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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수국 소녀의 비밀 정원

마렌과 꽃의 요정 이야기/1. 소윤 story

by 이다연


7월의 첫날, 장마가 시작되던 날.
하늘은 마치 오래 울다 지친 얼굴처럼 흐리고,
마을엔 조용한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뛰놀기를 멈추고,
개구리들만 신나게 노래를 불렀죠.

마렌은 연보랏빛 작은 우산을 쓰고
언덕 너머, 아무도 모르는 길로 걸어갔어요.


마렌만이 아는 ‘비밀의 정원’.
비 오는 날에만 문이 열리는,
그리고 슬픈 비밀을 안고 있는 아이만 들어갈 수 있는, 신비로운 수국의 세계로요.


“어서 와, 마렌.”

정원 입구에 서 있는 건
반짝이는 물빛 날개를 가진 *꽃의 요정 ‘리아’*였어요.


리아는 마렌을 보자마자 반가운 듯 미소 지었어요.

“오늘은 어떤 아이의 마음을 데려왔니?”

마렌은 속삭이듯 말했어요.

“오늘은 리아요정님,
소윤이의 비밀을 꽃으로 피워줘야 해요.
소윤이의 엄마가 아파서 하늘나라에 가셨대요.
괜찮다고 말하지만…
눈에 눈물이 자꾸 빗물처럼 고여요.”


리아는 마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녀의 가느다란 손끝이 소윤이의 마음을 담고 피어난
연보랏빛 수국에 닿았을 때였어요.

수국 꽃잎이 부드럽게 떨렸고, 그 속에서 조용히 소윤이의 기억 한 조각이 퍼져 나왔죠.


그날은 장례식이 끝난 바로 다음 날이었어요.

소윤이는 거실 구석 작은 인형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하얀 종이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어요.


“엄마, 오늘도 안 와요?”


그 글씨는 또박또박했지만,
종이는 눈물로 여기저기 번져 있었어요.

에 돌아온 소윤이는 아무 말 없이 편지를 접고
자기 베개 아래에 살짝 밀어 넣었죠.

그리고는 혼잣말로 속삭였어요.


“괜찮아. 내가 혼자서도 잘할게…
엄마 걱정하지 마.”


하지만 그날 밤,

소윤이는 베개를 꼭 끌어안고 아주 오래 울었어요.

밤새 비는 정말 많이 쏟아졌고,

그 울음소리는 빗소리에 묻혔죠.

리아는 그 기억을 마주 보며
수국 꽃잎 하나를 조심스레 어루만졌어요.


“아가, 네 눈물은…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사랑이구나.”


리아는 속삭이듯 마렌에게 말했어요.


“이 꽃, 마렌.
오늘 밤 소윤이의 꿈속에 가서
꼭 안겨줘야 해.
그 꽃은 소윤이의 그리움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말해줄 거야.”


리아는 가느다란 손을 들어 하늘을 향했어요.

그러자 수국 꽃잎들이 파르르 떨리며
하나, 둘, 소윤이의 마음을 닮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어요.


분홍빛 슬픔,
푸른 외로움,
보랏빛의 이해심
그렇게 하나의 꽃송이가 피어나며 리아가 속삭였죠.

“이 꽃을 소윤이의 꿈속에 심어 줘.
그럼 소윤이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날 밤, 마렌은 몰래 창문을 열고
소윤이의 창틀에 수국 한 송이를 놓았어요.

그리고 작은 쪽지를 함께 두었죠.

“괜찮아.
네 마음은 아주 예쁜 색으로 피어나고 있어.

비가 온다는 건,
그 비를 맞고 자라나는 이 꽃처럼
누군가의 사랑이 자라고 있다는 뜻이야.”


다음 날 아침,
소윤이는 꽃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어요.

정말 오래간만에요.


그날 이후로도 마렌은 리아와 함께

많은 아이들의 비밀을 들어주었어요.

눈물만 흘리고 말 없는 아이,
말썽꾸러기처럼 보이지만 마음을 다친 아이,
‘난 괜찮아’라는 말을 방패처럼 드는 아이들까지.


리아는 마렌에게 말했어요.

그리고 작은 쪽지를 전해 주었죠.

“너는 말이야,
꽃을 피우는 아이가 아니라,
‘마음의 소리를 듣는 아이’야.

그건 아주 특별한 재능이란다.”


그리고, 비 오는 다른 어느
마렌의 정원은 다시 열려요.

리아는 그곳에서 꽃잎을 돌보며,
세상 어딘가에서 마음이 젖어버린 아이들을 기다리죠.

그리고 마렌은 그 우산을 들고 또 한 아이에게 다가갑니다..


“괜찮아. “
네 비밀을 나한테 말해도 돼.

우리는…
함께 꽃을 피울 수 있으니까.”


Epilogue

비가 오면,
수국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건
아마도 누군가의 비밀 하나하나가

비의 눈물로 피어나기 때문일 거예요.


그러니, 울지 말아요.
가슴속에 스미는 비가 내리고 있다면,
마렌과 리아가 당신 곁에 와 있을지도 몰라요.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당신만의 색으로 꽃을 피워주기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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