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음 Oct 29. 2024

시간의 지연 2

엄마의 딸

 한때는 나도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에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자 돈을 벌려면 아이를 맡겨야 하고 아이를 맡기려면 돈이 필요한, 그래서 결국 아이를 맡기기 위해 돈을 버는 맞벌이 부모의 패러독스에 빠졌다. 둘이 벌어 반 이상을 탁아비용으로 지불하면서도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세상에 빚을 진 것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살아야 하는 삶이었다. 

특별한 성취 욕구가 있던 것도 아닌 나는 다니던 사무실에 과감하게 사표를 뿌렸다. 말 그대로 뿌렸다. 

생전 자식 같은 건 안 키워 본 척하던 부장에게 사직서를 냈고, 진짜로 자식 같은 건 안 키워 본 팀장에게도 냈고, 결혼 같은 건 안 할 것 같이 굴던 선임에게도 냈다. 

물론 그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궁지로 몰아붙였던 것은 회사의 시스템이었지 그들은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패스트푸드 매장으로 직장을 옮기자 시간이 재창조되는 기적을 일어났다. 늘어난 시간이 내 딸아이를 중심으로 재배열 됐고 나는 처음으로 편안해졌다. 일생을 통틀어서 처음 가져보는 편안함이었다. 아이는 여전히 어린이집에 가야 했지만 하원시간에 맞춰 제 때 데리러 갈 수 있게 되면서 선생님 앞에서 처음으로  당당해졌다. 

밤샘근무로 몸의 리듬이 좀 깨어지는 것 같더니 그것도 얼마 되지 않아 적응이 되었다. 줄어든 수입을 메꾸느라 남편 종호가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으나 착한 그는 내가 편안해진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무엇보다 아이를 끌어안고 동동거리지 않아도 되는 게 가장 좋았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기적은 그뿐이 아니었다. 내 안이 모성으로 충만해지기 시작했다. 내 딸아이 하나로 충분한 행복감이 찾아왔다. 내 엄마의 멸시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엄마는 딸아이로 충만해지는 기쁨 따위는 알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내가 느이 애를 왜 봐주냐? 지 할머니가 있는데. 김서방 엄마는 뭐 하고?”

 엄마가 처음으로 사위를 입에 올렸다. 이럴 때나 부르는 김서방이었다.

“엄마는 할머니 아냐?”

“내가 노니?”

“엄마 놀잖아.”

“내가 왜 놀아? 대현이 아이 태어나면, 응? 내가 없이 돼?"

느이 애를 왜 봐주냐고 했던 엄마는 들으란 듯이 대현이 아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화나게 하는 말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는 모녀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내 시댁이 아이를 봐줄 처지가 안 되는 것을 걸고넘어졌다.

“그러게 지가 번듯했으면 번듯한 남자를 만났을 것을. 어떻게 사돈이라고 꼭.”

내가 악을 쓸 차례였는데 대현이가 선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청요리는 안 먹을 거냐고!” 


못 드신다던 할머니는 울면 한 그릇을 남김없이 드시고 라조기와 팔보채도 덜어드리는 대로 다 잡수셨다. 할머니는 원래 청요리를 좋아하셨다. 외가는 동인천역의 경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토박이였는데 할아버지는 뵈러 갈 때마다 우리를 선화동 중국집에 데려가 울면과 라조기를 사주셨다. 

세련된 중국요리가 많이 나왔건만 할머니는 지금도 울면과 라조기를 제일로 여기셨다. 청요리집에서 자장면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에 자장면은 물리게 먹었다는 듯이 울면을 시키는 할머니만의 호사였다.


네 사람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상을 펴고 둘러앉아 중국요리를 먹었다. 엄마가 내 자장면을 반을 덜어 가고 나는 엄마의 짬뽕 국물을 마셨다. 자기 몫의 잡탕밥을 다 먹은 대현이가 엄마의 짬뽕을 그릇째 가져다가 밥을 말았고 우리는 그것도 다 같이 한 술씩 떴다. 배가 부른 모자는 아까에 비해 훨씬 누그러져 있었다.  

“여기 잘하네. 전화배달도 되고.”

“그러게, 동네 집치곤 먹을 만하다.”

“전화번호를 좀 알아놔라. 나중에라도 시켜 먹게.”

“엄만, 뭐 하러? 그냥 먹을 만하다는 거지, 리뷰를 보면 별점 좋은 데가 얼마나 많은데? 거기 있잖아, 연희동에 가면,”

대현이가 유명한 중화요릿집에서 시작해서 퓨전 중식 식당까지 줄줄이 댔다. 내 엄마가 맞장구를 치며 전에 가봤다는 유명 셰프의 식당 얘기를 했다. 

“야야, 내 먹은 건 내가 내마.”

할머니가 치마를 헤집고 속주머니에서 찾은 누비 지갑을 열어 두 번 접은 만 원짜리를 꺼내며 말했다. 그나마 보태겠다는 사람은 할머니밖에 없었다. 내가 한사코 마다했지만, 가시고 나면 그 만 원짜리는 아이의 방 어디에 있을 것이었다. 엄마가 할머니랑 좀 자야 한다며 거실에 이불을 내다 까는 것을 보면서 나는 출근을 했다.


내가 매니저로 일하는 대학교 앞 매장은 24시간 운영되고 있었다. 밤샘 근무를 한 날은 저녁 시간에 천천히 나와도 됐지만 나는 웬만하면 아이가 집에 있는 저녁에는 일을 잡지 않는다.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서 정신이 없다 했더니 대학이 시험기간이라 카공을 하러 오는 학생들이 넘쳐났다. 

매장 손님도 많았고 포장 손님에 배달까지 밀려 전 직원이 투입되고도 부족해서 비상 근무자까지 호출되었다. 바쁜 와중에 몸까지 천근만근이어서 눈꺼풀이 계속 내려왔다. 오전에 잠을 잤어야 했는데 뜬 눈인 상태라 자꾸 실수가 나왔다.

“매니저님, 오늘 전 줄.”

은지 님이 쿡쿡 웃으며 분리수거통을 끌어왔다. 내가 매장컵에 이어 빨대 봉지를 바닥에 쏟았을 때였다.

컵은 세제로 씻으면 되었지만, 200개들이 빨대 뭉치를 다 버려야 했다. 

은지 님이 자긴 줄 알았다고 하는 말은 본인이 실수가 잦은 것을 말하는 거다. 입사한 지 두 달이 된 그녀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일회용 컵을 백 개쯤 쏟았고, 감자튀김을 천 개쯤 태웠으며, 냅킨을 만 장쯤 떨어뜨렸다. 

환영 멘트로 안녕하십니까 다음에 타 경쟁사의 상호를 댄 적도 있었다. 직원들은 아무래도 그녀가 우리 편이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그런 실수들을 덮을 만큼 뭐든 열심히 했고 빨리 배웠다. 면접 날부터 좋은 에너지를 보여준 친구였다. 


은지 님의 면접일에는 세 명의 지원자가 면접을 보기로 되어 있었다. 알바앱을 통해 신상에 관한 것은 아는 상태였고 결격사유가 없는 한 세 명 모두 채용할 계획이었다. 

매장직은 단기 계약이 많은 데다 무단으로 그만두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항상 사람이 부족했다. 단기 알바는 대학을 다니다 휴학한 학생들이 많았다. 학교를 쉴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이는 이 휴학생들은, 오매불망 빨리 졸업해서 짐을 덜어주기를 바라는 부모를 낙심하게 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타당해 보였고 설득력이 있었다. 평생을 답습해 온 정해진 시간표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로를 정하는 것일 수도 있고 경력을 쌓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이 충전의 시기는 무엇을 하든 온전히 자신들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날 두 명의 지원자는 역시 휴학생들이었고 삼 개월씩 계약을 했다. 그런데 은지 님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당연히 취업 준비를 하고 있냐고 물었다. 계약 기간을 정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질문이었다. 취업이 됐다고 중간에 나가버리면 매장으로서는 낭패를 보는 일이기도 했다. 나의 물음에 그녀가 맑은 얼굴로 웃으며 대답을 했다.

“지금 취업을 하고 있는 건데요?”

“비전이 있다면 물어봐도 될까요?”

단기 알바 면접에서는 굳이 안 해도 될 질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취업을 하러 왔다는 그녀의 비전이 궁금해졌었다. 여기서 경험을 쌓아서, 혹은 여기서 돈을 벌어서 다른 무엇을 하겠다는 게 아닌,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집에서 취직하라고는 안 하냐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보다 열일곱이 어린 그녀의 엄마는 내 엄마와는 좀 다를까. 

“저를 환영하고 필요로 하는 곳에 뼈를 물으려고요. 임원도 되고 점장도 될 겁니다.”

그녀의 대답이었다. 


빨대를 다 주워 담지도 못했는데 이어 마이크로 주문 독촉이 밀리고 있었다. 나는 줍던 것을 그만두고 일회용 장갑을 바꿔 낀 다음 음료를 내리러 뛰어갔다.     

이전 07화 시간의 지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