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만 오지 않았다면 모든 일이 맞아떨어졌을 것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퇴근을 해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딸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들어와 막 설거지를 마친 다음이었다. 이제 서너 시간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나 오후 타임에 맞춰 출근을 하면 딱 맞아떨어지는 일이었다. 내 친정엄마가 자신의 친정엄마까지 대동해서 불시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엄마는 벨을 누르지 않는다. 매번 바뀌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띡띡띡 현관 번호를 누르며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이게 왜 안돼,라고 신경질을 냈다. 그리고는 바꾼 번호를 기어코 알아내서 돌아갔다. 엄마가 눌러대는 띡띡 소리는,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딸에 대한 영역 표시다.
“어떻게 왔어?”
“별이 애비가 태워 왔지.”
대답을 한 사람은 할머니였다. 엄마는 아들에게 누구누구 애비라는 호칭을 쓸 사람이 아니다. 사위고 며느리고 손주까지 남의 자식은 다 마뜩잖은 그녀는, 세상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 당신의 잘난 아들을 망쳐놨다고 믿는 사람이다. 게다가 별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손주의 태명인 것이다.
“엄만, 걔가 왜 벌써 애비유?”
뭐라고 할지 뻔한 엄마의 말을 끊으며 내가 물었다.
“얜 어디 가고?”
“차를 대지”
이 대답도 할머니가 했다. 엄마는 할 수 없어서 왔다는 듯이 못마땅한 얼굴로 으등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안 봐도 알 만한 일이었다. 할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당신의 딸인 내 엄마의 집에 왔다. 명목상으로는 같이 사는 며느리를 좀 쉬게 해 주자는 게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할머니가 푹 쉬다 갔다.
그런데 엄마의 집에 내 올케가 들어오면서 그마저도 쉽지 않게 된 것이 문제였다. 대현이란 아들놈, 그러니까 내 동생이 임신한 여자를 데리고 들어올 때만 해도 주도권은 펄펄 뛰는 엄마에게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주도권은 금방 올케에게로 넘어갔다. 이 아들놈이 엄마를 배반하고 제 처를 맨 상위에 두는 권력의 새 구도를 짜는 데 일조를 한 것이다. 똑똑한 놈이었다.
배가 부른 것이 벼슬인 올케는 시외할머니를 딱 하루만 재워 드리고, 시어머니가 차린 아침상으로 생색을 낸 다음, 남편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누나 집으로 모셔가게 했을 것이었다. 그게 여기다.
“자는데 깨운 거 아니지?”
대현이가 뒤따라 들어오며 누나 걱정 비슷한 것을 했다.
“미리 전화라도 하지.”
“어차피 올 건데 뭣 하러. 이렇게 보면 되지.”
“없으면 어떡하려고.”
“없긴 왜 없어? 밤샘 근무했다며. 오후에 다시 나가려면 집에서 잠을 자겠지.”
그걸 아는 놈이.
“밥은 집에서 드셨으니까, 점심은 청요리를 시켜 드리자고.”
할머니가 말하는 식으로 청요리라고 하며 대현이는 자기가 같이 돈을 내겠다는 투로 말했지만 그의 말버릇일 뿐 어림없는 소리다. 내 엄마가 차린 상으로 생색을 내는 올케와 부창부수였다.
“얘, 청요리는 내가 전날에 먹었다. 할미가 늙어서 기름진 거를 자주는 못 먹어.”
손녀의 돈 걱정이 먼저인 할머니가 마다하는 소리를 하자 짜증이 일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동생을 이겨 먹는다고 엄마에게 쥐어박혀 울고 있는 내 손에 천 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던 할머니였다. 대현이의 손에 들려 있던 퍼런 만 원짜리는 아니었지만 운다고 윽박지르지 않고 돈을 주어 달래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마음이 부들부들해지려는데 내 엄마가 초를 치는 소리를 했다. 참 나하고는 안 맞는 엄마다.
“그냥 있는 반찬 꺼내고 국이나 하나 끓여서 가든하게 먹지 뭘. 시켜 먹는 건 저녁에 아이 오면 하고. 쟤 처도 불러다가.”
왜 엄마는 내 집에 꺼낼 반찬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밤샘 근무를 했고 오후에 출근한다고 금방 들었건만, 냉장고를 뒤져 없는 반찬을 만들어내고 국까지 끓여 상을 차리라는 말이었다. 게다가 언제부터 챙겼다고 안중에도 없는 며느리 걱정까지 하면서 사위는 언제 들어오는지 묻지도 않았다.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오해가 됐다.
“엄만, 누나가 언제 밥을 해? 출근도 해야 하는데. 나도 저녁엔 못 와.”
평소 같으면, 그것도 직장이라고, 했을 엄마지만 지금은 말없이 쓴 입맛을 다셨다.
“에미 직장이 거기라매?”
내 속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할머니가 말을 돌렸다. 할머니가 말하는 에미는 나다.
“엄마가 알우?”
“알지. 그 햄버거를 파는 데잖아. 우리 늙은이들도 한 번씩은 가. 눌러서 시킬 줄도 아는걸? 요샌 노인학교에서 다 가르쳐.”
눌러서 시킨다는 건 키오스크 얘기다.
프랜차이즈 매장은 대부분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고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손님을 위해 직원이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사용법을 아는 어르신은 도와드리면 분노했고, 모르는 어르신은 알아서 도와주지 않는다고 분노했다. 문제는 기계를 대면한 노인들의 행동만으로는 아는 분과 모르는 분을 구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웬일인지 직원들을 꼭 반대로 했다. 우린 이것을 키오스크 법칙으로 부른다.
“노인네가 세련이우. 쟤 직장은 어떻게 알았대?”
엄마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수아애미가 말해줬지.”
엄마의 낯빛이 확 변하더니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수아애미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엄마의 올케이며 내 숙모다. 딸이 어디서 일하는지 가장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엄마는 숙모를 꼽을 것이다.
내 엄마가 그렇게 쉬쉬하는 것을 보란 듯이 떠벌린 사람이 내가 맞았고, 엄마가 유독 숙모에게만 그러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숙모는 젊었고 그녀의 아이들은 어렸다. 과외다 학원이다 가르쳐가며 지극정성으로 키운 아이들이 자라서 햄버거 파는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도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아직 자식들에게 소망이 있고, 자신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노력한 만큼의 기회를 반드시 얻을 수 있는 사회라고 굳게 믿을 나이였다.
그렇다고 엄마 나이가 되면 저절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닌 듯했지만, 서로 욕설 섞인 푸념이라도 주고받으려면 자식에게 발등 좀 찍혀 본 같이 늙어가는 처지 정도는 돼야 했다. 그러나 엄마와 숙모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로서는 직업을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쟤가 하는 일이 매니저라는 건데, 햄버거 파는 애들 있잖우? 그 애들이 다 쟤 아래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엄마가 부끄러운 일을 당한 사람처럼 수습을 하느라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그러나 내가 이 일을한 지가 몇 년인데 안 알려드린다고 할머니가 모르실 거라 생각한 엄마가 순진한 거다.
“그래? 에미가 큰일을 하는구나.”
“그런 거 없어. 내가 햄버거 팔아."
내가 어겨라고 말했다. 엄마의 말 같지도 않은 편견에 진절머리가 났다.
“요즘 애들이 직장을 가지려고 해야 말이지. 젊은 애들이 다 그렇대요”
엄마가 내 말을 무시하며 두둔하는 소리를 했다. 내가 아니라 나 같은 딸을 둔 자신을 두둔하는 말이었다.
“이게 직장이라고! 4대 보험에, 수당에, 퇴직금까지 다 있는데, 이게 직장이 아니면 뭔데?”
“누가 뭐래니?”
“야야, 그 회사가 참 좋구나. 우리 손녀가 장하다.”
할머니가 천 원짜리를 쥐어줄 때처럼 어야 어야 하는 소리로 나를 도닥였다. 그러나 엄마는 뒤늦게 성이 나는지 할머니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언성을 높였다.
“그래서, 그것도 직장이라고 동네방네 자랑질이냐? 어린애들이나 아르바이트로 잠깐 하는 거지. 남의 집 애들처럼 번듯한 직장에는 못 다닐망정.”
“그 번듯한 직장이라는 게 뭔데?”
본인이 말하는 번듯한 직장이라는 게 어떤 건지 엄마 스스로 알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번듯한 직장이라면 대기업이나, 교사나, 공무원 정도일 텐데 엄마가 아는 남의 집 애들 중에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영등포 아줌마 아들은 택배 일을 하며 처자식을 너끈히 건사하고 있었고, 수자 이모 딸은 입주 청소로 잔뼈가 굵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신촌 아줌마가 돈이 좀 있어서 아들 앞으로 가게를 내줬다고 했다. 기억이 닿는 나이 이래로 나는 실체가 없는 남의 집 애들과 비교를 당하며 살아왔다. 엄만 그냥 내가 싫었던 거다.
“내가 그놈의 번듯한 직장을 다니면 우리 애를 봐줄 수나 있고?”
손주를 봐줄 의무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억지스럽게 말했다. 나는 원래 할머니가 있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으므로 아무 말이나 막 할 작정이었다. 어차피 할머니는 결국에는 손녀 편을 들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