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eaving soon.
나는 지금 무직 상태다. 당분간 회사를 알아볼 마음이 없고 앞으로 무얼 하며 돈 벌고 살아야 할지 구체적 계획 또한 없다. 당분간은 그저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고 쓰고 싶었던 글들을 쓰고 한국에서 여유 있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거다.
회사에 퇴사 통보 후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하나 둘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삼 개월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에게 퇴사한다고 인사하는 건 이번 회사가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일했던 회사는 자기 계발휴직 도중 퇴사를 했던 터라 이미 오래전 이메일 계정이 비활성화된 상태였다. 게다가 퇴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는 이미 그전에 개인적으로 연락을 돌린 상태라 - 다섯 명도 채 되지 않았던 듯하다 - 조직장, 인사팀과 면담 후 계약서에 서명을 한 후 한두 시간 안에 회사를 떠났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 회사의 경우는 나를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고를 당했어서 작별인사를 할 사람이 없었다.
삼 개월이라는 시간은 꽤 길어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같이 일했던 팀원들은 물론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다른 팀원들이나 어쩌다 가끔 인사만 나눈 사람들에게도 퇴사 소식을 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 아래와 같은 레퍼토리로 대화가 흘러갔다는 거다.
나: 잘 지내? (Hey, how are you?)
A: 그럭저럭 지내. 너는? (Hey, I'm doing good. What about you? )
나: 나 곧 회사를 떠나. (I'm leaving soon.)
A: 지금 집 간다고? (Are you going back home now?)
나: 나 퇴사 신청했어. (I've resigned a few weeks ago.)
A: 맙소사! 왜? 어디로 이직하는 거야? (OMG. Do you have any next plan?)
나: 그냥 쉴 거야. (No plan is my plan)
A: 뭐? 정말 부럽다. 너 정말 용기 있구나! (What? That is amazing. You are really brave.)
* How are you? I'm leaving soon.이라는 대화는 나중에 누군가에게 밈이 되었다 (안부를 물었더니 회사를 떠난다고 대답한다고....)
나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회사를 다니는 그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내 경우 회사생활이 싫다며, 개발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이런저런 이유로 업계에서 도망친 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꿋꿋이 일을 하며 다니니깐 말이다.
가끔은 내가 한 선택이 옳은 걸까 하고 걱정이 들기도 한다. 경력단절이 되면 어떡하지? 돈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솔직히 나는 언제든 주니어 엔지니어로 돌아가도 상관없다. 돈이 떨어지면 이런 때를 위해 받아 놓은 영주권이 있으니 독일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아르바이트를 하면 될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중에 또다시 개발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긋지긋한 프로그래밍 인터뷰, 끝없는 기술공부, 페어프로그래밍, 버그 잡기, 프로그램 성능 향상 하기 등....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누군가는 버그를 잡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프로그램의 성능을 향상할 때마다 보람을 느끼고 일의 즐거움을 느낀다. 나도 신입시절에는 그런 것들에 즐거움을 느끼고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일로 느껴질 뿐이었다.
만약에 내가 나만의 회사를 운영한다면 개발일이 덜 지겨울까? 내 회사고 내 일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만들고 싶은 게 없었다. 그리고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 온다.
한 번은 친구가 사업 동업제안을 한 적이 있다. 본인이 마케팅, 영업, 회계 등 모든 걸 책임질 테니 나는 기술 개발 쪽만 책임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공동 창업을 해서 내 회사를 갖게 된다고 한들 그다지 개발일이 재미있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더 높은 연봉과 직책이 내게 일의 동기가 될 수는 없을까? 리크루터들은 더 높은 연봉의 테크리드 직을 권유하곤 하지만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높은 연봉과 직책은 내게 그만큼의 책임감을 요할 뿐이니 말이다. 하루에 일로 보내는 8~9 시간. 스스로에게 보다 의미 있는 일들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다행히 현재 나는 경제적으로 support 해야 할 가족이 없고 - 모두들 여전히 일하는 중이다 - 갚아야 할 빚도 없으며 - 집이고 뭐고 산 게 없다 -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건강한 편이다. 그래서 무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는 그걸 취할 수 있던 거다.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인간의 삶은 그때그때의 결정들로 그 방향이 정해진다는데, 내 삶의 방향은 점점 성공적인 개발자의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어쨌든 인간이 80살까지 산다고 했을 때 난 아직 절반도 살지 않은 셈이니 꼭 개발자만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세상은 넓고 다양한데 좀 더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그런데... 뭘 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