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는 총을 들거나 완장을 찬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집안을 뒤짐질을 했다.
처음에는 빨갱이들인 줄 알았는데 우리 편이라고도 하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어느 편인지도 모를 사람들이 몰려왔다 몰려갔다.
외진 데 살아서 몰랐는데 다른 편이 번갈아 들어올 때마다 태안 큰 물에서는 사람들이 죽어나갔다고 했다.
고씨 일가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부역을 했다는 죄목으로 빨갱이 딱지를 붙여서 남자들을 죽였기 때문에 동리에 아이들과 엄마들만 남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들었다.
살아남은 남자들이라고는 나중에 들어와 어디로 몸을 숨긴 피란민 몇이 전부였다. 그중에 용옥의 부친이 있었다.
와중에도 남자아이들은 학교에 다녔다. 술이아재네 살던 남자아이들도 동리 아이들을 따라 만리포까지 걸어서 학교에 갔다.
여자아이들은 엄마를 따라가서 고사리를 뜯고 물이 빠지면 갯벌로 나가서 조개를 잡고 굴을 땄다. 뻘에는 그래도 먹을 게 있었다. 아이들은 말을 따서 전복을 감아 먹었다.
희한하게도 동리 사람들은 말은 쳐다도 안 봤다. 아주머니들은 용옥 자매와 모친이 전복을 말에 싸서 먹는다고 흉을 봤다.
그렇게 딴 갯 것과 고사리를 들고 용주와 모친이 연판장으로 팔러 나가면 용옥은 어린아이들에게 미역에 곡식을 조금 넣고 풀을 쑤어 먹였다. 용주와 모친은 돌아올 때마다 오늘은 몇 명이 끌려갔노라는 소식을 들고 왔다. 점점 노인들 뿐 아니라 끌려간 여자들과 아이들도 생겨났다.
아이들이 풀죽냄비를 핥고 나면 용옥은 그 냄비에 곡식을 많이 넣고 있는 갯 것을 다 집어넣어 따로 밥을 지었다. 어떤 날은 굴이며 조개가 들어가고, 어떤 날은 전복이 들어가고, 운이 좋으면 문어가 통째로 들어가도 했지만 그냥 미역이나 말이 들어가는 날도 있었다.
아이들 모르게 어떻게 밥을 짓나했더니 집 조금 아래 둔덕에 젓갈을 보관하는 토굴이 있었다. 바람이 바다 쪽으로 통해서 밥냄새가 올라오지 않았다.
그 밥을 들고 용옥은 매일 새벽 아버지들에게로 갔다.
엄마들이 앉아서 밥을 나를 사람으로 용옥을 지목했을 때 모친은 천부당만부당이라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 천지 분간이 어렵고 용주는 과년하여 밤길이 위험하니 용옥이 제격이라는 다른 엄마들의 말은 용옥이 듣기에도 설득력이 있었다. 지 씨부인이 직접 가겠다고 나섰으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여자 어른이 밥을 들고 새벽길을 다녔다가는 십중팔구 아버지들이 숨은 데로 길을 안내하는 꼴이 나고 말 것이었다.
아버지들은 말도 말도 안 듣던 아이의 말처럼 한 군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닷물이 나가야 갈 수있는 섬에 숨었다가, 내일은 뒷산의 여우굴로 오너라 하면 거기로 가야 했다. 오라는 데로 갔더니 거기 없는 날도 있었다. 아마 무슨 위험을 당해 어디서 발이 묶였으리라. 그렇게 믿어야 했다.
허탕을 치고 돌아온 날이면 용옥은 마치 자기 잘못인 것처럼 풀이 죽었다. 엄마들도 용옥 탓인 것처럼 눈치를 줬다. 잘 간 게 맞냐고 몇 번을 물었다. 아이들만 영문모를 밥을 먹으며 좋아라 했다.
그런 때는 미리 약속이 없었으니 수가 없이 마지막 약속 장소로 가서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용옥 혼자 동틀 때까지 기다리다 오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오기는 꼭 왔다.
어디를 돌다 돌다 며칠이 걸려도 꼭 왔다. 엄마들의 피를 말리고 용옥과 용주의 애간장을 다 녹이고 나서야 아버지들은 귀신같은 몰골을 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꼭 와서 용옥이 지어간 밥을 먹었다.
용옥은 굴 속에서 만난 저토록 얇디얇아서 부서질 것 같은 몰골들이 진짜 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들의 혼령일까 봐 얼른 밥을 펼쳐놓았다.
밥을 먹는 모습을 봐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용옥의 부친은 밥을 먹으면서도 용옥의 손을 놓지 않고 끅끅 울었다.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용옥은 울지 않았다.
아버지들이 살아와서 밥을 먹는데. 혼령이 아니고 아버지가 맞는데.
그저 엄마들에게 가서 소식을 전할 생각만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