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시한부 선고 후 퇴원 후에도 유피는 다시 짧지 않은 시간 우리 가족과 함께해 주었다.
매일 수액 주사를 맞고 많은 맛없는 약들을 먹어야 했지만 가족들의 돌봄 속에서 힘든 와중에도 우리 곁에 있어주었다.
그렇게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고
시간이 다시 해를 지나 추운 겨울 무렵
연말의 차가운 공기와 새해의 냄새가 날 무렵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유피 컨디션이 안 좋아 보여 병원에 다녀왔더니
삶이 이제 오래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길 들어
보고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전화였다.
곧장 간 곳엔 기운 없는 유피가 힘없이 소파에 누워있었다.
아… 거기 있는 건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하얗고 작은 나의 가족이었다.
유피는 아파서 힘이 없을 텐데도 내 목소리를 듣더니 고개를 들었다 다시 힘없이 누웠다.
누워있는 유피에게 얼굴을 묻었는데
한없이 한없이 눈물이 났다.
주중은 출근을 해야 하니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왔지만
매 주말마다 유피를 보러 가고 병원에도 갔다
병원에서도 유피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어느 주엔 정말 삶이 얼마 안 남았다고 진단해 주었다.
왜 나는 내 건강한 몸을 조금이라도 유피에게 나눌 수 없고, 아픈 유피 옆에 조금이라도 더 있어줄 수 없는 걸까.
그 주엔 가장 좋아하는 이불에 힘없이 싸인 유피를 안고 병원 대기실에서 대기하는데 한없이 눈물이 났다
유피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온몸으로, 모든 시간으로 정확하고도 확실하게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겨울 공기마저 매섭고 차가웠다.
집에 돌아와 유피를 이불에 싸서 꼭 안고 봄에 꼭 이쁜 벚꽃을 보러 가자고 여러 번 말해줬다. 몸이 너무너무 아플 텐데도 유피는 품에 꼭 안고 있으면 조금씩이나마 잠들곤 했다.
품 안에서 스르륵 잠든 넌 그 말을 다 들었을지…
좀 더 잘 버텨서 벚꽃이 예쁘게 피면 같이 또 꽃구경 가자고 자꾸만 말해줬었는데.
유피는 아빠에게도 어리광을 잘 부려서 쓰담을 많이 받곤 했는데 아빠에게도 안아달라고 해서 안겨있다가 편히 잠든 모습에 마음이 아파
베란다 밖의 겨울 풍경을 보며 참 많이 울었다.
아마 너도 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지.
눈물에 젖은 세수를 하던 그날처럼
다시 출근해야 해서 돌아온 날에도 하염없이 몇 주간을 집에선 눈물을 흘리고 낮에는 출근하는 것밖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심장이 밧줄로 묶어둔 듯 아팠다. 그런다고 변한다고 좋아질 일도,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었지만.
생명의 불이 꺼지지 않았는데 부은 눈으로 점심을 먹던 내게 그 강아지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던 동료를 아직도 조금은 저주한다.
나쁜 뜻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때의 내 맘은 그런 것이었다.
그날은 아주 추운 1월의 겨울이었다.
아주 상태가 좋지 않은 유피를 두고 하루의 평일 연가가 끝나 별수 없이 다녀오겠다며 출근길로 울며 돌아온 다음날이었다.
회사는 드물게도 별 일이 없는 날이었고 하루를 더 쉴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다음날은 또 출근이니 저녁 폴댄스 수업을 예약했다.
엄마아빠는 전화 오후 두 시쯤 다리에 힘이 없을 텐데 유피가 이쁘게 화장실을 가뒀다며 사진을 보내줬다.
유피는 약과 음식을 힘겹게 먹고 힘없이 17년을 함께 한 갈색 푸들 옆에 조용히 누워있었다고 사진을 보내줬다.
오후 5시 넘어선 퇴근한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스피커 폰으로 내 목소리를 듣고 유피가 힘없이 있다 번쩍 고개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곧이어 유피가 이상하다며 어어 하는 부모님의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걱정 말고 엄마 아빠가 잘 케어해 보겠다고 했고 나도 최대한 빨리 가볼 테니 일단 병원에 가보자고 이야길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퇴근시간까지 전화가 없어 폴댄스를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사무실을 나왔는데,
누구였을까 그때 어디선가 ‘빨리 가!!‘ 하고
누군가 날카롭게 찢어지듯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곧장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막 타고 환승하는 곳에서 막 환승한 차에 아빠의 전화로 소식을 들었다.
처음 듣는 아빠의 눈물 젖은 목소리였다.
“갔어” 하는 목메는 소리에
차분히 빨리 가겠다고 대답했지만 수많은 인파 속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는 것밖엔 또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무력했다 무력하고 무능하게 빨리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집으로 최대한 최대한 빨리 갔다.
아직 못한 것이 못 한 말이 많은데.
너한테 인사라도 조금이라도 들리게 해줘야만 하는데.
도착한 곳엔 잠든 듯이 곱게 잠든 유피가 있었다.
유피야! 하고 쓰러지듯 유피에게 넘어져 꺼이꺼이 울었는지 어쨌는지… 그러면 쓰러진다고 달래는 엄마의 말에 마음을 추슬렀다. 사랑하는 가족이 갔으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배웅을 해줘야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남은 마지막 일을 해야만 했다.
유피는 여전히 너무 깔끔하고 이쁘고 잠든 듯 보였다.
두서없이 그저 온 마음으로 유피에게 인사를 했다.
잠든 듯했지만 유피의 눈 한쪽이 조금 덜 감겨있었는데 살살 쓰다듬으며 감겨주니 덜 감겼던 눈이 스르륵 닫혔다.
아마도 사후경직이 풀어져서 그런 거겠지만
내 말을 듣고 조금 더 편히 눈이 감긴 거라고
내 인사를 들어주고 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날은 너무나도 추운 겨울이었다
역대급 한파에 벚꽃보단 조금 차가운 눈이 살짝씩 날리던 겨울
너처럼 하얀 눈이 내리던 넌 오던 날처럼 홀연히 우리를 떠나갔다.
아 우리의 시간이 영원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돌아올게 다녀올게 그 말조차라도 영원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함께 들은 노래>
이문세-눈
요조-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