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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Sep 11. 2023

도솔 산사

산사에서 180일

도솔 산사


  이른 아침에 바람이 창틈으로 찾아왔다. 바람은 나무의 속삭임과 꽃의 향기를 데리고 잠시 머물다 갔다. 창밖은 팔월의 먹구름이 금방 비를 쏟아부을 것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지친 새들이 보금자리를 찾아 돌아가듯이 나는 마음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 가면을 벗은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있었다. 


  세 번째 암이 발견되었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곧바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지난 10년 동안 암이라는 비정상적으로 무한증식하는 변형 세포가 두 번이나 찾아왔었다. 두 번째 암이 발견되었을 때도 퇴직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의 생활비와 아이들의 학비가 마음에 걸렸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려고 했었다.


  산사로 가는 길은 하늘과 맞닿아 있어 바람도 쉬어간다는 황악산 바람재를 지나 또 다른 고개를 하나 더 넘어야 했다. 거센 폭풍우를 동반한 장맛비는 잠시 물러났지만 짙은 잿빛구름이 세상을 삼켜 버리기라도 할 듯이 내려앉아 있었다. 시야가 흐려져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대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산사 아래에 있는 마을 입구까지 가는 길은 험했다. 확장 공사를 하느라 산은 깎여져 있고 돌과 흙이 흘러내린 도로는 진흙탕이 되어 길을 막고 있었다. 도로 위에는 대형 트럭 바퀴 자국이 깊게 파여 있어 여러 군데에 물이 고여 있었다. 자동차는 온몸으로 비탈지고 가파른 흙탕길을 헤쳐 나갔다. 이런 험한 길을 한 번도 달려 본 적이 없는 자동차는 몹시 놀란 듯 연신 몸을 흔들었다. 

  험한 비포장 길을 빠져나와 계곡을 이은 작은 다리를 건너자 세상 모든 소리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흐르는 큰 개울이 나를 맞이했다. 정면에는 비탈진 산 아래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초입에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듯 긴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 있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영혼이 자유로운 개들이 혀를 내밀고는 뛰어다니다가 낯선 이방인의 차를 발견하고는 길 옆으로 자리를 옮겨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서 있었다. 마을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은 좁은 시멘트 길이었다. 너무 가풀막져서 자동차 앞에 시멘트 길이 벌떡 일어서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지금 살고 있는 삶을 그때 살았더라면, 좀 더 아이들 개개인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인정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들을 보다 많이 존중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덜 화를 내고 덜 미워하고 덜 후회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세월은 너무나 빠르게 지금 여기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지금 나의 마음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혼란스럽다. 한쪽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매 순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되살아 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아내는 작은 희망이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보라고 한다.


'원시림으로 우거진 숲이 자기를 살려줄지도 모르잖아'


  원시림이 살아 있는 오지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 몸과 마음을 단련한다면 면역력이 높아져 암세포가 더 이상 자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바람이었다. 그것은 꺼져가는 작은 불씨를 살리고 싶은 희망이었다. 절망보다는 희망을 가지려는 소박한 몸부림이었다.  아내의 바램은 내 가슴을 잠시나마 치유해 주고 있는 이곳까지 함께 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벌써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과 함께 하고 싶다는 내 마음과 잘 어울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덩달아 숲과 바람도 나를 품어 주는 듯했다.


  산사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해발 600 고지였다. 산사 근처에는 호두나무 숲과 두릅나무 숲이 있었다. 나지막이 내려앉은 마을이 산사 아래에 보일 뿐, 산사는 온통 비탈진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산사 옆 계곡은 폭우로 불어난 물줄기가 거대한 물소 떼가 지나가듯 거칠고 요란했다. 신화 속 동물이 허연 거품을 토해내듯 물보라는 연신 튕겨 올랐다. 계곡물은 초록 이끼 옷을 입은 듯한 바위를 휘돌아 부서지면서 산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자동차는 산사로 가는 마지막 오르막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섰다. 수도가에 앉아 있던 김처사는 차에서는 내리는 나를 보자 허리를 펴며 일어섰다.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김처사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선생님!"

"여기 계시다 보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입니다."

"스님은 지금 출타 중이지만 나중에 만나면 좋은 말씀을 해 주실 것입니다."

"스님도 몸이 좋지 않아서 오셨는데 지금 많이 좋아졌답니다."


  산사에는 주지 스님인 무공 스님과 김처사 두 분이 기거하고 있었다. 스님은 전남의 어느 사찰에서 주지스님으로 재직하다가 은퇴를 하였다고 했다. 이곳은 아직 사찰로서 모양새를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불공을 드리는 법당으로 보이는 집이 마당 정면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여느 절처럼 돌계단을 올라가야 법당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마당에는 판넬로 지어진 집이 두 채 더 있었다. 

  숲을 따라 내려오는 바람 소리, 저마다 다른 언어를 가진 새들의 노랫소리, 깨지고 때 묻은 심장을 치유해 주고 씻어줄 것 같은 청량한 계곡의 물소리만이 존재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산사는 한적했다. 숲이 주는 소리 이외에 들리는 거라곤 산아래에서 들려오는 경운기 소리와 간간히 개 짖는 소리가 전부였다. 만약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선승이 고요하게 명상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다. 


  김처사는 내가 거처할 방을 보여주었다. 거실과 세 개의 방이 있는 독채였다. 주로 멀리서 스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방이라고 했다. 지금은 손님이 없기 때문에 방 하나를 골라 편히 쉬라고 했다. 햇빛이 잘 드는 방을 골랐다. 


  앉은뱅이책상과 방석 그리고 옷가지 몇 개를 옮겼다. 책은 우선 한 권만 챙겨 왔다. 그동안 나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던 지식들과 세상을 보는 편견들을 버리는 일에만 전념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책 한 권 정도는 가져가고 싶었다. 19세기 고전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가져왔다. 여러 번 읽었지만 아름다운 하늘과 깊은 계곡 아래에서 재잘거리는 새소리와 물소리와 함께 다시 읽고 싶었다. 현대 문명사회의 과잉생산과 자연을 함부로 파괴하는 개념 없는 짓들을 조용히 비판하면서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 데이비드 소로우가 직접 숲에서 생활하면서 문명을 떠나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오후가 되자 오락 가락 하면 내리던 비가 그쳤다. 검은 비구름이 조금 밀려나자 틈새로 보이는 하늘이 유난히 더 파랗게 보였다. 내 마음은 벌써 파란 하늘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산사 주변의 산과 나무들이 다정하게 맞이하여 주는 것 같아서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몸에서 자라고 있는 암세포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 함께 몸과 마음을 정화해 나간다면 자가 치유의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처사와 본채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님은 고질병이 있는데 왕쑥뜸으로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김처사는 김천에서 작은 사업체를 가지고 있었는데 경기 침체와 코로나로 잠시 사업을 접고 스님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저마다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김처사는 나에게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궁금해하는 나의 물음에 김처사는 뜨거운 차를 부어주면서 세상 이야기를 연거푸 풀어놓았다. 계속되는 김처사의 입담에 나는 박장대소했다. 잠시나마 모든 잡념을 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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