐. 사진 찍고. 맛집도 공유하고 서로 이야기 엄청 하다가 결국 그 근방 맛집에 같이 가게 되었다.

밝아졌다! 거짓말처럼 갠 신기한 날씨!

이야기로는 나를 대략 20대 후반으로 생각하시는 느낌이었고 일하신 지 6년 차라는데 왠지 나랑 나이 차가 많이 나진 않으실 것 같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성격이 너무 좋으셨다. 직장인이라 1주일을 어떻게 빼서 어제 약간 공포에 떨며 오셨고. 내일은 친구분들이 오셔서 2박 3일 나머지는 남자 친구 분과 같이 보내실 거라고 하셨다. 혼밥을 싫어하신대서 신기했고 성격이 너무 좋으셔서 낯가림이 있는 나와도 활발하게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찾아간 세계 음식 식당은 내일부터 휴가이신데 우리가 간 날 딱 열어서 너무 뿌듯하고 맛있게 먹었다. 비바람을 맞아 따뜻한 게 끌렸는데 인도네이아식 가정식이라 쌀국수도 있고 코코넛 밀크가 들어간 부드러운 카레도 굉장히 맛있어서 다 먹었다. 멀티가 잘 안 되는 나이기 때문에 떠들면서 먹느라 좀 늦게 먹었다. 그분은 참 계획적이고 준비성이 좋으신 분이라 내가 역으로 좋은 정보를 많이 얻었다. 나도 다니면서 좋았던 카페를 소개해드렸지만. 그분이 정말 괜찮은 독립 서점도 추천해주셨다! 일단 밥을 다 먹고 후식인 코코넛 밀크와 젤리도 좀 먹고 가져온 어댑티브 오일을 그분께도 발라드리고 그분도 몹시 좋아하시며 오일 이름을 사진으로 찍어가셨다.

코코넛 밀크와 젤리

그 후로 나는 귤을 사러 시장 쪽으로 가고 그분은 이중섭 미술관으로 가셨다. 이중섭 미술관도 예약제라 당일 방문이 안된다고 하셨지만 일단 가보신다고 했다.

올레 시장이 나름 커서+ 길치라 또 한참 돌아다니고 나름 귤도 맛보고 과언 니들 왔을 때 먹을 흑돼지고기 말이랑 신기한 딱새우와 흑돼지 컵라면을 사다 보니 시간이 후딱 갔다. 일반 귤은 이 숙소 쪽 나들가게 선생님이 주신 귤이 제일 맛있어서 나중에 시키기로 하고. 홍매향은 시장에서만 봤기 때문에 홍매향만 시식해보고 가장 단 느낌이 났던 가게에서 한 박스 본가로 보냈다. 진짜 맛있고 신기한 귤이니까 분명 울 엄마 아빠도 좋아하실 것 같다.

갈치를 눈여겨본다.

그렇게 귤과 이러저러한 것들을 사고 나니 1시가 조금 넘어서 폴댄스는 3시 수업이니 약 2시 10분쯤 그곳에서 출발하면 될 거 같아서 그분이 추천해주신 독립서점에 가보기로 했다. 시장을 넘어 주욱 걸어가다 보니 이중섭 거리가 나오고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들이 많은 예술가 거리가 나와서 내려오면서도 즐거웠다.

난리의 폭풍을 견뎌주고 소명을 다하고 떠난 나의 우산 (막내고모께서 일본에서 사주신 선물)

우산이 사망한 걸 그때서야 발견하고 비가 조금씩 내려서 비를 좀 맞긴 했지만.

그리고 독립서점에 들어가자 어떤 직원인듯한 여자분이 책을 읽고 있고 멋스러운 백발의 사장님이 계셨는데

그 여자분이 아까 그 학원에서 만난 분이신 거야! 너무 자연스럽게 계셔서 진짜 직원인 줄 알았는데

또 인싸력을 발휘하여 사장님께 책을 추천받아서 읽고 계셨다. 스벅 가신 줄 알았는데 너무 신기했다. 반가워서 인사를 한 후 재밌어 보이는 책들이 많은 가게를 한참 둘러봤다.

가장 흥미로운 책은 신 백과사전 100선과 악마 백과사전이었는데 그건 나중에 따로 사서 읽고 싶을 정도로 나의 흥미분야라 나중에 살까 고민된다. 내가 좋아하는 소재라... 그걸 또 100선으로 엮어놓다니. 그것도 신과 악마로 구분해서 말이야! 서울 가서도 빌려 볼까봐.

사장님이 참 멋스러우셔서 융드립도 내리시던데. 만델링으로 융드립을 시켜서 (9000원인데 신기해서 시킬 수밖에) 마셨다. 더워서 아이스를 먹고 싶었지만 사장님 추천은 핫이라 핫을 그냥 먹기로 했다. 그게 향이 더 뛰어날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니까. 게다가 기왕 융드립이니까. 사장님이 멋스러운 드리퍼에 내려서 커피를 주셨다.

귤과 사장님 추천 소설

가게에서 참 좋은 향기도 나고 가게 입구도 살짝 숨겨지고 벽화에 고래가 크게 그려져서 굉장히 정말로 예술 그 자체인 가게였다. 사장님께서 책을 들여놓은 과정도 다 알려주셨다. 사장님은 무라카미 하루키 책이 너무 성적인 부분을 부각해서 들여놓지 않으셨는데, 어떤 손님은 그 부분으로 항의를 했다고 한다. 시비를 거셨다고... 가게에 있는 책은 사장님께서 읽어보시고 다 좋았던 책만을 들였다고 하셨다. 정말 공이 많이 들어간 멋진 가게였어. 학원에서 만난 분께서 추천받아 읽고 있던 국수라는 책도 문체가 참 재미있고 흥미롭던데. 그 작가님도 나중에 그 가게에 오시기로 했다고 한다. 정말 멋있는 곳이야. 그분은 김숨 작가님을 많이 추천하는 편이라고 하셨다. 멋있어! 서귀포에도 3달 있다 가셨다는 멋진 작가님

소진님은 먼저 책을 사서 나가시고 나는 커피를 좀 마시고 2시 16분쯤 곧 온다는 버스를 타러 후다닥 나갔다.

다시 예술가 거리를 거슬러 가자 버스가 곧 와서 바로 폴 학원 쪽으로 갈 수 있었다. 버스는 세무공무원 수련원 근방을 지나갔다. 내가 안 가던 쪽 거리로 가서 바다도 보이고, 지도에서만 봤던 가게도 봤다. 우와. 제주 버스는 잘 안 오긴 하는데 그 나름의 멋스러운 맛이 있다. 코스도 다 예쁘고 바다도 보이고. 한라산을 가기도 하고. 참 신기해. 가끔 한 시간에 한 대이거나 배차가 전체 1대인 경우가 상당히 있지만 지금 아니면 못할 경험이라 끙끙거리며 열심히 하고 있는데 너무 좋아. 나중에 더 미래에 올 땐 렌트 안 하면 못 버틸 거 같지만 그래도 그건 또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겠지.


폴 학원에도 열정적으로 2시 45분쯤 적절히 도착했는데 3시 타임은 어린이들 타임이었다. 제주 어린이 4, 5명이 나를 맞이해줬다.

해맑게 처음 보는 이모라며 반가워하는데 진짜 귀여웠다. 나도 어린이 톤으로 막 응대해주고, 아유 귀여워.

선생님도 오늘은 핑크색 이쁜 옷을 입으셔서 굉장히 색다른 분위기로 이쁘셨다. 내 취향의 너무 예쁜 폴복!

어린이들이 있어서 그런지 오후라 그런지 더 부드러우신 느낌이었다. 세 번째로 봐서 그럴지도

오늘은 폴을 타고 올라가서 폴싯을 한 후, 뒤로 상체를 눕는 동작을 했는데 다시 보니 허여멀건한 돼지 통구이 같다. 잘 먹고 잘 돌아다녔더니 몸이 더 커지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제발… 뭔가 허벅지가 갈라지는 거 같기도 하고.... 기분 탓일 거야.


두 번째 동작은 무릎 사이를 써서 폴을 타고 올라가서 무릎 사이의 근육을 단련하는 자세였는데 아 역시 그조차도 아프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어찌 열심히 연습을 하였고 마무리 영상도 잘 찍었다. 오늘은 맛있는 걸 먹어서 그런가 주변 어린이들의 활기차고 귀여운 에너지를 받아서 그런가 연습도 더 여러 번 할 수 있었다. 아직 서툰 부분도 있지만 처음보단 적응이 많이 되었고 선생님도 오늘은 친절히 잘 봐주셔서 용기를 좀 더 낼 수 있었다. 여전히 완전 익숙하진 않지만 너무 재밌어! 좋은 취미가 또 생긴 거 같아서 너무 행복하다.

모닝 요가에 새로운 사람 만나기에 (제주 와서 타인과 함께 먹은 첫 끼였다.) 폴댄스까지 했더니 살짝 어지럽기도 하고 (오늘은 좀 더 돌고 새로운 자세라 그런가) 좀 멀미가 났지만. 언니들을 위한 봉주르 마담에서 빵도 사고 ( 오늘은 필마까레가 있었어! 그래서 사 왔다. 필마카레와 밀푀유 같은 것과 마들렌 3개)

스벅에 가서 스벅 돌 라테랑 현무암 러스크도 사고, 이마트에서 집 장식할 전구도 샀는데 사길 너무 잘했다. 만족스러워.

너무 힘든 채로 돌아와서 나들가게에서 귤을 시키고( 여기 귤이 너무 맛있어서 목요일에 주문 들어오신 걸 새로 따신다고 하셨다. 요새 귤 철이 아니라고 시장에서 그러던데 차라리 홍매향이나 황금향 시기라고 시장에서 맛본 귤은 다 좀 새콤했어. 여기 귤이 단 게 맞아. 엄마 직장에는 일요일에 보내서 월요일에 받을 수 있게 해주신다고 하셨다.) 비 오는 바다 풍경도 보고 싶어서 둘레길 초입까지 내려갔다가( 비바람에 몰아치는 바다는 또 다른 느낌이야 뭔가 짜증 나던 마음을 잠재워주는 분노 해소 날씨) 짐들을 끙끙끙 들고 다시 숙소로 너무나 힘들게 들어왔다. 또 힘들어서 구역질 날 거 같았어. 5시쯤 집에 와서 나름 해지는 것도 보고. 물론 비가 와서 갑자기 확 어두워져 버렸지만. 그전에 다 녹지 않은 스벅 라테도 잘 마셨다. 이마트에서 집 올 땐 또 버스가 금방 와서 편히 이쪽에 왔는데 거의 이젠 약간 현지인 된 느낌이 슬쩍 든다. 버스 짱짱맨.

샤워를 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뒹굴거리다 보니 이 시간인데 너무 힘들었어. 오전부터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많이 해서 그런가…

오늘도 피곤함에 살짝 구역질이 났지만 그래도 혼자 있는 게 힘들 즈음 손님들이 찾아와 줘서 의미가 있다. 내가 보는 좋은 풍경과 재밌는 장소를 같이 나눌 수 있으니 더더욱.

택시비도 나눠서 내면 되니까 편하게 좀 더 먼 유명 관광지 다닐 수도 있고. 그래서 좋다. 혼자 또 함께 좋은 이번 여행이네.

카메라를 선물해줬던 A도 다음 주 수요일 저녁에 반차 내고 와서 수목금토일 이렇게 다녀간다고 하고 소개팅 받은 분도 토요일에 오셔서 월요일에 간다고 하고

E도 3주 차 주말을 예약해서 모든 주말이 꽉 찼네. 제주시에까지 숙소를 따로 잡아서 오는 박력 넘치는 친구 E!

사촌언니는 다음 주에 숙소 연장하면 그 주 주말에나 올 수 있으려나. 애월이나 구좌읍으로도 가고 싶어.


오늘은 과 언니들이 오는데 상담이 동시에 들어와서 상담도 처리를 하고 그 마무리 즈음 언니들이 딱 왔다.

기상 때문에 한 시간을 공중에 떠있었다는데 연락이 잘 안 되어 혹여나 잘못되실까 봐 걱정했는데 비록 예상치 못한 상황에 고생을 하셨지만, 다들 유럽도 잘 다녀온 언니들답게 무사히 잘 왔다고 한다. 혹여나 잘못될까 봐 걱정하는 그 마음은 그냥 나의 불안이었던 거야.

오니까 즐거워서 짐도 다 풀고 아까 사 온 라면이랑 흑돼지 말이랑 빵이랑 모두 함께 먹으니까 너무 맛있었다.

B언니도 너무 힘드니까 막 구역질을 했는데 둘이 귤을 먹더니 다시 기운을 내서 다른 먹을 것들을 맛있게 같이 잘 먹었다.


내일도 일정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택시로 이동하기로 마음먹어서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다들 차훈을 하고 있지만 잘하고 얼른 자야지 좀 더 떠들다가 잘지도 모르지만.

암튼 다음에 또 와야지. 내일도 쓸 수 있을까? 연이어 친구들이 와서... 기대된다 내일의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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