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가 남긴 봄날 이야기♡
봄바람이 세상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어느 날,
눈송이처럼 가볍고 투명한 작은 라일락 씨앗 하나가
머—언 별에서 시간 여행을 떠났어요.
개구쟁이 작은 씨앗 하나는
푸르르 하늘을 건너고,
몽글몽글 구름 사이로 미끄러지고,
잎사귀 위에 앉았다가
다시 하늘로 깡총 날아오르기를 반복하며
세상구경을 다녔죠.
씨앗에게는 세상이 온통 호기심천국이었어요.
어라~
요기도,저기도.
마냥 신나게 날아오르던 씨앗에게
어디선가 낮은 피리소리같은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그 울음은 너무 슬프고, 투명해서 바람도 잠시 멈춰 섰죠.
처음 듣는 슬픈 소리는
씨앗을 울음을 따라 작은 병원의 창가로 날아가게 했어요.
그곳엔, 분홍빛 옷을 입고 머리에 모자를 쓴 소녀,
윤하가 창밖을 바라보며 서럽게 울고 있었죠.
눈물이 맺힌 두 볼 위로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았지만,
윤하의 마음은 차가운 바람 속에 있었어요.
씨앗은 아무 말 없이 소녀에게 다가갔어요.
바람이 길을 열어주고, 씨앗을 조심조심
윤하의 젖은 손등 위에 내려앉혀 주었지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윤하가
씨앗을 바라보며 속삭였어요.
“너… 나 울고 있는 거 다 봤구나?”
애기 씨앗은 윤하가 너무 슬퍼 보여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윤하는 작은 씨앗을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 안았어요.
“너, 어디서 왔어?
왜 나한테 온 거야?”
윤하는 베개 위에 누운 채
씨앗을 가만히 올려놓고 말했어요.
“내가… 너한테 이름을 지어줄까?”
그때 창밖으로 봄바람이 불었고,
라일락 나무의 보랏빛 꽃향기가 날아들었어요.
“그래, 라일락. 넌 이제 라일락이야.
내가 너를 처음 본 순간…
이 꽃 향기가 방안에 가득했거든.”
“라일락, 이제 넌 내 비밀친구야.
우리 둘만 아는, 향기로 만난 친구.”
그날 밤, 윤하는 잠들기 전 씨앗을 품에 안고 속삭였어요.
“좋은 꿈 꾸자, 라일락아.
우리 내일도 꼭 만나.”
며칠째 흐린 날이었지만,
그날 아침 윤하는 혼자서 일어났어요.
작고 말라가는 손에
자그마한 라일락 씨앗을 꼭 쥔 채였죠.
“이제... 너도 세상 밖으로 가야지.”
윤하가 속삭였어요.
간호사 언니가 휠체어를 밀어주었고,
윤하는 병원 정원 끝, 창밖에서 늘 바라보던
그 라일락 나무 아래 도착했어요.
“여기야.
네가 태어날 자리는 바로 여기야.”
윤하는 작은 삽을 들고 갸녀린 손으로 흙을 파서,
조심조심 씨앗을 눕혀주었어요.
“여기서 자라줘,
라일락.
나 대신 봄을 기억해 줘.”
“윤하야, 방금... 씨앗이 움직였어.”
간호사 언니가 웃으며 말했어요.
“응. 내 친구는…
약속을 지키는 아이거든.”
윤하의 뺨으로 기쁨의 눈물이 흘렀어요.
그해 겨울,
병원엔 눈이 자주 내렸어요.
윤하가 있던 병실 창가엔
더 이상 보라빛 웃음이 머물지 않았죠.
다음 해 봄이 왔어요.
정원 한켠의 작은 흙더미 위로
작은 새싹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답니다.
간호사 언니는 매일 아침 그 새싹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윤하의 이름을 불렀어요.
“윤하야… 잘 있지?”
그리고 몇 주 후,
새싹은 키가 자라 잎을 키웠고,
처음으로 보랏빛 꽃망울을 맺었어요.
작은 씨앗은 이제,
윤하의 계절을 대신 피워낼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하늘 어딘가,
구름 위의 따뜻한 정원에서
윤하는 작은 의자에 앉아
조용히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그곳엔 아픔도, 수고도 없었고
윤하는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죠.
“라일락… 피었네.
역시, 약속을 지켰구나.”
윤하는 두 손을 모으고 활짝 웃었어요.
그 미소가 바람이 되어
병원의 정원으로 내려왔고,
라일락 꽃잎을 살짝 흔들어 주었지요.
라일락은 깊고 푸른 향기로 대답했어요.
"안녕. 윤하야."
이 이야기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본
한 소녀와 작은 씨앗의 이야기입니다.
슬픔 속에서도
누군가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이 있고,
짧은 시간 속에서도
영원히 남을 향기가 태어났습니다.
세상엔 가끔,
말보다 향기로 전해지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누군가의 윤하가 되어주고,
또 다른 라일락을 심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