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면 꼭 선을 넘어버려서 상처를 주고받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우선 이 얘기를 하기에 앞서서 잠시 이전의 내 얘기를 이어서 하자면, 우울함의 터널 속에 있던 나는 영상 편집 기술을 배우게 되었고, 운 좋게 영상 프로덕션 회사에 입사하여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로써의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일을 할 수 있었고,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조금 힘들었지만 행복한 기억이 한가득 생길 정도로 근무하는 것이 즐거웠는데, 회사 대표님의 무리한 자금 투자로 인해 당장 월급도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경영이 어려워져서 결국 원치 않는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집에 있게 되면서 아빠와 사소한 문제로 잦은 다툼을 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나와 엄마와의 다툼에서 아빠가 무조건적으로 엄마의 편을 들게 되면서 생기게 된 문제였다.
어떤 마음으로 아빠가 엄마의 편을 드는지 솔직히 이해는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 버렸다.
아빠는 맨날 엄마 편만 들잖아! 이건 엄마가 잘못한 건데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해!
서러운 나머지 사춘기 어린아이처럼 말해버리고는 분을 삭이기 위해 집 근처 카페로 피신해 버렸다.
사실 도망친 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생각해도 매번 다툼의 시작은 엄마로부터
시작이 되는데, 대화를 통해 해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엄마 편만 들고 나는 엄마에게 대드는 나쁜 딸로 만들어 버리는 아빠가
야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나이가 먹도록 부모님과 다투는 내 모습이 보기도 싫어서 속상한 마음에 창 밖만 바라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다가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돌아온 집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고 듣게 되었다. 갑자기 나를 발견한 아빠가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앞으로 딸하고 약속한 건 당신이 꼭 지켜주었으면 좋겠어. 알았지? 얼마나 속상했겠어
내 앞에서 아빠가 내 편을 들다니. 충격적이면서도 기뻐서 베실베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다. 웃기게도 난 아빠의 그 한마디에 모든 서러움과 화가 사르르 녹아내렸고, 결정적으로는 아빠가 건넨 과자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평소 표현을 많이 못하는 무뚝뚝한 아빠의 진심이 담긴 사과 방식이었던 셈인 것이다.
사랑하는 반려자의 무조건적인 편이 되어주는 로맨틱한 남편이자,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서툴지만 뒤늦게나마 딸의 편을 들어주는 그 진심이 내 마음에 전해졌고, 그렇게 우리 가족은 비 온 뒤 맑음처럼 유쾌한 화해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