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오브 콘덕트
분위기가 과열된다고 생각하셨는지 경청하던 교수님이 개입을 하셨다. 사례자의 행동을 다수가 스토킹이라고 인정하고 있어서 토론이 마무리되어 가는 때이기도 했다.
“자자, 아까 누구더라? 행동에 관한 법 조항 얘기를 했던?”
법 조항이 있어야 한다면 너무 많은 조항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했던 1학년 학우가 화면에 보이도록 얼굴까지 손을 들었다 내렸다.
“그래요. 나는 그 얘기를 다시 해보고 싶은데, 범죄를 규정하기 위한 행동지침을 만든다는 가정을 해봅시다.”
“어느 정도 선까지요?”
누군가에게서 질문이 나왔다.
“그 얘기를 해보자는 겁니다. 여기서 질문!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봤다고 합시다. 그 이성에게 말을 거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또 다른 학우의 대답에 학우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도 세상을 낭만적으로 보고 있군요.”
교수님이 같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그런데 말을 붙였다가 거절을 당했네?”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자, 몇 번까지 트라이하는 게 허용될까요? 딱 한 번? 두 번?”
“딱 한 번이죠.”
“튕기는 것일 수 있으니 두 번까지는.”
다시 터진 웃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교수님이 말했다.
“딱 한 번이라고 한다면 이제 튕긴다는 개념은 없어져야 하지요. 좋으면 좋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사회가 돼야 싫다는 말이 힘을 얻는 겁니다. 자, 내가 말하는 행동 지침이란 이런 겁니다.”
“대시는 딱 한 번, 싫다면 거기서 끝, 이런 식이군요.”
“내 견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행동지침을 만드는 것이 자신이 주장하는 바는 아님을 분명히 하며 교수님이 말을 이었다. 교수님의 견해가 학생들에게 선입견으로 작용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의미는 그래요. 나는 이 주장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스토킹이나 성폭력 같은 젠더 범죄를 규정할 세부적인 행동강령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미 많이 다뤄 본 주제였다.
준법성은 다수의 정신장애를 진단하는 주요 특징 중의 하나이므로 법의 테두리를 명확히 하는 일은 우리가 배우는 학문과 무관하지 않다. 선배들에게는 익숙한 이 주제를 교수님은 1학년 학우들을 위해 다시 거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입법의 영역이 아닌 가설에 한정된 논의였지만, 애매한 조항으로 피해자가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억울한 가해자가 나오는 일이 이미 속출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성을 대하는 합법적인 행동강령은 꼭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인류의 진화적 속성이 결국에는 발전적 균형을 이루어 간다는 인간 본성에 관한 인문학적 견해에 매번 발목을 잡혔다. 나로서는 개인의 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제대로 된 교육으로 의식만 갖춰진다면 선한 기준에 맞춰 스스로 한계를 정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느냐는 발표로 미온적이고 안일하다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 여친의 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대학에 와서 만난 내 첫 여자친구였던 현아는 행동강령 없이도 똑 부러지는 주장으로 확실하게 선을 그으며 나를 떠나갔던 것이다.
현아와 헤어지게 된 것은 딱 한 번의 실수 때문이었다. 정말 딱 한 번이었다.
그녀와 사귀던 1년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무례한 적 없었고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구속한 적 없었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그러나 다툼 끝에 내가, 문자하고 카드내역을 까보라고!,라고 했던 말이 헤어짐의 원인이 되었다.
나는 그 말을 하자마자 후회했고 바로 진지하게 사과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후회도 사과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녀가 떠난 것이 명백해진 다음에도 나는 딱 한 번의 말실수로 그녀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내 못된 말을 초장에 고치기 위해 벌을 주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착각한 나는 오래 알아 왔던 노래 가사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그녀의 집 앞에 가서 전화를 걸고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노라고, 그래서 지금 너희 집 앞에 있노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때의 심정으로는 성공만 한다면 그 노래를 부른 가수를 형님으로 모실 결심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냉담했다.
물론 한 번에 용서를 받으리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전화를 그냥 차갑게 끊어버리자 나는 맥없이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대로 그녀를 잃을 수 없다는 간절함이 나를 멈출 수 없게 했다. 나는 다음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그녀의 집 앞으로 가 전화를 했다.
“거기서 기다려, 지금 나갈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그녀가 나오겠다고 했을 때 나는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오만하게도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그 노래를 부른 가수와 작사가까지 포함해서 혼자 도원결의를 다짐했건만 10분도 안 돼서 나온 그녀의 용건은 무참했다.
“내가 분명하게 말을 안 했다고 생각해서 네가 이러는 거지?”
그녀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너랑 헤어졌어.”
당당하고 분명한 말이었다.
“지금까지는 몰라서 그랬다 치고, 이제 확실하게 말했으니까 지금부터는 범죄인 거야.”
그녀의 태도에는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3학년 동기의 독백 같은 질문으로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매뉴얼리즘에 관한 것일까요?”
“매뉴얼리즘요?”
용어를 빠르게 검색한 1학년 후배 하나가 토를 달았다.
“매뉴얼리즘은... 좀 다른 뜻인데요? 이 의미가 지금 맞는 해석인가요?”
교수님의 의도에 따라 선배들이 신입생의 이해를 돕도록 고안된 수업이었으므로 3학년 학우 하나가 설명을 했다.
“현대에 와서 지침주의이나 규범주의로 사용된 예가 있습니다. 물론 더 확장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요. 여기서는 강령주의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처음 매뉴얼리즘 얘기를 꺼냈던 동기가 다시 말을 받았다. 강제보다 선한 본성의 회복에 답이 있다고 믿는 친구였다. 그러나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그의 주장은 공허한 이상주의로 치부되곤 했다. 그는 통탄해 마지않는 어조로 마치 연극 대사를 외치듯이 과장되게 말했다.
“이제 인간의 도덕성에 희망을 거는 시대는 끝난 건가요? 이건 스카이넷 침공보다 냉혹하고 무자비한 코드 오브 콘덕트의 침략입니다.”
“교수님, 시간 다 됐는데요? 제일 냉혹한 것은 우리 과대였다. 1초의 시차도 허용하지 않는 무자비함이었다. 그가 맞춰놓은 알람 소리가 마이크를 넘어 우리에게도 들렸다. 여러 차례 설전을 벌였음에도 결론을 낼 수 없었던 주제로 다시 돌아간 토론이 다행히 시작되지 못했음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