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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달맞이꽃

용감한 정원의 아이들

by 이다연




초하 마을의 평일 오후는 언제나 평화로웠어요.
햇살은 부드럽고, 흙은 따뜻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골목마다 흐르고 있었죠.

하솔은 나무 아래에서
친구들과 구슬치기를 하며 신나게 외쳤어요.

“구슬 다 내 거야! 봤지? 다섯 개 한 번에!”


조금 떨어진 곳에선
아린과 여자아이들이 고무줄을 넘으며 웃고 있었어요.

“하늘, 땅, 사람~ 까치발! 엉덩이~”

땅따먹기 놀이가 펼쳐진 흙바닥엔
아이들의 손바닥 자국이 누렇게 찍혀 있었고,
고양이 한 마리가 장난감처럼 흙 위를 통통 뛰어다녔죠.


아이들은 몰랐어요.

오래전부터 이 마을 정원엔

달빛을 지키는 두 요정, 마렌과 리아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던 걸요.

달이 가장 밝은 날,

정원의 꽃은 사람들의 기억과 마음을 읽는다고 말이에요.


그 순간.

하늘에서 ‘소리 없는 꽃’이 피어났어요.
정확히 말하면,그건 포탄이었죠.

콰아아아아아앙—!!!

하늘에서 떨어진 불꽃 하나가
마을의 절반을 삼켜버렸어요.


소녀가 뛰던 고무줄은 날아가 찢어졌고,
구슬은 하늘로 튀어 올랐다가
검은 연기 속으로 사라졌어요.

그리고 하솔은, 그 구슬과 포탄의 빛을
“하늘에서 떨어진 꽃”으로 기억했어요.

“우와~예쁘다...”

하솔의 눈동자는 허공만을 바라보았지요.

“하늘에서… 꽃이… 떨어졌어…”


그건 마지막 말이었어요.

검은 연기가 마을을 감싸 안았어요.
구슬도, 고무줄도, 아이들의 웃음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요.

초하 마을은 단 하루 만에 낯선 풍경이 되었어요.


아린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잿더미 속을 헤맸어요.

아린은 울부짖으며, 하솔의 이름을 불렀어요.

“하솔아—!!!”


밤이 되자, 마을 어귀엔 검은 그림자들이 몰려왔어요.

검은 그림자 군단은 얼굴도 표정도 없이 검은 깃발을 세우고,
타버린 마을을 장악했죠.

“이 마을의 정원은 위험하다.
모조리 불태워야 해.
달빛 아래 피는 꽃이 사람의 기억을 되찾게 만든다.”

그림자들의 우두머리는 그렇게 말했어요.

그들은 꽃이 피는 것을 두려워했고,
기억이 살아나는 것을 막으려 했어요.
왜냐하면, 기억이 돌아오면 진실이 보이기 때문이었죠.


아린은 하솔을 꼭 껴안고,
마을 북쪽의 무너진 연못 언덕으로 향했어요.
그녀의 손엔 바짝 말라붙은 씨앗이 쥐어져 있었고,
가슴속엔 단 하나의 생각만 남아 있었죠.

아린은 이 마을의 전설을 기억해야만 했어요.

“이 아이만은, 이 꽃만은 지켜야 해…”


하솔은 여전히 말을 잃은 채
작은 구슬 하나를 손에 쥔 채 힘겹게 따라 걸었어요.
그 구슬은 전쟁 전날,
아린과 함께 주운 초록빛 구슬이었죠.

그들은 언덕 너머, 폐허가 된 정원에 다다랐고
그 순간, 땅 밑에서 희미한 안개빛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마렌…”

리아가 나지막이 말했어요.

“우리가 나서야 해요.”

마렌은 두려운 듯 고개를 저었어요.

“하지만 리아… 인간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
우린…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요.”

리아는 조용히 웃었어요.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았잖아.
우리가 숨을 쉴 수 있었던 것도…
누군가 계속 우리를 기억하려고 해 주었기 때문이야.”


그 말과 함께 리아는 자신의 꽃잎을 하나 떼어
후우~ 불어 아린의 손에 날려주었어요.

그리고 리아는 하솔의 구슬에 입을 맞추어
달빛을 불어넣었죠.

그 순간 하솔의 눈동자가 흔들렸어요.

“누나 구슬 속에서 꽃이 피었어…”

그가… 처음으로 다시 말을 꺼냈어요.
그리고 곧, 아린의 기쁨의 눈물 아래에서
또 하나의 달맞이꽃이 피어났어요.


그림자들은 정원으로 몰려들었어요.

“씨앗을 태워라! 꽃은 기억을 되살린다!
그 기억이 세상을 뒤흔들게 놔두면 안 된다!”


하지만, 그 순간 정원 중심에서
노란 달맞이꽃 수천 송이가 일제히 피어났어요.

마치 수백 개의 작은달이 땅에 내려앉은 듯.


그 꽃들에 다가선 순간
그림자들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어요.
빛 속에서, 그들은 점점 흐려지고,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갔어요.

그리고 마렌은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외쳤어요.

“우리가 지킨 건… 땅이 아니라 기억이야.”


정원 한가운데, 아린은 작은 명패 하나를 꽂았어요.

하솔이 직접 써 준 이름이었죠.

용감한 “달맞이꽃”

그리고 둘은 정원에 노란 꽃이 피어나는 밤이면

언제나 그 꽃 앞에서 인사를 했어요.

“안녕, 오늘도 지켜줘서 고마워.”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점점 돌아왔어요.
달빛 아래에서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며
서로의 이야기를 되찾기 시작했죠.

“이 골목… 내 집이 있었지.”
“이 돌담엔 엄마가 내 키를 그려줬었어…”

그 정원은, 이제 ‘달맞이꽃 정원’이 되었고,
전쟁의 상처 속에서 가장 용감한 꽃의 기억과 기적으로 남았답니다.



에필로그


기억은, 때로 눈물 속에 숨어 있고
작은 씨앗 안에 조용히 잠들어 있어요.


그걸 지우려는 어둠은 수시로 찾아오지만

기억을 지키려는 마음이
그림자보다 더 강하답니다.


작은 손으로 씨앗을 쥐고,
사라진 이름을 가슴에 품었던
한 소녀와 소년처럼.

그들이 피워낸 달맞이꽃 한 송이는
어둠을 물리치고,
세상의 기억을 되살렸어요.

기억은,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피어나는 가장 용감한 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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