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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해서 그래/편의점, 작은 보상의 하루

꽝과 함께 사는 법

by 이다연


나는 늘 바쁘다.
메일함은 내 숨통보다 빠르게 차오르고,
작은 보상은 늘 내 지갑보다 얇다.

그럴 땐 가끔 복권을 산다.
그저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지폐 한 장 밀어 넣는 작은 저항처럼.

“혹시…
오늘은?”

하고 긁어보면,
십 원짜리 동전 끝에 나오는 건

늘 ‘꽝’이라는 글자다.


그런데도 나는 행복한 상상을 시작한다.
당첨이 된다면—

바로 지금의 피곤도, 내 통장의 바닥도,
커피 쿠폰 열 장 모아도

겨우 아메리카노 한 잔인 현실도,
모두 보상받을 것만 같다.


그 상상 속에서 나는 현실을 박차고 나와,
홍대 골목에 작은 카페를 연다.
간판에는 이렇게 쓰겠지.

“고독해서 그래.”
커피는 공짜,

대신 손님들은

자기 고독을 한 모금씩 내려놓고 간다.


복권 당첨금으로 유지되는 이상한 카페.
어쩐지 꽤 장사가 잘될 것 같다.ㅋ

물론, 동전 끝에 ‘꽝’이 새겨진 순간
그 행복한 상상은 거품이 되어 사라지지만.


하지만 상상은 꽝이 아니다.
내 고단한 하루에,

잠깐의 유머라는 보상을 준다.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되지.
이 모든 게 가능한 이유가,
늘 내 곁에 있는 편의점 덕분이라는 것을.

*

아침 출근길,

편의점은 늘 나를 부른다.
따뜻한 조력제,

아메리카노 한 잔이 나를 깨우며

내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

점심 무렵,
여지없이 편의점으로 달려간다.

허기짐에 급하게 맞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 앞에서,
뜨거운 국물을 들이키는 순간
혼자인 게 더 분명해진다.


라면은 고독의 대명사다.

그래도 국물 끝에 남는 개운함이

다시 오후를 견디게 한다.

*

저녁,

퇴근길 필수 코스.

하루를 살아낸 당당함으로
나는 그곳에 다시 선다.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작은 달콤함,
혹은 내일을 버틸 수 있는 캔커피 하나.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빛.
편의점은 내게 작은 기적의 창고다.


피곤할 땐 커피 한 캔,
궁할 땐 라면 하나,
꿈이 필요할 땐 복권 한 장.


이 모든 걸 품에 안고

편의점 형광빛을 뒤로 집으로 향한다.
아름이의 간식을 들고,
나의 밤을 환하게 밝혀줄 커피를 종류별로 챙기면서.
캔커피, 드립백, 콜드브루, 라테까지.
이 작은 봉투 안에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이 담겨 있다.


아름이는 현관 앞에서 꼬리를 마구 흔들며 반긴다.
내가 반가운 걸까?
아니면 내 손의 간식이 반가운 걸까? ㅋ

그 순간, 세상의 모든 ‘꽝’도
다 당첨처럼 느껴진다.


어둠이 내려앉아도 편의점은 늘 반짝인다.
그 환함 덕분에 나의 고독도 잠시 달콤해진다.

나는 여전히 행복한 상상을 하며 복권을 긁고,
여전히 ‘꽝’에 익숙하다.
하지만 동전 끝의 허망함도,
커피 한 모금의 쓴맛도,
라면 국물의 뜨거움도,
편의점 불빛 속에선 어쩐지 조금은 달콤하다.


왜냐고?

고독해서 그래.
아니, 사실은—
내 하루가 너무 짧아서,
오늘도 한 장 더 긁고, 한 잔 더 마시고,
라면 국물까지 후루룩 비우고,
아름이 간식까지 챙기며,
조금 더 살아내고 싶어서 그래.



ADD...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순간,
고독은 짐이 아니라 선택이 된다.
그날의 고독은 라면 맛이고,
또 다른 날의 고독은 커피 향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집어 들 때,
나는 사실 허기보다 희망을 산다는 것을.
내일도 살아볼 맛 난다는
아주 작은 희망 말이다.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EP.11《고독해서 그래》: 《편의점, 작은 보상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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