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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너의 이름은 메밀꽃

♡꽃눈의 아이들 ♡

by 이다연


저는 이안이에요.
신라 북방 끝자락, 달봉현이라는 작은 마을에 살았죠.

신라 제23대 법흥왕 때였어요.

왕은 북쪽 고구려와의 국경 다툼이 심해지자,

전국에서 장정을 뽑아 변방으로 파견했어요.

“국경을 지켜야 나라가 산다.”

아버지는 검을 들고 마을을 떠나며 말했어요.


“이안아. 꼭 이기고 돌아오마.”
"그건 나라를 위한 일이었지만, 어린 나에겐
아버지를 데려가겠다는 말로만 들렸어요."


그해 봄,
우리 마을은 아주 깊은 슬픔 속에 빠졌죠.

전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마을이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마을은 불타고,

나무들은 뽑히고,

곡식은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는 전쟁통에 약을 구하지 못해 병으로 돌아가셨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마을 근처의 습격으로…
끝내 숨을 거두셨고요.


그렇게 저는 혼자 남게 되었고,
그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우리 마을의 수많은 아이가
그렇게 부모님을 잃었고,
작은 오두막이나 들판에 서로를 기대어 살아야 했어요.


아이들은 굶주린 배를 쥐고

매일 들판에 모여 앉아
하늘을 향해 기도했어요.

“제발 엄마, 아빠가 돌아오게 해 주세요.”


그건 그냥 말이 아니라,
눈물과 한숨으로 이어진 간절한 기도였죠.


그리고 어느 날,
우리가 앉아서 기도하던 들판 위로

하얀 꽃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하늘에서 흩날리는 눈은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했답니다.

아이들은 서로 끌어안고 눈꽃 사이로 사라져 갔어요.

그건…
‘하늘이 아이들의 기도를 들었다’는 대답 같았어요.


며칠 후,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렸고,
저 멀리서 병사들이 돌아왔어요.

어깨엔 피가 얼룩졌고,
옷은 찢어지고 다친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그 눈빛엔…
살아 돌아왔다는,

끝내 약속을 지켜냈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어요.


그중에… 아버지도 계셨어요.

“이안아… 내가 왔다…”


아버지는 누더기 옷에 다리를 절고 있었지만,

"우리 이안이 다 컸네."

이러시면서 저를 꼬옥 안아주셨죠.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모든 아이들의 아버지가
눈꽃밭의 아이들을 찾아서
들판 위에서 끌어안고 펑펑 울었죠.


그 하얀 꽃눈 위로
병사들의 피가 떨어졌고,

그날의 눈물과 피가 흙 속에서 잠들어

해마다,
붉은 꽃대에 하얀 꽃들이 피었답니다.

그 꽃이 바로,
‘메밀꽃’이에요.


메밀밭은

꼭 돌아오겠다던 아버지의 약속.

아이들의 간절한 기도로 피어난 꽃,

하늘에서 내려주신 마음에 꽃밭이랍니다.

사랑해요 아버지.

그리고, 감사합니다.


기다림은 때로 아프고 외로운 일이지만,
그 기다림이 누군가를 지켜내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길이 되어 준다고 저는 믿어요.

이안의 들판에 내리던 하얀 꽃눈처럼,
우리 모두의 마음 위에도 따뜻한 위로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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