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태우고
유피가 처음 우리 집에 온 건 내가 고등학생 때였다. 그 후로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여 적응하는 동안에도 유피는 우리 가족과 함께했다.
반려동물에게 제일 좋은 반려인은 돈 많은 백수라고 했던가. 아쉽게도 나는 유피에게 좋은 반려인이 되어주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며 나는 집을 떠나왔다. 주변의 도움까지 받으며 엄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처음엔 막내고모네 집에서 신세를 졌고, 이후엔 아예 자취방을 구해 완전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너무너무 보고 싶고 꿈에 나오고 늘 아른거렸지만
내 삶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에 나는 혼자 있으려 했고, 어떤 순간에도 나와 함께해주고 싶었을 유피와 함께해주지 못했다.
꿈을 좇는다는 이유로, 미래를 쫓는다는 이유로, 동생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핑계를 대기엔 너무 긴 시간이었다.
맛있는 간식을 보내고, 몸에 좋은 영양제들을 보내도, 시간은 나도 유피도 어떤 시간도 기다려줄 수 없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묵묵히 흘러갔고
강아지의 시간은 더 빠른 만큼
유피의 육체 어딘가는 약해졌고, 병들어갔으며
어떤 시간은 기다림 속에서 어떤 시간은 행복함 속에서 어떤 시간은 짧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점점 더 나와 유피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끔 만들었다.
한치 앞날을 모르는 나만이
이 순간이 영원할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나의 모든 행보를 조용히 받아들여주고 보내주는 조용한 숲이 져가는 것을 그저 모른 채 두었을 뿐이다.
나를 탓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은 채 모든 순간을 받아들여주던 넌 너무 괴롭고 외롭지 않았을까.
깊이 생각하면 괴롭기에 외면하고 싶지만
내가 너 대신 선택한 순간과 공간들은 문득문득 나를 슬퍼지고 미어지게 만든다.
넌 아마 결코 날 탓하지 않겠지만.
그 마음이 날 문득 더 슬퍼지게 만들곤 한다.
다른 가족들과 함께여도
나를 보고 싶어 했을 네가 보인다.
그 옆의 나는 대부분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