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의 고급화
흑백요리사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단어가 익숙할 것이다.
'파인 다이닝'
그래서 나도 흑백요리사의 장르를 따로 지칭해보려고 한다.
'하이엔드 쇼'
'하이엔드'는 패션 쪽에서 자주 쓰는 용어인데 '고급화'라는 뜻이고, '쇼'는 바로 '예능'을 뜻한다.
내가 볼 때 흑백요리사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예능이었다. 일단 OTT에서 서비스하는 대부분의 예능은 TV에서 보는 예능과는 달리 어마어마한 자본을 붙여서 운영한다. 그래서 압도적인 규모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 나름이다. '피지컬 100'이 그러했고, '더 인플루언서'도 그러했다. 물론 언급한 이 두 프로그램은 그저 돈이 많이 들어갔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이다. '피지컬 100 시즌1'이 특히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지 않았는가? 운동을 좋아하는 나도 시즌2를 보진 않았고, '더 인플루언서'는 그냥 지나가는 광고 쇼츠처럼 취급했다.
그런데 나는 왜 흑백요리사는 시청하게 된 것일까?
리뷰를 쓰는 중에 짤막하게나마 얘기한 적이 있긴 한데, 백종원 대표의 검은색 장갑 끼는 모습을 보고, 시청을 결심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백패킹', '골목식당', '3대 천왕' 등 여러 프로그램 등을 무수히 시청하면서 본 백종원의 모습은 친근하면서 접근성이 높은 인물이었다. '흑백요리사'에서의 모습에서는 복장이나 분위기를 통해 색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한 기업의 대표로서 무게감을 더해주는 모습을 매우 신선했고, 그것은 나를 순식간에 매료시켰다.
그럼 어떻게 흑백요리사는 브랜딩 된 것일까? 이에 대해 내 생각을 덧붙여 보고자 한다. 사실 우선은 해당 콘텐츠를 눌러보고 싶게 만들어야, 보고 싶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고보면 어드벤처 예능, 연애 예능, 여행 예능, 가족 예능 등 다양한 종류의 엔터테인먼트가 수없이 만들어졌다 없어지길 반복했다. 그것은 TV 뿐 아니라 OTT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은 누군가에겐 재밌었을 거고 누군가에겐 유희거리조차도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넷플릭스라고 해서 특히, OTT라고 해서 항상 자본력으로 밀어붙이는 콘텐츠를 제작하진 않는다. 설령 투자가 많이 들어갔다 하더라도, 그 무게감이나 가치를 시청자가 실제로 느끼지 못한다면 소용없다. 출연진들의 태도, 대화, 연출, 분위기 등을 통해 돈만 덕지덕지 들어간 유머스럽고 캐주얼한 예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굳이 구독비를 주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예능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흑백요리사는 과연 OTT 예능다웠다. 돈을 내고 볼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했다. 무엇보다 앞서 말한 백종원의 새로운 모습은 내 지갑에 손을 대기 충분했다. 이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하이엔드 쇼'로서 돋보였는지 이야기해보겠다.
1. 복장
1) 정장
아까 말했다시피, 복장이다.
안성재 셰프와 백종원 대표의 복장은 1화부터 12화까지 거의 큰 차이 없이 매우 세련된 정장 차림이었다. 물론 중간에 안성재 셰프가 요리사 복장을 하긴 했으나, 그게 오히려 비교하는 데 도움이 됐다. 심사위원으로서 정갈한 복장을 하고 있을 때 그 분위기가 남달랐다. 백종원 대표가 처음에 정장에 카디건을 한 차림도 생각보다 멋졌고, 무엇보다 안성재 셰프의 보라색 정장은 백종원 대표와 상반된 느낌을 주면서 본인의 색깔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스스로 선택한 색깔인지 아닌지 모르나 첫인상을 매우 강렬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차림은 외적인 면에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고급스럽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가령, UFC라는 격투 스포츠 단체에서는 코너 맥그리거라는 인물은 UFC의 기업 가치를 한껏 끌어올리는 데 상당한 공헌을 했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언행과 독특한 성격, 스타일리시한 패션 등은 본인의 정체성과 이미지뿐 아니라 기업 이미지까지 변화시켰다. 그중에서 그의 특별한 패션, 맞춤형 정장과 다양한 액세서리는 고급스러움을 더할 수 있었다. 단순히 그의 경기를 즐기기보다는 패션에 포커싱 되는 경우도 많았고, 이는 본인의 가치를 드높이는데도 사용되었다. 기존에 UFC 선수들은 간편한 복장(운동복 및 일상복) 등을 통해 공식 석상에 서는 게 대부분이었으나, 코너 맥그리거의 등장 이후로는 컨텐더급 선수일수록 기자회견장과 같은 곳에서 신경 쓴 복장을 하고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2) 계급에서 나오는 복장의 차이
이뿐 아니라, 흑백요리사 특성상 백수저 복장과 흑수저 복장도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복장을 얘기하기보다는 흑과 백으로 계급을 나누면서 보이는 백수저의 하얀색 요리 복장은 마치 유럽의 프록코드, 한국의 관복, 미국의 정장 같은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게다가 백수저가 보여주는 기품과 경험치 등은 개인뿐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를 '하이엔드 쇼'로 만들어주기 충분했다.
이처럼 개인의 복장 역시 쇼의 분위기에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줬다고 생각한다.
2. 시설과 규모
1) 대규모 주방 설치
라운드마다 펼쳐지는 주방 시설들이 감탄을 자아냈다.
고급스러움은 단순히 개인의 시각적 화려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이면에 숨겨진 정교한 기획과 세밀한 준비 과정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한다. 사실 규모 면에서는 이전에 비교적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도 대단했겠지만, 흑백요리사는 백종원 대표가 말했듯이 기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주방 시설 설치가 매우 난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해냈다. 심지어 같은 자리에 재설치까지 했으니, 그걸 설계하는 분들이나 설치하는 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안 간다. 그것은 출연진들도 놀라게 했고, 그걸 보는 시청자들도 놀라게 했으니, 환호하는 맛에라도 시청하는 재미가 있었다.
2) '비싼' 콘텐츠가 아닌 '진정한' 콘텐츠
궁극적으로, 이러한 대규모 세트의 구현은 프로그램의 품격을 드높인다. 이는 단순히 비용을 들이는 것을 넘어, 고도의 전문성과 기술력, 디테일한 기획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제작진들은 이러한 노력이 더해진 가치를 화면 너머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며, 그저 '비싸기만 한' 콘텐츠가 아닌 '진정한' 콘텐츠를 느끼게 만든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콘텐츠의 규모와 퀄리티를 허황스럽다고 느끼는 게 아닌 간접 경험을 절로 하게 되며, 프로그램의 숨겨진 본질적 가치를 극대화하여 체험한다.
이것은 사실 OTT의 기본 공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시설과 규모로도 실패하는 콘텐츠들이 많은 지금, 생각보다 더욱 신경 써야 할 요소이다.
3. 인원
1) 편집의 자유도와 다양성의 극대화
인원은 다양성과 차별성을 더하기에 중요한 부분이다.
가수, 배우, 예능인 등 연예인들도 종류가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재밌는 사람들을 선별하고 선별하여 예능 프로그램에 투입된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숨겨진 역량을 끌어내기 매우 힘들고, 재밌는 모습을 끌어내 편집하는 것도 상당히 고된 일이다. 그런데 인원이 많으면 앞서 말한 규모 면에서 뿐 아니라, 제작진 입장에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아이돌 그룹도 인원이 많은 이유가 '그중 한 명이라도 잘되자'라는 것도 내포하고 있질 않겠는가? 그처럼 100명이라는 인원은 수백 수천 가지의 콘텐츠를 뽑을 수 있는 엄청난 자원이기도 하다. A 출연진이 재미없으면, B 출연진으로, B 출연진이 재미없으면, C 출연진으로 카메라를 넘기며 흥미 요소를 찾아내면 된다. 물론 재미있는 게 너무 많으면 그거대로 문제겠지만, 유튜브 시대가 현재진행형인 지금 다양한 플랫폼에 미방분을 공개하면 될 일이다. 실제로 흑백요리사 미방분이 조금씩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2) 콘텐츠의 깊이와 품질 향상
인원의 규모뿐 아니라 수많은 자원 중 쳐낼 부분은 쳐내며 콘텐츠를 가볍게 만들지 않고 최대한 자극적이지 않은 부분을 도려내어 프로그램의 깊이감을 더할 수도 있다. 재료의 방에서 나왔던 '반말' 장면도 예고편으로는 나왔다가, 본방에는 제외한 것도 그러한 부분을 의식한 게 아닐까 싶다. 지식적으로도 그렇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있는 만큼 다양한 지식이 영상에 남을 것이다. 그것은 프로그램에 전문성을 더하고 고급스러움을 교육적 가치를 지닌 콘텐츠가 되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 이는 희소성과 배타성을 높여 시청자들에게 지적 만족감을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
4. 출연진들의 태도
1) 인생을 엿볼 수 있는 개인의 프로페셔널리즘
출연진들이 보여준 요리에 대한 열정은 그야말로 100명 아니 102명 모두가 하나와 같았다.
물론 그들 모두를 자세히 들여다볼 순 없었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 혹여 있더라도 덜어냈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방송을 통해 그들을 들여다봤을 때 그들의 태도는 매우 품격 있었다. 아마 주목받았던 그들 모두가 상당히 멋진 모습을 보여줬기에, 나폴리 팟스타가 드러낸 격한 자존감과 자신감이 좋게 안 비친 것도 있는 것 같다. 여하튼 출연진들이 보여준 진지한 태도와 열정은 프로그램의 깊이와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는 동시에, 브랜드 신뢰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이는 라운드를 거듭하면서 보이는 일관된 태도를 통해 그 믿음을 점차 더해갔다.
2) 스토리텔링 강화
철가방요리사가 여경래 셰프에게 보여준 리스펙 하는 태도, 요리하는 돌아이의 다소 거칠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 최현석 셰프가 재료의 방과 레스토랑 미션에서 보여준 리더십, 최강록 셰프가 재료의 방과 패자 부활전에서 보여주는 배려 등 이것 말고도 수십, 수백 가지이지만 나름의 낭만에서 피어 나오는 품격 있는 모습들이 그러했다.
이처럼 '흑백요리사'에서 보여준 출연진들의 태도는 프로그램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이는 단순한 연출이나 편집을 넘어서는, 진정성 있는 브랜드 가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고 본다. 프로페셔널리즘, 열정, 존중, 겸손함 등의 가치들이 출연진들의 태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출됨으로써, '흑백요리사'를 단순한 요리 프로그램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자 강력한 브랜드로 만들어 '진짜 하이엔드 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보면, '흑백요리사'는 다방면에서 큰 파급력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1. 브랜드 가치 상승효과
'흑백요리사'는 아마 넷플릭스 입장에서 고품격 예능의 기준점으로 삼을 만한 하이엔드 쇼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를 통해 OTT 플랫폼의 브랜드 이미지를 격상시켰으며, 구독자를 모으는 데도 상당한 공헌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협찬사나 광조주에게도 프리미엄 이미지를 제공하여 서로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 콘텐츠의 다각화
'흑백요리사'는 이제 요리 프로그램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다양한 캐릭터를 탄생시키며, 국내 예능에 풍부한 콘텐츠 소스를 제공하였다. 시즌2를 기대하기에 앞서, 미방영분, 스핀 오브, 디지털 콘텐츠 등 여러 플랫폼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에서의 성공적인 결과물인 만큼 국제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앞으로 넷플릭스가 생산해 낼 다른 장르의 콘텐츠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3. 산업적 파급 효과
'흑백요리사'를 통해 가장 눈에 띄게 발전한 산업은 아마 외식업계, 요리업계일 것이다. 유독 침체된 것으로 보인 해당 산업들은 이번 기회로 꽤나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 인력 양성, 관련 상품 개발, 콘텐츠의 다양화 등 여러 방면에서 말이다. 이를 통해 숨겨진 비즈니스 모델 창출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스타벅스 전 CEO, 하워드 슐츠의 말을 남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고 오래 지속되는 브랜드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그들은 진실하고 지속 가능하다. 그들의 기반은 광고 캠페인이 아닌 인간 정신의 힘으로 만들어졌기에 더욱 강하다. 오래 지속되는 기업들은 진정성 있는 기업들이다.(In this ever-changing society, the most powerful and enduring brands are built from the heart. They are real and sustainable. Their foundations are stronger because they are built with the strength of the human spirit, not an ad campaign. The companies that are lasting are those that are authentic)
결론적으로, '하이엔드 쇼'의 브랜딩은 단순히 외적인 화려함이나 대규모 투자에 그치지 않는다. 진정성, 지속 가능성, 인간적 가치, 신뢰성 등을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고, 오래 지속되는 강력한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흑백요리사'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고, 의미 있는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미지 출처 : AI 및 나무위키(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