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봐 쿵쾅쿵쾅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발걸음 소리가 있다. 뱀처럼 소리 없이 스르륵 지나가는 사람 - 예전에 상무 한 분이 뱀처럼 소리 없이 지나가서 동기와 나는 뱀상무라고 이름 지은 적 있다 -, 제발 나 좀 알아봐 달라며 큰 걸음 소리로 걷는 사람, 지익지익 신발을 끌며 걷는 사람 등.
사람 많은 사무실에 매일 출근해 일했던 시절에는 발소리 하나로 이 사람이 누군지 저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발소리는 사람 성격을 닮는지 시끌벅적한 사람들 발소리는 그 소리도 시끄럽고 내성적인 사람들 발소리는 그 소리도 조용했다.
내 기준 호감을 갖기 어려운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는 그 소리 또한 비호감이었다. 이 세상이 온통 제 세상인 양 쿵쾅거리는 소리가 어쩜 그렇게 꼴 듣기 싫던지 그 소리가 들릴 때면 나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 발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고 걸으려 했다 - 다른 누군가도 나와 내 발소리를 미워할 수 있으니 말이다 -. 그래서 마치 첩보영화(?) 주인공처럼 사무실 안에서는 최대한 조용하고 빠르게 A에서 B로 이동했다.
외국에 와서 일을 하며 코로나로 인해 본격적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는 더 이상 수많은 누군가의 발소리들을 듣지 않아도 돼서 행복했다. 그러나 정부에서 팬데믹 종식을 선언한 이후, 일주일에 한 번 사무실에 가기 시작했을 때는 또다시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어야 하긴 했다. 그래도 비 고정석에 앉아 일을 하고 사무실에 오늘 사람들도 매번 같지 않아서 더 이상 이 발소리가 누구의 발소리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사무실에 매일 같이 출근하던 시절에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향의 향수를 지독하게 뿌린 사람, 근처 자리만 지나가도 홀아비냄새가 배어 있는 사람, 말할 때마다 입에 섞인 담배와 커피 냄새를 풍기는 사람, 팔을 움직일 때마다 코를 찌르는 암내를 갖고 있던 사람들 때문에 한 공간에서 숨 쉬며 일하기가 어려웠다. 또 어떤 사람은 향수를 자리에 가져다 놓고 마구 뿌려댔는데, 내 취향의 향이라면 몰랐을까 그러지 못해 너무나도 고역이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 일하던 사무실은 창문이 열리지 않고 건물 내 설치된 공기정화시스템으로 공기가 순환되는 구조였는데 너무나도 많은 냄새가 섞인 사무실의 공기를 얼마나 잘 정화해 낼지 의문이 들었다.
외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도 그다지 사정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창문을 열고 닫을 수 있었다는 거다. 그래서 사무실에 출근하는 날이면 나는 되도록 창문 옆에 앉아 창문을 열어놓고 일했다.
재택근무는 여러모로 사무실에서 일하며 느껴야만 했던 피로도를 낮춰준다.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을 필요도, 내 코를 괴롭히는 수많은 불쾌한 냄새들을 맡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개발자는 재택근무를 하기 좋은 최적의 직업 중 하나다. 회의가 많은 마케터나 기획자들 같은 직군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풀리지 않는 문제를 대부분 혼자 풀어내야 하는 개발자들은 고독한 자신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이 필요하다 - 이것은 사견이다 -. 물론 시스템 디자인 회의나 설계회의의 경우 다 같이 모여 의견을 나눠야 하는 경우 오프라인으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만, 온라인으로 한다고 해서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요새 또다시 수많은 IT회사들이 일주일에 세 번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나 사람들을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일하게끔 추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 시대 때 재택근무가 잘 운영되는 걸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결정을 내리는 걸까. 이미 지불한 건물 임대료 때문에? 이미 차린 사무실을 놀릴 순 없으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집에서는 농땡이 친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최근까지 다녔던 회사는 팀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 사무실에 가거나 일주일에 두, 세 번 사무실로 출근해야 했는데, 어쩌면 내 팀도 근시일에 점차 더 많은 날을 사무실로 출근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수많은 소리와 냄새가 돌아다니는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혹시 퇴사를 결심한 거였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