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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Oct 29. 2024

시간의 지연 3

엄마의 아들

  녹초가 돼서 집에 오니 남편 종호가 들어와 있었다. 종호는 공장 기술자다. 내가 직장을 옮긴 이후로 시간을 늘려서 삼 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나와 바통터치를 하며 새벽 근무를 하러 나갔고, 오후에 퇴근해서 딸아이를 찾아오게 돼 있었다. 

내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있던 아이가 발딱 일어나 달려왔다. 아이 손에는 과연 그 두 번 접은 만 원짜리가 들려 있었다. 저녁에는 못 온다던 대현이도 올케를 데리고 와 있었다.

“넌 출근 안 해?”

대현이가 제 처 눈치를 쓱 보더니 입을 다물라는 사인을 보냈다. 그새 또 일을 관둔 모양이었다. 

프랜차이즈 매장직을 전전하는 그는 이미 세 번째 이직을 했다. 직장으로 생각도 안 하면서 매번 알바도 아니고 직원으로 입사를 하는 대현이 같은 사람이 문제였다. 

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항상 다른 곳을 기웃거렸고 연락도 없이 잠수를 타기도 했다. 프랜차이즈 매장 정도는 언제든지 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여기에도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있어서 녹록하진 않을 거였다. 


“너 이리 와 봐.”

데려다가 얘기를 하려는데 엄마가 아들의 팔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야, 넌 왜 들어오자마자 애를 잡아? 그깟 거 그만두면 좀 어때서.”

그러면서 할머니에게 이번에는 확실히 아들을 두둔하며 말했다.

“대현이가 아르바이트를 좀 하다가 경험을 쌓아서 지 가게를 낸다고 그래요.”

어이가 없었다. 돈은 있는데 경험이 없어서 가게를 못 낸다는 투였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저 애 등록금까지 나한테 꿔간 건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졸업하면 벌어서 갚게 한다더니 아직까지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그깟 거라니? 쟤가 그거 아니면 뭐 할 건데? 가게 내 줄 돈은 있고?”

“너 말 잘했다. 얘가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됐는데? 누나라고 하나 있는 게 본은 못 보일망정.”

엄마가 억울하고 원통하다는 듯이 주먹으로 바닥을 땅땅 두드렸다. 해가 지면 아이도 까치발로 걷게 하는데 다 저녁에 놀랐을 아랫집 걱정이 됐다.

“이 머리 좋은 애가 보고 배운 게 그거니 아무리 똑똑한들, 응? 이래서 첫 것이 테이프를 잘 끊어야 하는 건데.”

사위가 있거나 말거나, 아이가 있거나 말거나, 딸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데 이골이 난 엄마가 아무 말을 했다. 올케가 눈치껏 주경이를 데리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올케도 제 남편 얘기라고 듣기 싫은 얼굴이었다.

“쟤가 저러는 게 나 때문이라고? 그깟 거 관둬도 된다는 엄마 사고방식이 문젠 거야.”


악에 받쳐 소리는 쳤지만 대현이가 이 업종에 발을 들이게 된 게 나 때문이 아니라고는 말 못 했다.

취업에 별 뜻이 없이 횟수를 꽉 채워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미적거리던 그가 눈을 돌린 곳이 내가 일하는 프랜차이즈였던 건 사실이다. 천직으로 알고 성실하게 일하는 가장들은 보이지 않고 적게 일해서 제 한 몸 먹고살 만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애초에 이 길을 몰랐다면 어떡하든 제 전공에 맞는 일을 구해서 엄마가 말하는 번듯한 직장인이 되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책임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엄마 말대로 어려서부터 영특하다는 말을 듣던 아이였다. 어쩌면 대현이는 불성실한 게 아니라 이 일이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 씨.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이게 뭐라고 난리야. 할머니도 계신데 그만들 못 둬?"

대현이가 들을 만큼 들었다는 듯이 소리를 쳤다. 제일 꼬래비 같은 게 어디서 어른 마냥 번번이 버럭질을 하는 데도 엄마는 나무라기는커녕 찔끔해서 말을 관뒀다. 그러더니 불똥이 엉뚱하게 종호한테로 튀었다.

“자네는 언제까지 밤샘에다 새벽 근무를 할 건가? 사람이 밤에 자고 아침에 출근을 해야지.”

사위한테 별 관심도 없는 엄마가 선수를 잡자고 거는 시비였다. 


엄마는 사위한테 할 말 다 하는 입바른 장모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예 장모가 되지 않았으면 제일 좋았겠지만 말이다. 

따지고 보면 엄마와 제대로 틀어진 것은 내가 기어코 종호와 결혼을 하고 나서였다. 엄마의 반대는 맹렬했다. 홀어머니에다가, 없는 집의 외아들이고, 현장 노동자라는 게 이유였다. 네가 그 모양이니 저런 남자밖에 못 만난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딸이 다 알아서 하는 결혼에 축의금만 챙길 엄마의 반대는 아무리 맹렬한들 힘이 없었다. 


당신의 아들에 비해 며느리가 기운다고 생각한 것은 종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내 엄마보다 사리 판단이 분명하고, 오랜 사회생활의 경험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아는 분이었다.

내가 직장을 옮길 당시에는 내 엄마와 똑같이 프랜차이즈의 메니저라는 직업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곧 내 직장이 이 막막한 사회의 필요불가결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이해했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찾아보고 해서 알아낸 학습의 결과였다. 아들이 혼자 버는 것도 아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데도 수월할 거라고 판단한 종호의 어머니는 며느리의 새 직장을 달갑게 받아들이셨다.


“곧 그만해야지요. 할머니, 점심은 중식으로 하셨다면서요? 저녁은 나가셔서 한식으로 드실까요?”

엄마의 시비에 휘둘리는 법이 없는 종호가 밥을 먹으러 가자며 일어섰다. 그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경청하는 것도 아닌 선에서 적당히 흘려버릴 줄 알았다. 내 엄마에게만 아니라 자신이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들이 쓸데없이 하는 얘기를 귀에 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 표현으로는 현명한 사람이고, 엄마의 표현으로는 한 번도 지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이 대식구가 나가긴 어딜 나가나? 그냥 있는 걸로 간단하게 먹자니까.”

사위의 말이라면 반대부터 하고 보는 엄마가 종호의 말을 잘랐다. 그러나 있는 걸로 간단하게 먹자고 대현이 식구까지 불러다 여기 앉혀놨을 리가 없다.

“보자, 있는 게 없을 거예요 아마. 저희가 살림을 할 시간이 없어서요. 나가는 게 힘드시면 회를 드세요.”

종호가 회를 생각해 냈다. 할머니가 청요리 다음으로 좋아하시는 게 생선회였다. 선화동 중국집이 아니면 월미도의 횟집이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 할머니와 자주 다니시던 요릿집이었다. 


“처남이 노량진으로 좀 다녀오지? 전화로 주문해 놓을 테니 찾아만 오라고.”

사위가 당신 아들에게 노량진을 다녀오라고 하자 엄마가 펄쩍 뛰었다. 

“그 먼 데를 언제 갔다 오라고?”

“멀긴요. 아무리 막혀도 한 시간 반이면 다녀옵니다. 지금부터 밥을 해도 그거보단 더 걸려요, 어머니.”

눈앞에서 금쪽같은 아들을 심부름을 보내게 생긴 엄마가 분해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말을 들을 종호도 아니고, 아무리 시원찮은 인사라도 사위라는 이름이 붙으면 주춤하게 되는 게 장모들의 정서였다. 하긴 올케를 보니 며느리라는 이름이 붙어도 만만하게 대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긴 했다. 

부들부들 떠는 엄마의 항변이 무색하게 대현이가 벌떡 일어나서 겉옷을 걸쳤다.

“그럴게요, 매형. 근데 제가 사요?”

“처남이 뭘 사, 일도 관뒀다면서. 누나가 사야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자기 카드를 꺼내 처남에게 건넸다.

“처남댁은 날 거 많이 드시면 안 좋으니까 소라 같은 걸 좀 사 오라고. 익혀놓은 거 말고 새로 삶아달래서.”   


여섯 식구는 큰 상을 펴고 대현이가 알아서 이것저것 담아 온 회를 먹었다. 산낙지도 있고 개불도 있었다. 늦은 저녁으로 다들 시장하던 터라 회 몇 접시를 아주 달게 비웠다. 조카를 먹인다고 제 돈으로 사 왔다는 새우찜은 아이가 잠이 든 바람에 올케가 대신 잘 먹었다. 

생선뼈로 탕을 끓이는 일은 대현이가 했고 올케는 밥을 푸고 찌개를 날랐다. 할머니가 종호에게 우리 손주사위가 돈을 많이 써서 어떡하냐고 하자 종호가,

“네, 할머니, 오늘 무리 좀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주자주 오세요. 저희도 할머니 덕분에 잘 좀 먹게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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