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분립이 흔들릴 때
요즘 뉴스를 보면 정치가 점점 사법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대법관 수를 늘리겠다는 말,
법왜곡죄를 만들겠다는 말,
심지어 4심제를 논의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겉으로는 ‘사법 개혁’이라는 포장을 입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법 통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입법부가 사법부의 인사권과 판결권에 영향을 미치려는 순간,
3권분립이라는 헌법의 균형축이 흔들린다.
정치가 사법을 향해 손을 뻗을 때
그건 권력의 견제가 아니라 권력의 확장이다.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24명으로 늘리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표면적 이유는 “업무 과중 해소”와 “전문성 강화.”
하지만 그 뒤에는 “더 많은 임명권을 쥐겠다”는 계산이 숨어 있다.
대법관 임명권은 곧 판결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친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법원의 구성이 달라진다면,
법의 기준은 원칙이 아니라 정치의 색깔에 따라 흔들릴 것이다.
그건 개혁이 아니라 사법의 정치화다.
히틀러가 법을 없앤 게 아니라,
법을 자기 편으로 만든 것처럼
지금의 흐름은 ‘법을 지배하는 정치’를 향하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법왜곡죄 신설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검사나 판사가 법을 ‘의도적으로 왜곡’했을 때 처벌하겠다는 법이다.
언뜻 들으면 정의로워 보이지만,
문제는 그 판단의 주체가 정치권이라는 점이다.
누가 ‘왜곡했다’고 판단할 것인가?
정치권이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왜곡으로 규정한다면,
그건 정의의 칼이 아니라 정치의 칼이 된다.
법을 바로 세운다는 명분 아래
결국 법의 독립성을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3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건 ‘한 번의 실수를 여러 번 검증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4심제를 신설하자는 말이 나온다.
이건 ‘정의를 더 깊이 보자’는 뜻이 아니라,
‘정치를 더 깊이 개입시키자’는 말에 가깝다.
심급이 늘어날수록 재판은 길어지고,
그 틈에 권력은 더 쉽게 들어온다.
정의는 복잡함 속에서 흐려지고,
국민은 더 이상 법을 믿지 않게 된다.
사법부가 독립을 잃는 순간,
법은 더 이상 국민의 편이 아니다.
정권이 불편해하는 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교체되고,
정치적 입맛에 맞는 재판부만 남게 된다면,
그건 이미 민주주의의 껍데기만 남은 사회다.
법이 권력의 손에 들어가면,
정의는 사라지고 두려움이 대신한다.
그 두려움은 곧 침묵을 낳고,
침묵은 독재의 첫 걸음이 된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이건 정말 개혁일까, 아니면 장악일까?”
민주주의는 제도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의심하는 시민이 있을 때만 살아남는다.
‘이건 이상하다’는 한마디의 의심이
때로는 한 권의 헌법보다 더 큰 힘을 가진다.
입법부가 사법부 위에 서려는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의 언어를 믿는 게 아니라
그 언어의 의도를 읽는 일이다.
정치가 법 위에 군림하는 순간,
법은 더 이상 정의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권력이 법을 지배하려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법이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시대를 다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