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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Sep 30. 2023

어느 부부

치유의 숲

이곳에 온 지 3주째 되던 날에 새로 온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비슷한 도래였기 때문인지 금방 친해졌다. 부부는 늘 함께 있었다. 남편은 은행의 고위직에서 퇴직을 하고 이제 좀 편안하게 쉬면서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지내려고 하는데 불쑥 암이 찾아왔다고 했다. 

위암 수술을 하고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다음 주부터 항암 치료를 시작하는데 치료 기간에 이곳에서 자연식을 하면서 항암의 부작용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왔다고 했다. 남편은 위암 수술 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 보이고 음식도 잘 먹었다. 아내가 옆에서 너무 많이 먹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할 정도였다. 


저녁에 모닥불가에 모인 자리에서 사람들은 아내가 환자이고 남편은 아내를 돌보기 위해 함께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면서 남편의 건강함을 부러워했다. 그럴 만도 했다. 남편은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고 아내는 연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부부와 나는 식사 시간에 늘 같은 테이블에 있었다. 가끔 산책도 함께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에 우리 테이블에 한 사람이 더 합류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 폐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하고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모두 마치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 남자도 건장하고 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에 각종 운동을 즐겼다고 했다.

 

한 번은 식사시간에 외식을 한 번 하자는 말을 꺼냈더니 모두 좋다고 했다. 몇 분의 도움을 받아서 갈 곳을 정했다. 근처에 이름난 사찰이 있는데 가는 길에 맛집이 많다고 했다. 우리는 은행가 부부의 차를 타고 오랜만에 외식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달렸다. 


출처:pixabay

사찰로 가는 길은 계곡을 따라 아름다운 길이었다.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와 나뭇잎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소리 그리고 숲의 새들의 노랫소리가 조화로운 화음으로 들려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천 년 사찰 입구에서 천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만났다. 우람한 나무에는 은행잎이 무성했다. 아직 생명 활동이 왕성함을 뽐내는 듯했다. 

천 년을 산 은행나무는 그 세월 동안 침략자의 만행을 보았고 벼락을 이겨내고 세찬 비바람과 모진 추위를 이겨냈다. 오늘은 천 번의 봄을 맞이하며 연두색 새 잎으로 새로운 탄생을 자축하는 듯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다. 

나무는 달콤한 행복은 고통의 시간 뒤에 온다는 것을 천 번을 생을 통해 알고 있으리라. 겨울의 고통은 지금 이 순간 연두색 잎을 갖는 기쁨을 주었다. 나무는 몸으로 겪은 체험을 토대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나무는 나를 보고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생명체가 뭘 그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느냐 하면서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그냥 지금을 즐겨'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렇다. 

나무는 10세기를 살았 왔는데 나는 고작 1세기도 살지 못하는 작은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에게도 아픔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썩어 구멍이 크게 난 부분이 세월에 옹이로 자라 있고 스스로 부러져 대지로 돌아간 가지도 있었다.


나무는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스님들이 나무 밑에서 웃고 울고 한숨짓고 번뇌에 몸부림 치기도 했을 것이다. 나무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이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외식은 이 전의 입맛으로 금방 돌아가게 만들었다. 짭짤한 된장이 식욕을 당겼다. 입이 좋아하는 음식은 금방 감각기관을 즐겁게 했다. 암을 가진 사람들이 조심하여야 식품은 대부분 우리 입이 즐거워하는 맛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시간만큼은 모든 걱정을 버리고 마음껏 먹자에 동의했다. 한바탕 크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어서 모두 만족했다.


 


그다음 주 부부는 병원에 갔다. 병원에 다녀온 날 저녁부터 남편은 항암치료제 약을 복용했다. 약을 복용하면서 남편은 가끔 식당에 오지 않았다. 아내가 식판에 담아서 가져갔다. 가끔 외식을 한다고 했다. 짬뽕과 같은 강한 음식을 찾아다녔다. 


암세포를 죽일 정도로 강한 약은 일반 세포도 공격의 대상이다.

항암제는 동물실험 결과 발암물질로 분류되고 있다.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제가 정상인에게는 치명적인 발암물질인 것이다. 발암성은 정상세포가 어떤 원인에 의해 암화되는 것을 말한다. 세포의 잦은 변이와 세포분화의 이상 등이 원인이다. 


항암제는 DNA에 영향을 미치고 암세포를 장애 하는 작용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정상세포의 DNA나 염색체에도 작용하여 단백질 합성에 영양을 준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DNA나 염색체의 대부분은 이상세포로서 생체 면역 반응에 따라 제거되지만 일부가 잔존하여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암세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항암 치료제를 조제하거나 항암 주사제를 투입하는 일을 하는 의료종사자들은 각별한 주의사항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다.


<제목 이미지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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