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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사라지지 않아

by 김주음

전쟁의 끝은 길고 참혹했다.

그 전쟁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린 용옥의 눈에는 마치는 일조차 전쟁 같아 보였다. 분명히 끝났다고 하길래 무 자르듯이 단칼에 끝나는 줄 일았더니 한동안은 길고 참혹한 전쟁 그대로였다.

무너진 집터가 그랬고, 송도 먼바다에 군함이 그랬고, 동인천 역전에 땡크가 그랬고, 그 땡크를 따라다니는 아이들과 거리를 점령한 미군들이 그랬다.


과연 부친의 말대로 인천은 수복이 돼 있었다. 용옥 일가의 귀향 후 얼마 안 있어 전쟁이 멈춘 상태로 남북을 나누는 선이 그어지고 휴전이 되었다. 말로는 휴전이라고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고 사람들이 태극기를 그려서 들고 동인천 역으로 모여 만세를 불렀다.


집터에 군용 텐트를 짓고 사는 동안 흩어졌던 고씨 일가 친척들이 돌아왔다. 엄밀히 말하면 돌아온 사람도 있고 못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휴전이 되었다고 평화가 온 것은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들은 다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어른들 말로는 왜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이유를 대야 하는 하는 과정이 남았다고 했다. 목숨을 부지한 대가였을까. 죽을 힘을 다해 살아 돌아왔건만 붙잡혀 갔던 아버지는 왜 죽지 않고 살아왔냐는 다그침 끝에 죄인이 된 것마냥 수치심을 안고 풀려났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수치인듯 했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에 비하면 수치심이 대수랴 했다.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누군가에게 목숨을 빚진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용옥의 부친이 말했다. 그래서 오고 가라면 가고 오면서 노여워하지도 않았다. 부친의 생각으로는 당신은 죄인이 맞았다. 살아있는 게 죄인 죄수였다.

용옥 역시 이전의 열한 살짜리 아이일 수는 없었다. 전쟁을 겪은 아이는 아이일 수 없었다.

폭격이 있는 밤이나 피란 길에 총알이 빗발칠 때면 용옥의 양친은 남매를 에워싸듯 부둥켜안고 부디 죽음이 지나쳐 가기를 기다렸다. 삶과 죽음이 찰나에 나뉘는 순간이었다.

부친은 아이들의 귀에 대고,

"총알이 사람을 피해 간단다. 총알은 원래 사람을 피해 간다."

하며 끊임없이 속삭였다. 모친은 계속,

"주여, 주여, 아버지여, "

하고 신음처럼 되뇌었다.

용옥과 남매는 무사히 폭격이 지나가고 난 뒤 부친의 말처럼 진짜로 총알이 사람을 피해 간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총알을 피하지 못해 죽어있는 숱한 어른과 아이의 시체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는 맞았다.

다시는 소싯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던 상흔의 아이들은 동리가 재건되고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동심을 되찾아 갔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늠름하게 사선을 넘나들던 아이들은 다시 철딱서니가 없어졌고 밤마다 경기를 하던 아이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을 잘 잤다. 적어도 그런 것처럼 보였다.

용옥 역시 밥통을 돌려 매고 개펄을 기어가던 일이 꿈인 듯 아련하게 생각됐다.


그러나 용옥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몸이 살아보겠다고, 어떡하든 살자고 더러는 묻어두기도 하고 더러는 모르는 척할 뿐, 기억은 머릿속 어디에 다 있었다.

그 기억이 용옥을 단단하게 했고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함을 갖게 했다.

하도 죽을 고비를 넘기다 보니 억지로 생긴 대범함이었다. 이보다 세상 죽고 살 일이 더 뭐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무슨 소리냐 하면, 용옥이 아무리 아무리 허허실실해 보여도 전쟁을 겪은 위인이라는 얘기다.

화평접골원의 김의원이나 시모 되는 김 씨 부인이라면 몰라도 전쟁도 겪어보지 않은 시누이나 순자아이의 잔머리 정도로는 용옥에게 깜냥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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