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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Oct 29. 2024

시간의 지연 4

엄마의 엄마

  상을 대충 치운 종호가 자는 아이를 번쩍 안아 들고 안방으로 가고, 나는 아이 방에 요를 깔고 이불을 폈다. 할머니를 안방으로 모셔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는 동안 종호가 먼저 자리를 잡은 것이다. 

결혼을 하고 얼마 안 돼 시어머니가 열무김치를 들고 오셔서 하룻밤 주무시고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종호는 시어머니의 자리를 작은 방에 봐 드렸다. 말이 작은 방이지 열여덟 평짜리 아파트의 옷 방만 한 공간이었다. 내가 안방에서 주무시게 하자고 하자 그가 여기는 우리 집이니 우리가 안방을 쓰는 게 맞다고 했다. 이후로 그 일은 한 번도 예외가 없이 그렇게 지켜졌다. 

아이가 안방 침대로 갔으니 거기도 자리가 넉넉하진 않을 거였다. 새벽부터 일한 종호라도 편하게 자라고 나도 할머니 옆에 베개를 베고 누웠다. 

  

낮에 실컷 주무신 내 엄마와 할머니가 사분사분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시간을 위해 낮에 미리 잠을 자두신 것일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 소리를 자장가 삼아 그만 잠에 빠지려는데, 할머니가 생각났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퍼뜩 깨버리고 말았다. 고단했던 나는 다시 잠을 청할 생각으로 깬 기척을 안 했다. 

“야야, 그 배다리 한증막께 땜통네 있잖니?”

“그 양반이 여직 살아 계시우?”

할머니의 열심에 비해 엄마가 건성으로 물었다.

“무슨, 벌써 갔지. 그이 호상일 때가 아흔이 다 됐는걸.”

돌아가실 때가 아흔이었으면 당신보다 한참 연상일 텐데 할머니가 그분을 대하는 품은 거침이 없었다.

“귀때기가 시퍼럴 때부터 아들 하나 데리고 남의 집에 붙어서 빌어먹더니, 그 집 순자년이 아주 잘 되었다.”

“...."

“왜 땜통네한테 싸리재라고, 거기 싸리재에서 엿판을 매던 아들이 하나 안 있어? 그 딸년 순자 말야. 늬들하고 중학교를 같이 다니다 관둔.”


엄마가 대답이 없자 할머니가 부연 설명을 길게 했다. 순자라는, 땜통네 아들의 딸과는 동창이라니 엄마가 모를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거였다. 이럴 때 보면 엄마가 할머니를 많이 닮았다. 늬들이란 영등포 아줌마와 수자 이모를 말하는 거다. 

“너는 내가 고등학교엘 보내고 걔는 남의 집에 식모를 갔잖아? 느이가 걔 앞에서 고녀 교복을 입고 얼마나 들 쟀게?”

할머니는, 너는 내가 고등학교엘 보냈다는 말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씀하셨다.

“우리가 언제 그랬다고. 중학교를 마치고는 본 적도 없구만.”

“걔가 설라무네 중학교를 관두고 남의 집에 식모를 갔는데,” 

엄마의 말을 못 들은 체하며 할머니가 말을 이어갔다. 잠결인 듯 느긋하고 조분조분한 말투였다.

“그만 주인댁 마나님이 죽고 그 자리를 꿰찼단다. 걔가 시커머니 인물은 없어도 헤실헤실거리잖디? 주인 여자가 시름시름할 때부터 고게 영감님 방을 드나들면서 마나님 행세를 했더란다.”


할머니의 말에 억지로 붙들어 두었던 내 잠이 아예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할머니의 말은, 고등학교에 갔어야 할 아이가 식모살이를 갔다가, 안주인이 죽기도 전에 나이 많은 영감의 첩질을 해서 안방 차지를 하게 됐는데, 그 일을 두고 '잘 되었다'라고 하는 거였다. 누구누구네 집 자손이 군수가 됐다거나 서장이 됐다거나 할 때 쓰는 것과 같은 표현이었다. 거기다 그 어린애가 헤실거려 영감을 꾀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내 할머니지만 노인네의 무지에 앞이 캄캄해졌다. 달라진 사회에 적응하라고 키오스크도 가르친다면서, 그 노인학교는 바뀐 세상의 성범죄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 건지. 아무리 수십 년 전 일이라 해도 어디 가서 저런 얘기를 마냥 하다가 신고를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나라도 알려드려야 한다는 조바심에 날이 새는 게 아득하게 느껴졌다.


“미친,”

“첨엔 다들 그랬지. 그런데 돈이 상전이더라. 식모 때를 삭 벗고 마나님이 돼서 나타나니까 흉은 어디? 다들 굽신굽신하는 게.”

“......”

“아주 눈을 뜨고 봐줄 수가 없어. 고게 엉덩짝을 흔들고 다니면서 인부들을 척척 부려가며 애비 집을 지어준다 점방을 내준다 휘젓고 댕기는데, 그 빌어먹던 땜통네라매 싸리재서껀 아주 신들이 나서는.”

“어린 게 첩살이를 하게 됐다는데 엄마는 무슨 그런.”

“아니라니까 그러네. 마나님 죽고 고게 정실이 됐다니까?”

무식이 방패라 부끄러운 줄 모르는 노인네는 엄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노인네의 사고 속에서는 어린 여자의 나이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이 정실인지 첩인지가 중요했다.

“영감이 할아버지뻘이라면서요? 에그 징그러워라. 지금 같으면 죄받아요. 본처 자식도 너이나 됐다던데."

엄마가 몸서리를 치며 아는 소리를 했다. 이미 알고 있는 얘기를 장단까지 맞춰가며 이만큼이나 듣고 있는 거였다. 어쩐지 평소처럼 수선스럽게 맞장구를 치지 않는다 했더니 한두 번 들은 얘기가 아닌 듯했다.


“그래, 그게 좀 그래.”

뭐가 그렇다는 건지 아무 설명이 없이, 할머니가 한숨을 폭 쉬며 말했다.

“그러니 많이 배운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죽어라 가르쳐서 최고학력을 만들어 놨거늘.”

“최고학력은 무슨. 고등학교를 겨우.”

할머니가 누구라고 말을 안 했는데 엄마는 금방 자신의 얘기로 알아들었다. 엄마 얘기를 하고 있는 거라면, '고등학교를 겨우' 라고 하는 엄마 말이 영 틀리지는 않았다. 

전후도 아니고 유신도 끝나가던 70년대 말이었고, 밥 먹을 정도만 되면 아들이고 딸이고 대학을 보내고자 했던 시절이었다. 조실부모하고 새언니 손에 자랐다는 신촌 아줌마도 2년제 전문대학을 나왔다. 

그런데 인천 바닥에서 염전 천석꾼으로 한때나마 따르르하게 살았다면서, 그토록 교사가 되고 싶었다는 내 엄마를 딸이라고 대학에 보내지 않은 할머니가 죽어라 가르쳤느니 최고학력이니 운운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딸이 팔자가 좋으면 거지꼴로 살던 부모라도 꽃가마를 타는 것을. 여기에 배운 게 다 무슨 소용이더냐.”

엄마의 힘없는 항변을 무시한 채 할머니의 말은 점점 독설이 되어 아닌 척 내 엄마의 가슴을 돌려 파고 있었다. 내가 아는 인순한 할머니 같지가 않았다. 짐작건대 당신 딸 들으라는 듯이 수십 번은 했을 이야기였다. 

할머니는 여전히 누구라고 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알아들은 것처럼 나도 누구 얘기인지 알아챘다. 내 아빠와 결혼한 엄마 얘기였다. 고등교육까지 시켰건만 어린 남동생 부양할 생각은 안 하고, 골라도 어디서 꼭 그런 거지 같은 집에 시집을 가서, 남의 집 좋은 일이나 하면서 산다고 했던 할머니의 말이 이제야 생각났다. 

어떻게 잊어버리고 살았나 싶게 어릴 적 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듣던 말이었다. 엄마는 그때처럼 여전히 말이 없었다.


“못 배운 그것도 꾀가 멀쩡하건만.”

할머니와 내 엄마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나는 숨을 내쉬지도 들이마시지도 못한 채 얕은 숨을 가까스로 쉬며 불편한 침묵을 견디고 있어야 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 할머니가 나즈막이 입을 열었다. 

“재연아,”

 재연이는 내 이름이다. 화들짝 놀란 내가 대답을 할 뻔하다가 내가 아니라 내 엄마를 부르는 것이라는 걸 순간 깨달았다. 나는 할머니가 엄마를 재연아,라고 부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쩌면 정말로 처음일 수도 있다. 내 엄마가 나를 ‘얘!’ 라거나‘야!’라고 부르는 것처럼, 내 할머니도 당신의 딸을 ‘야야’라고 부르고 있었다.

“예.”

어둠 속에서 엄마가 순하게 대답했다.

“애미 너무 잡지 마라. 사위하고 아이 보기 우세스럽다. 늙어 어른 대접 못 받어.”

결국에는 손녀 편을 드는 사람으로 돌아온 내 할머니가 엄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끙하며 돌아누웠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한 터럭도 남김없이 털어낸 할머니는 개운한 한숨을 몰아쉬는가 싶더니 곧 고른 숨소리를 냈다. 할머니가 만족한 잠으로 빠져든 다음에도 잠들 수 없는 엄마와 자는 척하는 내가 질식할 것 같은 어둠 속에서 절박한 공기를 나눠 쓰고 있었다.

 

세상 귀한 아들이 제멋대로 데려온 며느리에게 멀쩡한 집을 빼앗기고, 역시 세상 귀한 아들의 처가 주는 눈치를 피해 피접을 온 당신의 엄마까지 대동해서는, 못마땅해 마지않는 딸사위네 집 건넌방에 요를 깔고 누운 내 엄마의 숨소리가 한참 동안 떨리다가 겨우 가라앉는 듯했다. 

이제 주무시는가 싶어 오래 참았던 큰 숨을 내쉬려는데 서늘한 목소리가 느닷없이 팽팽한 공기를 갈랐다.

“그래서 그랬어, 나한테?”

소리가 내려앉는 한밤중이 아니었다면 들리지 않았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사위가 돈 많은 영감이 아니라서,”

엄마의 낮은 목소리가 조심성 있게 흔들렸다.

“스무 살 먹은 딸이, 돈 많은 노인네 첩 자리로 안 가고 젊은 남자를 골라서,”

울음이 엄마의 목구멍으로 삼켜지느라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래서 재연애비한테 그렇게 모질었수?”

행여 할머니가 혹은 내가 깰세라 숨죽여 오열하는 엄마의 통곡이 내 엄마의 엄마가 내는 낮은 코골음 소리조차 이기지 못하고 캄캄한 어둠 속으로 묻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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