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에게 다녀올 때마다 언니는 잠을 자지 않고 용옥을 기다리는 날이 많았다. 고단함을 못 이겨 잠이 들었다가도 돌아오는 기척이 나면 깨서 용옥을 맞았다.
특히 용옥이 밤을 지새우고 오는 날이면 대문 앞까지 나와서 기다렸다.
용주는 용옥과 같이 가고 싶어 했으나 야행은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 혼자라야 사람을 만나더라도 잽싸게 몸을 숨기기에도 좋았던 것이다.
"넌 무섭지도 않던?"
용옥이 돌아오면 용주언니가 매번 물었다. 사실 언니는 아버지들이 어디에 숨는지 알지 못했다. 그건 엄마들도 마찬가지였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언니는 서성이며 기다렸다가 용옥이 산 쪽에서 오면,
"구절양장이 배보다 어렵다던데 산 길이 얼마나 무섭디?"
하며 용옥을 안아주었다.
그러나 모르는 소리였다. 새벽길은 산보다 바다가 훨씬 무서웠다.
산짐승들도 어떻게 알았는지 몸을 사린 숲길은 짚을 것이 있어서 다닐 만 했다.
그러나 섬으로 가는 개펄은 망망대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믿을 것이라고는 섬으로 오너라, 했던 아버지의 말 뿐이었다.
새벽의 물길은 들어오는 물인지 나가는 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밥통을 등짝으로 돌려 매고 언제 도로 바다로 변할지 모르는 원래 바다였던 길을 몸을 낮추고 기어갔다. 손과 발아래로 뭐가 휙휙 지나다니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는데 물소리는 계속 찰랑거리며 들려왔다. 바닷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도 같았다.
그러니 젤로 무서운 것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거였다. 낮이라면 틀림이 없었을 것을 굴을 딴다고 수없이 다닌 길이건만 자칫 틀어지면 그만 난바다로 나가 버릴 것이었다. 몇 번을 고개를 들어 확인을 해 봐도 사방이 다 깜깜해서 나중에는 여기가 어딘지도 분간이 안 됐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용옥은 천지분간이 안 되는 바닷길을 기어가며 멀리멀리 갔더니 하는 찬송 노래를 불렀다.
원래는 아가리 딱딱 벌려라 열무김치 들어간다 하는, 아버지가 밥을 떠먹여 주며 하던 노래를 부르며 갔는데 그건 기는 것과 장단이 안 맞았다.
앞니 빠진 갈가지 언덕 밑에 가지 마라 송애 새끼 놀랜다 하는 노래는 말이 많아서 숨이 찼다.
그냥 그랬는데, 외워본 적도 없고 불러본 적도 없는 그 찬송 노래가 희한하게도 저절로 기억이 났다. 부르다 보니 눈물도 났다.
용옥은 답동에 있는 신흥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첫날은 부친인 고 사장이 손을 잡고 가 입학을 시켰고 다음 날부터 용주 언니가 데리고 다녔다.
갈 때는 학교로 바로 갔는데 끝나고 올 때는 집으로 곧장 오지 않고 다른 데를 많이 들렀다. 용옥이네 뿐 아니라 아이들이 다 그랬다.
답동성당에서 보리로 만든 빵을 나눠 주기도 했고, 내동 교회에서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노래를 가르치기도 했다. 좀 큰 애들에게는 영어도 가르쳤다.
일 년에 한 번 성탄절 날에는 지 씨 부인도 같이 갔다.
그 때 외국인 선교사가 풍금을 치며 불러준 찬송 노래를 배우려고 한 적도 없는데 젓 절이 후렴까지 다 생각이 난 것이다.
멀리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여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없이 다니니 내 주 내 주 예수여 지금 내개 오셔서, 하는 가사였다. 어쩜 애들한테 저런 노래를 가르쳤을까 싶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이라서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얼마나 딱인지 몰랐다.
그 찬송 노래를 입 속으로 열 번쯤 부르고 나면 망망대해인 줄 알았던 바다 끝에서 아버지가 용옥아, 하고 불렀다. 딸이 먼바다로 나갈까 봐 중간까지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아버지는 밤통을 들고 울며 돌아보며 섬으로 돌아갔고, 용옥은 멀리멀리 갔더니 하는 찬송 노래를 다시 열 번을 부르면서 용주 언니가 안 자고 기다리는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