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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별이 된 제비꽃

하람이의 비밀 친구

by 이다연


하람이는 늘 혼자 놀았어요.
모래놀이도 혼자,
미끄럼틀도 혼자,
하굣길에도 늘 혼자였죠.


“하람이는 낯을 가리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선생님께 그렇게 말했지만,
마렌은 알 수 있었어요.

하람의 눈에는 늘 ‘무언가’를 따라가는 그림자가 있었어요.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마렌만은 느낄 수 있었죠.


어느 날,
하람은 교실 창가에 앉아 말없이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어요.
마렌은 조용히 옆에 다가가 앉아 속삭였죠.

“혹시…
무엇을 접고 있어?”

하람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우리 집 강아지 ‘콩이’…
작년 겨울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 말에 마렌은 하람이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어요.

“그럼 혹시,
아직도 콩이랑 놀고 있어?”


하람은 놀란 듯 고개를 들었고,
처음으로 하얀이를 내 보이며 웃었어요.

“네…
놀아요.

콩이는 내가 슬프면,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요.
근데 아무도 그걸 볼 수 없어요.”


마렌이 제비꽃 정원에 들어섰을 때
은빛 제비꽃 하나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어요.

리아는 그 앞에서 멈춰 섰죠.
그리고 살며시 꽃잎에 손을 얹었어요.


그 순간, 마렌은 리아의 소매를 붙잡았어요.

"리아… 하람이는 세상을 보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깊은 마음을 가진 아이예요."

마렌의 눈동자엔 작은 떨림이 맺혀 있었죠.


"그 마음이 너무 조용해서,
모두가 놓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번엔,
꼭 리아가 들어줬으면 해요.
나도 하람이의 곁이 되어주고 싶지만,
아직은 용기가 조금 모자라요."


리아는 마렌의 마음을 읽은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괜찮아, 마렌.
지금처럼 네가 하람이를 걱정하고 있으니까,
이미 절반은 치유된 거야."
“이 아이는…
세상이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세상의 차가운 말들은 다 듣고 있네요.
이걸 좀 보세요.”

마렌이 슬픔에 찬 목소리로 리아에게 말했어요.

그 장면은 리아가 들여다본 하람이의 기억이었어요.


어느 흐린 오후.
하람이는 운동장 옆 벤치에 혼자 앉아 있었어요.
흙먼지가 날리고, 아이들의 목소리는 멀어져 가는데
하람이는 조용히 손끝으로 무릎을 끌어안았죠.

“너는 보이지 않으니...”
“우리랑 어울릴 수 없어. 미안.”


친구들은 하람이의 옆에 앉지 않았고,
말도 걸지 않았어요.

축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슬며시 기가 죽어 일어난 하람이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가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어요.


학교 앞에는 콩이가 기다리고 있었죠.
목에 작은 리본을 단 강아지,
매일 같은 시간에 하람이를 기다리던 유일한 존재였어요.

하람은 콩이의 발소리만 들어도 웃었어요.

“콩아, 나 여기 있어.
너는 나를 항상 찾아내는구나.”


콩이는 하람의 손등에 얼굴을 비비고
그의 손을 혀로 살짝 핥았어요.

그건 ‘괜찮아,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말 같았죠.

그날, 누구와도 대화를 못 했던 하람은
콩이에게만 조용히 속삭였어요.

“나만 보이는 거야. 너는..
너는 나만 기다리는거야."


리아는 눈을 감고 말했어요.

“이 아이는, 세상을 보지 못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을 보고 있었어.”


마렌은 제비꽃을 들여다보며 말했어요.

“콩이는… 하람이의 눈이었어요.
그리고 마음이었고, 세상이었어요.”


그 순간,
은별빛 제비꽃 안쪽에서
작은 금빛 빛줄기 하나가 피어나

하늘에 올라 별이 되어

하람이의 방 창가에 떨어졌어요.

그건 콩이의 존재가 남긴 따뜻한 별빛이었죠.


리아는 마렌을 데리고 비밀의 제비꽃 정원으로 갔어요.

리아는 마렌의 눈빛만 보고도
하람이를 도와주어야한다고 생각 했죠.

리아가 꽃잎에 손을 얹자,
제비꽃 한 송이가 서서히 별빛으로 물들기 시작했어요.


그 은별빛은
그리움과 추억,

그리고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 담긴 색이었죠.

“이 제비꽃은 콩이와 함께한 기억이야.”
리아는 말했어요.

“기억은 시들지 않아.
콩이는 지금도 하람이의 곁에서 함께 놀고 있단다.”


그날 밤,
하람은 꿈속에서 콩이와 다시 만났어요.
콩이는 해맑게 웃으며 하람이의 품에 안겼고,
하람이는 아무 말 없이 콩이를 끌어안고 울었어요.


아침이 되어 눈을 떴을 때,
하람이의 침대 옆에는
작은 쪽지가 놓여 있었어요.

“콩이는 지금도 너를 기억해.
그리고 너도 콩이를 잊지 않았잖아.
그건, 사랑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야.”


Epilogue

가끔,

혼자 웃는 아이를 보면
그 아이는 마음속 친구와 대화 중일지도 몰라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건 아니니까요.


기억은 꽃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언제든 다시 피어날 수 있어요.

그러니, 슬퍼말아요.


꿈속의 콩이처럼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늘 곁에 있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의 마음속에도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나

누군가의 기억이 되어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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