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두 번이 바뀌도록 아버지들은 한 데를 돌아다녔다. 한 번씩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으나 전쟁은 길고도 지루했다. 아버지들은 왔다가도 흉흉해지면 다시 집도 아닌 집을 떠났다. 돌아왔다 해도 집으로는 못 올라오고 토굴에서 지냈다.
그러는 동안 용옥의 모친이 아기를 낳았다. 난리 중에 낳은 아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뽀얗고 예쁜 여자 아기였다. 그러나 마지막 싸움이 맹렬하여 폭격이 있을 때마다 아기는 경기를 했다. 눈을 뒤집고 울음소리도 못 내는 아기의 손발을 모친은 바늘 귀로 꾹꾹 눌렀다. 그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뻣뻣하게 굳었던 아기의 몸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숨이 돌아왔지만 아기가 죽은 줄 알았던 용주와 용옥의 울음은 오래도록 그치지 못했다.
풍도에서 바다에 죽은 삼촌의 숙모도 아기를 낳았다.
그런데 아기를 낳은 것이 그만 화근이 되고 말았다. 타지로 몸을 피했던 삼촌이 어느 새벽 다녀갔을 때 생긴 아이라고 했다. 태중에 있는 동안에는 어찌어찌 숨겨왔지만 아기가 태어나자 삼촌이 다녀간 일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
삼촌은 북한군이 동리를 점령했을 때 방공호를 파는 일에 불려갔다고 한다.
좋아서 한 일도 아니고 혼자 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총부리가 무서워서 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복이 되고 나니 자기도 모르고 빨갱이가 돼 있더란다.
삼촌은 용옥의 모친을 데리러 화수부두로 가기 전까지 숙모의 본가 근처에 숨어 지냈다.
숙모가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이 돌자 새벽에 완장을 찬 사람들이 외가로 들이닥쳤다.
삼촌을 찾다 으름장을 놓다 숙모 품에서 아기를 빼앗아 가는 걸 외할머니가 막아섰다.
외할머니가 총부리에 나뒹구는 걸 또 숙모가 막아섰다.
남자가 없는 집안에 막 아기를 낳은 산모와 늙은 시모가 서로 막아서고 나뒹굴다 그렇게 된 모양인지.
아기를 품에 감싼 채 쓰러져 있는 외할머니는 숨은 붙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숙모는 간 데가 없었다.
지긋지긋한 부역자 색출은 참 끝나지도 않았다. 그 새벽에 숙모 말고도 여러 명이 끌려갔다. 마을 노인 몇이 몰래 뒷산 시신 구덩이를 뒤지러 갔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진저리를 치며 그냥 돌아왔다.
이제 죽은 시신인지 전에 죽은 시신인지 모르지만 기름을 붓고 산 채로 태운 시신이더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용옥의 모친은 아기를 낳은 지 보름 만에 당신의 모친이 있는 친정으로 갔다. 가면 죽는다고 다른 어머니들이 말렸다. 모친은 용주언니 어깨에 삼각으로 띠를 묶어 아기를 안겨 주고 절대로 울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갔다. 어머니가 늦어져도 찾으러 와서도 안된다고 했다.
모친은 사흘 만에 돌아왔고 언니는 사흘동안 아기를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다.
아기가 우는 바람에 숙모가 죽었다고 믿었다. 실제로 아주머니들이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기가 울면 완장을 찬 사람들이 온다고 으름장도 놓았다.
아기는 미음죽을 먹이고 기저귀만 갈아주면 안 울고 잠을 잤다. 나중에 어른들이 하는 얘기로는 기력이 없어서 혼절한 상태였을 거라고 했다. 다행히 이후로 무럭무럭 잘 자랐다.
손자를 지켜낸 외할머니는 다시 살 힘을 냈지만 부역자 집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어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외가뿐이 아니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동리 전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지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