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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hrjung Oct 22. 2023

주말에 시간 되니?

회사에 가기 싫은 이유 : 싫어 bot의 변명

집 밖을 나가는 순간 내가 마주치지 않았어도 될 일들을 마주하곤 한다. 약에 취한 듯 한쪽 다리를 절며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이라든지 화장실을 못 찾아서 - 독일에는 무료 화장실이 거의 없다 - 길에서 노상방뇨 하는 사람들이라든지, 길을 걷고 있는데 멀쩡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1유로 있으면 주면 안 되냐고 묻는다든지, 종교책을 권하며 함께 이야기 나누기를 권한다든지. 코로나가 처음 한창 시작 됐을 때는 - 아시아 국가에 막 퍼지기 시작했을 즈음 - 지하철에서 독일인 승객들이 나를 바이러스 취급하는 듯한 시선을 견뎌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베를린에 와 2020년에 처음 입사했던 회사는 전기 스쿠터를 만드는 스타트업 회사였다. 그 당시 내 모습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2019년도에 워홀로 잠깐 지냈어도 친구가 거의 전무했고 여전히 친절한 한국인 패치가 많이 남아있었다. 영어로만 일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으며 다양한 나라에서 온 개발자들과 회의를 하며 그들의 각기 다른 발음을 알아듣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무엇보다 small talk.... 커피를 마시러 탕비실에 갈 때면 다른 부서 사람들과도 안녕, 너는 어느 부서에서 일하니, 어느 동네에 사니, 네 이름은 뭐니, 어느 나라에서 왔니 등, 매번 반복되는 대화와 아무 의미 없는 대화들에 너무나도 진이 빠졌다. 회사 복도를 지나갈 때도 마찬가지, 화장실에서 사람을 마주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웬만하면 내 자리를 뜨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 회사에서는 코로나 전에도 하이브리드 업무가 가능해 원할 때마다 집에서 근무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일하던 팀은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백앤드 개발자였는데, 아프가니스탄 주니어 여자 개발자 1, 이란 미드레벨 남자 개발자 1, 독일 시니어 남자 개발자 1, 튀르키예 테크 리드 남자 개발자 1, 그리고 한국 시니어 여자 개발자 1, 이렇게 총 다섯이었다.

그중 독일어 시니어 개발자는 full remote로 다른 도시에서 일을 했고 나머지 개발자들은 (+ 모바일 팀, webshop full stack, 프런트엔드 팀) 사무실에 오기도 하고,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 일을 계속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하루종일 집에서 remote work를 했다.

그 당시의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 사무실에 나와 근무하던 습관이 남아있었을 때라 거의 매일 출근을 했다. 내게 업무 지시를 내리던 테크 리드도 거의 매일을 사무실에 나와 나와 함께 페어 프로그래밍을 하곤 했다.


사실 그와 함께 페어프로그래밍을 할 때마다 거슬리던 몇 가지 일다. 하나는 얼굴에 각질이 수북했던 그는 - 피부병을 갖고 있던 것 같다 - 내 자리에서 내 노트북으로 함께 일을 하고 날 때면 그 수많은 하얀 가루들이 내 자리 여기저기에 쌓여 있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는 워커홀릭이었는지 - 튀르키예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엔지니어였고, 그곳 또한 한국만큼 업무 강도가 높다고 알고 있다 - 함께 페어프로그래밍을 할 때면 나는 반자발적 야근을 해야 하는 때가 많았다. 그때의 나는 '너무 피곤하니 우리 다른 날에 할까?'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했고, 나보다 직책 높은 상사의 뜻을 그냥 곧이곧대로 따랐던 것 같다.

그중 가장 불편했던 일 중 하나는 튀르키예 리더와 썸이 있던 모바일 팀 러시아 개발자의 불편한 시선이었다. 솔직히 당시의 나는 남자친구도 있었고 튀르키예 리더에게 아무런 사적 감정이 없었는데, 내 뒤에 앉아있던 러시아 개발자는 튀르키예 리더와 내가 가까이 앉아서 페어프로그래밍을 할 때면 꽤나 따가운 시선을 쏘아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이 오해를 없애야겠다 싶어서 한 번은 점심식사 후 여자 개발자들과 산책을 하다가 러시아 개발자인 그녀에게 나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내게 상냥히 대해줬고 더 이상의 따가운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어요...


회사 내에는 오피스 매니저라는 직책이 있는데 이름 그대로 사무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다녔던 회사의 오피스 매니저는 나이지리아 출신 A 씨였는데, 그녀는 유쾌한 사람인 것 같았지만 나에게 간혹 곤란한 부탁을 하는 바람에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회사에서는 culture day라고 해서 한 달에 한 번씩 - 보통 마지막주 금요일에 culture day가 있었다 - 특정 나라의 음식과 음악을 직원들이 직접 준비해 점심시간에 함께 보내는 거였다. 나는 2년 넘게 다니면서 딱 한 번의 culture day에 참여했는데, 입사 동기이자 꽤 친하게 지내던 브라질 출신의 다른 팀 개발자 동료가 꼭 오라고 했어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culture day에는 평균적으로 50명 넘는 사람의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터라, 회사에서 한국인이 하나뿐이었던 나는 한국 culture day에 참여할 생각조차 없었다 - 솔직히 말해서 한국인이 여럿이었더라도 행사에 참여할 마음이 없었을 것 같긴 하다 -. 하지만 오피스 매니저는 매번 나를 볼 때마다 "한국 culture day는 언제 할 거야?"라고 물었고, 나는 매번 회사에 한국인이 혼자라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예를 들면 사내에 파키스탄 사람들은 스무 명이 넘었고, 인도 출신이나 브라질 출신도 많았으니 그 사람들은 culture day를 준비하는 데 큰 부담감이나 준비하는데 그다지 많은 어려움은 없었을 거다.

그러자 오피스 매니저인 A 씨는 "회사 내에 프랑스 한 명이 있는데 마인드셋이 완전 한국인이라며, 둘이서 준비하는 건 어때" 하고 나를 몰아붙였다.

마인드셋.... 그녀가 알고 있는 한국인 마인드셋은 도대체 어떤 걸까?


A는 내가 한국으로 여행 간다는 걸 알게 될 때면 "한국에서 재료를 공수해서 culture day를 하면 되겠다, 자기에게 한복을 사다 달라" 등,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요구를 계속 해댔다. 약 몇 년간의 베를린 생활 덕(?)에 친절한 한국인 패치가 어느 정도 사라진 나는, 아니, 안돼, 그럴 수 없어,라는 단호한 거절을 했고, 그녀의 시무룩하고 뚱한 얼굴을 지켜보는 것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사팀으로부터 A가 8월에 off-boarding list (퇴사자 명단)를 받게 된 어느 날. 그녀는 탕비실에 지나가던 나를 불러 '맙소사 그만두는 거야?' 하며 나를 포옹했고, 나는 마지막 친절을 베풀고자 제35 자아를 꺼내서 슬픈 척, 상냥한 척 그녀와 마지막 small talk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에 시간 돼?"


우리가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이인데 주말에 만나는 건 내 입장에서 너무 어색한 일이었고, 나는 베를린에 없을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랬더니 A는 내게 명함 한 장을 건네며 시간이 있으면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라고 했다. 내가 그 명함카드를 버릴 것만 같았는지 나를 붙잡고 핸드폰으로 함께 그 웹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그건 JW 종교단체였다.


이 회사는 매주 목요일 tech team office day라서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사무실에 나가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무실에 갈 때면 사소하게 불편한 일들이 자꾸만 있어왔고, 의미 없는 small talk들로부터 시달렸고, 그래서인지 나는 매주 목요일만 되면 일주일치 소셜 에너지를 다 써버리곤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사무실에 너무나도 가기 싫었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사무실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회의를 하고....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너무 힘에 부치게 만들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네! 지금까지 싫어 bot의 변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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