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28.《다음에... 멋지게 갈 거야.》
연말의 이별은 유난히 조용하다.
울음도, 소란도 없이
달력 한 장처럼 툭— 떨어진다.
지난해 12월 24일,
나는 사랑하고 존경하던 선생님을 하늘로 보냈다.
선생님은 오래 아프셨다.
‘지병’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시간을, 고통을
5년 넘게 견디며 살아오셨다.
그런데도 매년,
선생님에게 멈추는 해가 아니었다.
“다연아,
아픈 건 아픈 거고
일은 일이지.”
그의 말투는 늘 그랬다.
대단한 결심을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말하는 사람.
“올해는 하나 만들자.
못 만들면…
뭐, 다음 생에 하지.”
본인은 늘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우리는 그 말을 붙잡고 여름을 건넜다.
초여름부터 우리는 들떠 있었다.
새 프로젝트 이야기로 자주 만났고,
괜히 많이 움직였다.
요즘 뜨는 핫플레이스,
조용한 카페,
맛있는 음식.
매 번 선생님은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게 다 취재야.
맛있는 것도 공부고,
놀러 다니는 것은 노동이지.”
그 말에 우리는 깔깔 웃으며
죄책감 없이 한 접시를 더 먹었다.
그러다 어느 날 선생님이
“바다 보러 가자.”
그 말 한마디에,
사랑하는 여 작가님과,
선생님과, 그리고 나.
대부도로 약속을 잡아 떠났다.
선생님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바다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따뜻한 초여름 바닷가 카페에서
많은 연인들, 아이들. 사람들 틈에서
그날은 유난히 많이 웃으셨던 게 기억이 난다.
셋이서 많이 들떴고,
괜히 오래 앉아 있었고,
유난히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아프면 바다를 찾는 거야.”
잠깐 멈췄다가 선생님이 덧붙였다.
“나야 뭐,
원래 잘생겨서 바다랑 잘 어울리고.”
그 말에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가을이 왔다.
선생님은 다시 원했다.
“바다 한 번만 더.”
이번엔 강화도였다.
늦가을의 강화 바다는 말없이 깊었다.
선생님은 정말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나 사실…
강화도 꼭 와보고 싶었어.”
살기 바빠서,
일이 생겨서,
늘 미뤄두던 곳.
“맨날 여기 오려다 일을 선택했거든.
근데 오늘은 일보다 내가 이겼네.”
바닷가 카페에서 주인이 선생님을 알아봤다.
그녀는 커피잔에 사인을 받으며 말했다.
“가문 대대로 보관할게요.”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그럼 잔 깨지지 않게
설거지는 조심히 하세요.”
그날 선생님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겨울이 왔고,
선생님은 두고두고
강화도 이야기를 하셨다.
“그 바다 말이야…
자꾸 생각나.”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프로젝트는 거기서 멈췄다.
선생님의 기운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래도 선생님은 시간에 굽히지 않았다.
“다연아,
난 멋지게 갈 거야.”
“남자답게, 씩씩하게.”
“이 세상에 미련 없어.”
“하고 싶은 거 다 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이거 하나만
마무리하고 가면 좋겠는데.”
그 말이 이렇게 오래 남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마지막 약속이 하나 남아 있었다.
전주.
선생님의 고향.
날짜도 정했고,
꼭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날 나는,
평창동 집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유난히 추웠다.
선생님은 차에 오르지 못했다.
“다연아…
오늘은 못 가겠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고향은 도망 안 가니까.
다음에 가자.”
그 ‘다음’이 이제는 오지 않는다.
연말이 지나고 나는 달력을 바꿨다.
선생님을 떠나보낸 해가 되었지만,
선생님이 남긴 태도를 배우는 해가 되었다.
아프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사람,
끝까지 멋있게 살겠다고 말하던 사람.
그리고 선생님이 끝내 완성하지 못한
그 프로젝트를 내가 이어서 완성할 것이다.
그게 남겨진 사람의 예의라고 나는 믿는다.
선생님,
우리는 끝내 바다까지 갔잖아요.
그거면 충분히 멋진 삶이었고,
충분히 잘 보낸 이별이었어요.
이제는 제가 이어갈게요.
"고독해서 그래."
그래도
이렇게 한 사람을
온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다면,
그건
조금은 괜찮은
새해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28. 《고독해서 그래 》 《그해, 우리는 바다를 두 번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