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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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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령 Aug 12. 2024

귀향, 돌아오는 영혼들

숲 속 소나무 아래에   재색  무명 창산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마른 솔잎을  덮고  누워있다.  깊은 잠을 자다가 무엇엔가  놀랐는지  번쩍 눈을 뜨고  동자만 굴려 주위를 살핀다.    잠결에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예사롭게 기지개 켜는 시늉을 하며  숨어 보는 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깊은 한숨을 내쉬며  두리번거린다.   조선에서 모인 독립 자금 운반을 위해 간도에 온후,  독립군 연락책으로 국경과 사선을  넘나드는  자의  몸엔 엄폐가  살갗처럼  붙어있다.


'여기가 어디여  아아.  간도. 그려 여긴 간도여. 백두산서부터 쫓아온 일본 경찰들을  보기 좋게 따돌리고 조선인 마을에 갔어.  마을에 갔을 때는  한두 집이 벌씨 타고 있었고.   그러다 불이 번져가꼬.  이래서 동네에 공동 우물이 없으면  못써.  불이라도 나면 당장 어디서  물을 퍼서 불을 끄것어.   운신 못허는  할머니를 업고 뛰다가 자빠졌는디.  오매. 무르팍이야...  괜찮혀.  집은 탔어도  사람은 구했응게,  그려. 그럼 되았지 뭐.   집이야 새로 지으면 되는 것이고..  허이고.  그나저나  연월리엔 별일 없것지. 식구들은 잘 있것지. 언제 다시 돌아갈거나.'  


떠돌이는  오늘도  여기가 어디인지 헤아려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잠이 들었기에   왜 여기서  눈을 떠야만 하는지  되짚어보는 것이다.  지금 머문 자리를 알아야  길을 잃지 않고 고향으로 향하는  길로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갈 길이 아무리 까마득하더라도   목적지가 있다는 확신은 단단한 지팡이처럼   반발자국 앞서 나그네를 인도한다.


어디선가 들릴 듯 말 듯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고을 큰일 났당게. 조선 독립 만세여. 만세요!  독립 만세란게요! . 하하하하하  크크크흐흐.'


"뭐시여. 이것이  무슨 소리여. 이것은 만세 소린디.   독립이 되었당가.  참말로 독립이 되었당가.  설마."


만세 소리를 들은 동수가   찔레꽃 덤불 그늘에  누워 있는 학수를 부른다.


"성님.  일어나 봐요.  성님. 아따  저 성님은  무신 저런 디 누운 거여.  성님. 그만 일어나소. 학수 성님."


아무 대답이 없자 덜컥 겁이 난 동수가 엉금엉금 기어가  마른 수수깡처럼  꺾여있는  학수를  세차게 흔든다.  그제야  학수가 천천히  눈을 뜬다.  동수보다  두 뼘 정도   키가 크고   온화해 보이는  학수가  긴팔을 들어 올린다.


"도옹상.  동상."


"성님. 잘 주무셨소.  어째 찔레꽃 덤불 아래서  주무시고 시오. 따갑도  안 허요?"


"우리 처지에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것는가. 한번 누우면 그만이지.  동상은 잘 잤는가."


"예. 아주 잘 잤지라.  성님.  근디 말이오. 독립이 된 거 같은디요.  만세 소리가 들리쇼?"


학수가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금세 서글서글한  눈에 곧 떨어질 것 같은  이슬이  방울방울 맺힌다.  


"들리네.  듣기가 좋구만.  이게 얼마만인가. 대한 독립 만세라니.   이십육 년 만인가.  삼일만세 운동 후에  우리 동포가 한 목소리로   만세 부르는 것은 처음 듣네.  듣기가 좋구만."


"성님. 일어나쇼. 얼른 고향에 가야지라."


"서두르지 말어.  우리 동포들이 부르는   만세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가.'


"신간  편한 소리 하지 말고 얼릉 일어나쇼잉.  존 말로 헐 때."


동수가 학수에게 손을 뻗자  학수가 동수의  손을  의지해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성님. 갑시다.  걸을 수 있것소?"


"그럼.  인자는 암시랑토 안 해.  걱정허지 말어."


"그러믄 당장  갑시다. 우리가   거리낄 것이  뭐가 있소.  해방된 고향 땅 한번 밟아보는 소원인디.  지금 바로 갑시다."


동수와 학수는  산속에서 나와 마을로 향한 길을 걷는다.   조금  걷다 보니 조선옷을 입을  젊은 사내가    언덕 위의   밭에서 누런 황소를 앞세워 쟁기질을 하고 있다.  산을 개간하여  만든 숙전인지  밭 가장자리에는 밭에서 골라낸  돌로  긴 담이  세워져 있고  흙이 검고 기름져 보인다.  동수가  큰 목소리로 농부를 부른다.


"어이. 이보시오.  농사꾼 양반.  쟁기질 허는  양반.  혹시  조선사람이요?"


쟁기질을 하는 사나이가  워워 소를 멈추더니  두리번 두리번하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지유?" 


"그렇소? 조선사람인가히서?"


조선 사람이냐는 질문에 사내가  쟁기와 소를 그대로 두고 동수와 학수를 향해  느릿느릿 걸어온다.


"조선말  알아듣고  왔응게 조선 사람이겠쥬?


"젊은이는  만세 소리 못 들었는가요?"


"못들었는디유."


"독립이 되었단게요. 조선이  해방이  되었단게요. 일본이 망해부렀어."


"잉. 그게 참말이유?"


"내가  쟁기질 허는 사람 불러 세워 거짓말 허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워디 거짓말 허는 사람이  마빡에 거짓말헌다고 써붙이고 거짓말 허거슈?".


"허. 이 양반만 말하는 것을 들어본 게."


 "충청도에유."


"나는 전라도여. 젊은 냥반 귀를 열어보란게.  귀머거리 아니면 만세 소리가 안 들릴 턱이 없응게."


농부가 가만히 귀를 기울이더니 이내 굵은 눈물을  흘린다.


"이기 참말이래유.  진짜  독립이 되었단 말에유?"


"그렇단게."


"그래서 지금  만세 부르러 가는기유. 이잉. 그러믄 나도 따라가고 싶은디."


"아니, 아니여.  고향 가는 길이구만.   고향 떠난 지 이십오 년 인디. 만세 부르고 갈 새가 있것는가. 가면서 부르든가 부르면서 가야지.  당장 갈라고요. 우리야 뭐   나그네  신센게."


"지도  따라가도  유?"


"허참. 충청도 사람이 뭐가 그리 급허단가?"


"충청도 사람도 조선사람이에유.  우리는 기냥   빨리빨리를   천천히 하는거에유.


"허허허. 그려잉 . 그럼 같이 가게."


"근디요. 쫌만 기다리세유."


"왜 그려? 지금 간다믄서?"


"안사람이  국시   삶아 올텐디  먹고  가유. 국시만 먹고 가면 되잖유.  저기 아래  움막 보이쥬?   우리 집이에유.  우리도 빈 몸이나 마찬가지에유."


때마침  언덕 아래에서   아기를  업고   머리에 새참 소쿠리를  인 젊은 아낙이 어기적어기적  힘겹게 갈지 자 길로   올라오고 있었다.  

동수가  속 편하게 서서,


"성님. 애기를 업은 아낙이 갈지자 길을 올라오는 것이  마치  弓乙(궁을) 자 같지 않소?"  


그러나 학수는 안절부절못한다.  아마도 아기를 업은 아낙이  가지고 오는 새참을 들어주고 싶어 그러는 것 같다.


"애기까지 업고 깔쿠막을  올라올라믄 심이  많이 들텐디."


학수가  핑계를 대듯  혼잣말을 하며  농부의 아내에게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니 농부가 만류한다.  


"냅둬유. 내버려둬유.  오늘 안에는 오겠쥬."


그런데 농부의 아내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낯선 남자를  발견하고  언덕 아래로 도망을 친다.  그러자  농부가  아내를 향해,


"금동아. 금동아.  괜찮혀.  올라와.   조선 사람이여."

한다.


남편 목소리를 듣은 농부의 아내가 뜀박질을   멈추고 다시  오던 길로  올라온다.  멋쩍어진 학수가  도와주고 싶어 손바닥을 비비적 댔으나 농부의 아내는 끝내 낯선 남자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고   남편이 있는 곳까지   소쿠리를  이고 온다.  그리고 남편이 있는 곳에 와서 머리에 인 것을 내려놓으려고 허리를 푹 숙이자  등에  업혀있던  아기가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동수와 학수가 아기를 받으려고 얼른 손을 뻗었다가  몸이 굳어 버린다.   등에서 떨어진  것은 아기가 아니라  낡아빠진 조 베개였기 때문이다.  동수와 학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농부를 바라보자.  농부가 아기처럼 베개를 품에  안는다.


"우리 금동이도 배고프냐.   밥을 보고  코부터 들어미는 것본 게 다컸는가벼."


"......"


"봐유.  우리 아들 잘 생겼쥬?"


농부가 베개를 한번 보여주자  아내는  조심스럽게  채서   저만치 밭두렁에 가서   등을 돌리고  젖을 물린다.  농부가 아내를 향해 말한다.    


"금동이 멕이고 자네도 한 국시 혀."


그리고 농부가 아주 태연하게 젓가락을 집어든다.  놀라운 광경에 동수와 학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멋한다.


"턱 빠지것슈. 입 다물어유.  맞어유. 저 사람이 지 정신이 아녜유. 걱정하지 마셔유.  옮는 병은 아닌 게."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는가."


"사 년 전 마을에  호열자가  돌았슈 ."


"쯧쯧. 아이가 호열자에 걸렸단  말인가."


"아니유.  아녜유.  우리 아들은 건강했씨유."


"......"


"마누라랑 지가   걸렸슈.  조선 말은 끝까지 들어야쥬."


"......"


"우리 아들은 호열자 걸린  어미 젖을 빨면서도 아주 멀쩡했시유.   원체 씨가 좋은 게.   우리 둘이 꼼짝도 못 하고   방에 누워있으니께  어떤  할매가 와서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했슈.  아들 삼아서 잘  키울 테니  걱정하지 말라믄서.  마누라가  금동이를  붙들고 안 놓아준 게  할머니가  살살 타이르면서 애기는  살려야지 않컸냐고  눈물까지 흘리는디.   맴씨가 고아보였어유.   그러고 나서  할머니가 두고 간   청주 한 병을  다 마시고 정신을 차려본 게  할머니도 없고 아들도 없고.  어디로 갔는가. 그러고 나서 저 사람이 저렇게 된 거에 유."


"........"


"어이.  자네도 와서  국시 혀. 국시 다 불것어.  고향 가세.  동행 있을 때 같이 가게. 금동이 엄마.  한술 뜨고 어여 고향 갑시다."


그러자 농부의 아내는 아무  말없이 베개를  둘러업고 와서 동수와 학수에게 등을 돌리고  호로록 소리를 내며  내며 국수를 먹는다.  농부의 아내가 젓가락을 놓자  네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향으로  향한다.   농부는 쟁기와 연결된 멍에를   내린 소의  고삐를   잘 감아쥐고 아내에게 말한다


"자네도 고향 간 게 조오치?  타향살이 허느라 고생이 많았구먼.  고향 가면 더 잘해줄텐게  기대햐.  우리는 소도 있잖여.  인자  살림 일어나는 것은 금방이여.  일본 놈들한테 뺏긴 땅도 도로 찾아오고 말여. 세상에나 견디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이 오는구먼."


언덕에서 내려오니   바로 농부의 움막이다.  농부의 아내가 움막 안으로 냉큼  들어간다.  그리고 부엌살림을 챙기는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농부가 아내를 부르며 재촉한다.


"어이. 그냥 가잖게. 빈 몸으로 왔다가 빈 몸으로 가는 인생이여.  뭘 챙기고 그랴."


잠시 후 농부의 아내가 가슴에 뭔가를 품고  움막에서 나왔다. 시집올 때  친정에서 가져온  국수틀이다.


"국시틀 챙기서 나온 거여? 허허. 그려.  고향 가서도  국시는  뽑아 먹어야지."


그제야  농부의 아내가  대답을 하는 듯 국수틀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다.  이제 갓 스물이나 되었을까.  병마와 굶주림에  까맣게 탄 얼굴에도  해사한 젊음이  가득하다.  흥에 겨운 농부가 충청도 아리랑을 목청 껏 부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눈이 올래나 비가 올래나 억수장마 질래나


만수산 거문 구름이 막 몰려든다.


재작년 봄 참에도 되돌아왔는지


뗏사공 아재들이 연실 내려오네


오늘 갈른지 내일 갈른지 정수정맹 없는데


맨두라미 줄 봉숭아는 왜 숨어 놨나


남우집 낭군은 사향내가 나는데


우리 집 멍뎅이 낭군은 땀내만 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쇼.


네 사람은 구불구불한  황톳길을 걸어  마을로 내려오자 길거리에 만세소리가  가득하다.  한시라도 고향에 빨리 돌아가고 싶은 네 사람은   걸음을 재촉하는데    어물전 옆   그늘에  서 있는  조선 옷을 입은 거지 할머니가  학수의 눈에 들어온다.



이번에 학수가 할머니를 불렀으나 들른 척도 하지 않고 생선 냄새를 맡으며   꼴깍 꼴깍 침을  삼키고 있다. 수가 할머니에게. 


"아짐씨. 저그요. 아짐씨. 조선 사람이단가요?"


그러자 할머니는  창산을 입고 있는 학수를  중국 사람인 줄로  짐작하고   소리를 꽥 지른다.


"와?  고향 나가 냄시만 쪼매  맡았다.  간도서는  괴기 냄시 맡는 것도 돈내야 되나?  쓱어 빠질 독한 놈들이다. 나 돈 읎다.  느그들이 우리 딸 찾아준다고  쏙여서 다 빼묵었다  아이가?"


"아짐씨. 돈 달라는  아니라 조선 사람이라고 물었는디요. 조. 선.  사.  람."


"뭐라카노. 니 내 맨치로 눈까리가 빠짔나?   내 안 듣기고 안 빈다."


땟국물 자국이 역력한  노파의 얼굴에 달린  양 귀와 두 눈엔 마른 고름과 피 딱지가 더덕더덕  들러붙어 있다. 학수가  자신도 조선 사람이라고 가슴에 손을 앉은 채   웃는 얼굴로 할머니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한다.


"조. 선. 사. 람."


"뭐라고. 조선 사람이라고.  마따. 니도  조선 사람이가?


"예. 아짐씨. 해. 방. 이 되었당게요. 해. 방.  일본이 물러났당게요. 해. 방."


"해방이라고?  참말이가?  해방이 됐다고?  그걸 우찌 알았노?"


"만세 소리를 듣고 알았는디요.  길거리 사람들을  잘 보시랑게요. 소리를 들어 보랑께요."


"하모 하모.  들린다.  보인다.  아이고야. 이 일을 우짜면 좋노. 우야면 좋노. 우리 막내딸도 알고 있것제.  딸내미 찾으러  갱상도에서 왔는데 아직 몬찾았다.  이젠 귀도 맥히고  눈도 멀어가  찾기는 글렀다. 우리 막순이도 해방된 거 알것제."


"예. 막순이도 알고 우리도 알고 세상 사람은  다 안게로    아짐씨는 고향으로 가면 된당게요."


"아이고 좋은 거.  근데 자네는  할매한테 자꾸  아짐씨 아짐씨 할 거가? 남 부끄릅다."


"이렇게 고운  아짐씨한테  누가 할매라고  부른다요?


"하아. 집어치라. 하하. 근데 벌말이라도 듣기는 좋다."


"우리랑 같이 가잖게요."


"하모하모."


충청도 농부가  할머니를  번쩍 들어 올려 소등에 태운다.  소등에 올라 앉은 할머니는 연신 어깨춤을 춘다.


"이게 무신 호강인가 모르것다. 빌어묵을 간도서  글벵이로  살았는데 해방이 된 게  소를 타고 고향  간다. 이기이기 무신 호강인가 모르것다. 고맙데이. 고맙데이."


그렇게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긴 행렬을 이룬다.   어디서 모여들었는가.  평생토록  이 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하던  일을   놓아버리고   만세를  부르며 고향 가는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간도 지리를 잘 아는 동수와 학수가 길잡이 노릇을 한 덕분에   느지막한 저녁에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두만강에 닿았다.   두만강 가는   조선으로 돌아가려는 팔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와글와글한 사람들 틈에서  앳된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열댓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오며 어머니를 불렀다.


"어무이. 어무이.  우리 어무이 맞습니까. 막순이 여기 있쑵니다. 어무이."


"막순아. 막순아."


할머니가 딸의 이름을 부르며  소등에서 뛰어내리려고 한다.  충청도 농부경상도 할머니를  부축해 주니   미끄럼을 타듯이 소등에서 내려와  딸을 향해 뛰어가  부둥켜안는다.   


"막순아.  막순아. 우리 딸  맞나?"


"어무이. 어무이.   여기에 어디라고 어떻게 왔습니꺼."


"니가 마이  아프다는 펜지를 받고  데리러 안 왔나.  얼마나 고생이 많았노. 인제 안 아프나."


"예. 어무이. 지는 개안습니다. 다 나았습니다."


"막순아. 인사해라. 나를 여까지  오게 해 주신 분들이다. 덕분에 너를  만났다."


"고맙습니더. 정말 고맙습니더. 우리 어무이를 여기까지 모시고 와주셔서 억수로  감사합니더."


그러자 충청도 사나이가  훌쩍거리던 코를 마시며   무심하게  애먼 소등을 쓴다.


"괜찮어유우.  소가 태우고 왔지 우리가 태우고 왔나유."


막순이가 울고 웃으며 어머니의 일행에게 허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하고 강물을 바라본다.


"어무이. 배가 없어가 강을 못 건넙니다. 이 강만 건너면 조선인데  말입니더."



사람들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물줄기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지척에 고국 땅을 두고도 강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며  강물 들으라는 듯 한 마디씩  성토를 한다.


"우리가 이 강을  어떻게  건널 수 있겠습니까."


"다 같손을 잡구 헤엄쳐서 가보드라구요."


"뭐라구요?  손을 잡고 어떻게 수영을 합매까?"


"그러믄   나는 강을 돌아서 갈 것이여. 두만강 상류로 가서 돌아서 갈 것이여."


"두만강 상류는 백두산이지 않아유?  백두산을 타구 넘어가려구 기래요."


"그럼 두만강 하류로 가면 되것네유."


"두만강 하류는 동해 드래요."


"나  제주도 사람이우다.  이 정도 물은 쉽게 건널 수 있수다.  수엉으로 마라도를  왔다 갔다  사람이우다. 내가  먼저 강을 건너 조선 땅에 가  배를 구해 오쿠다."


다들 기대에 찬 눈으로 제주도 사람을 바라본다. 그러나 제주도 사람이 물에 들어가자마자 꼬르륵 물속으로 잠겨버린다. 그러기를 수십 번을 반복하자 이제는 오히려 사람들이 제주 사람을 말리는 지경에 이른다.


"그만하시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무모하게 그러지 마시오."


제주도 사람은 물에 젖은 채 씩씩거리다가  울음을 터뜨린다.


"사람이 한번 죽지 두 번 죽수꽈?  이래 봬도 제주도 사람이우다. 이전엔  보말 잡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아시꽈?"


제주도 남자가  울면서 다시 강으로 뛰어들려고 하자  제주도 사람 여럿이 나와 서로 처지를  위로하며 제주도 남자를 말린다.


"아주방. 고향 떠난 지   오래되난 그런 거 우다. 울지 맙서."



그때 양복을 입은 뚱뚱한 남자가  격분한 목소리로 동수와 학수를 겨냥하여 원망의 소리를 한다.


"나는  간도로 돌아갈 것이요. 내가  저 사람들한테 속았소. 제길.   저 사람들이 누군지 아시오. 딱 하는 짓이 동학쟁이요.  쳇. 잊었소?  왜 우리가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겼는지 잊었냐 말이오. 갑오년에  저놈들이 동학난을 일으켜  일본군과 청군이  들어온 거 아니요?   저 놈들을 믿고 여기까지 오다니. 내가  어리석었소.   간도로 다시 돌아갈 것이요. 타향도 정 붙이면 고향이 된다고 합니다.   내 고향은 간도요.  이제 힘없는  조선 사람 안 하렵니다.  고향에 돌아가면 뭐 합니까.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 같소?  다 죽었거나 병신이 되었겠지. 그걸 직접  두 눈으로 봐야 알겠소.   나와 같이 돌아갈 사람 없습니까?"


그러자  여러 명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쭈볏쭈볏 걸어 나왔다.


"나도 돌아가겠소. 나도 고향에 아무도 없소."


"나도  간도로 돌아가겠소."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그렇게 모인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간도로 돌아간다.


강가에  남겨진 사람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남의 땅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등을  바라본다. 남은  몇은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어떤 이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들은  무심하게   반짝이는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고인 눈물을  마신다.  망해가는  나라에서  보잘것없는  신분으로  태어난  팔자를  탓하며  앞을 가로막은   강물에  눈물  방울을  보탠다.



이때 수가  두만강 가의  큰 바위 위로 올라가  강을 등지고 서서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동포 여러분!  울지 마시오. 지금 우리의 처지는  우리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나라와 백성이  동귀일체하여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갑오년에  쓰러져가는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혁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이 다시 서는 것을   원치 않는 자들이 외세를 불러들였습니다.  우리는 죽창 하나 들고  개혁을 원치 않는 자들과 외세에   대항하느라   수많은 생명을 잃었소이다.  심지어  조선을 차지하려는 두 나라가 우리 땅에서 전쟁까지  벌여  삶의 터전이 불타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러 우리는  죽지  않았소.    지금 이렇게  여기에 서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죽어도, 아무리 죽여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나라가  바로 강 건너에 있습니다.  고향을 떠날 때는  떠밀려  왔지만  돌아갈 때는  우리 힘으로 갑시다.   한울 살려달라고  아무리  기도해도 이 강이 갈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주머니에 든 작은 성냥개비를 꺼내  횃불을 밝히고  함께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듭시다.  그리하면   작은 성냥개비 하나  큰 뗏목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학의 이적이며  그러한 이적을  만드는 사람이 바로  한울님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에게  물어보십시오.  무엇이 떳떳한 일입니까?   뗏목을 만듭시다.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같이 산에  갈 사람은  이쪽으로 나오십시오."


그러자 아까보다 열 배 스무 배는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도 가겠소.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그러고들  있는데 강 건너에서부터  작은 성냥불이  아니   위태로운 등불이 아니   활활 타는 수백 개의  횃불이   물살가르며 이쪽으로 건너오고 있다.  


"어어. 어어. 저게 뭐요. 저기 보시오."


"저거시. 뭐시여?"


"배다.  배가 오고 있다."


놀라운 광경에  두려움을 느낀  어른들은  도망갈 준비를 하고  물 수제비를 뜨던  아이들은  횃불을  향해 뛰어가려고 도움닫기를 하는데  두만강 뱃사공의  함경도 아리랑 소리가  점점 커진다.



아리아리 얼수 아라리요


아리랑 얼씨구 노다 가세


아리랑 고개는 웬 고갠가


넘어갈 적 넘어올 적 눈물이 난다


시집갈 큰 애기 홀로 앉아


여러 가지 궁리에 마음만 탄다


화조월석 가는 춘풍 어이 막으리


귀 밑에 오는 백발 그 누가 막으리



횃불을 밝힌 수많은 배들이, 횃불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동자에 반사되어  어두운  앞길을 서로에게 비춰준다.  불을 빍힌 각양각색의  고깃배, 거룻배, 나룻배, 낚싯배, 돛단배, 조각배,  물에 뜨는 모든  두만강의  조선 배들이  떼를 지어  강을 건너오고 있다.  선두에 선 늙은 뱃사공이  잔뜩 성난 목소리로  외친다.


 "조선 사람 이웨이까?  빈갑슴네다.  소문 듣구  왔음 네다.  조선 사람 태와주러 왔음 네다.  욕봤니더. 퍼뜩퍼뜩 배에 오르이소. 서둘아야  오늘 안에 조선 땅을  밟지 않겠음 둥."


배가 강가에  닿자   충청도 농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배에 오른다.  충청도 농부는  멀찌감치 강둑에 서서  소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가. 가란 말이여.  너는 여기가 고향이니께.   나는 고향  가면서 너한테 타향 가자고  할 수는 없잖여. 가라고.  그리고 너는 절대로 고향 떠나지 말고 잘 살어.  혹시 우리 금동이 만나믄 어머니 아버지는 고향에  갔다고 말 좀 전해주고..   금동이 고향은  간도니께 간도에서 잘 살라고 ."


작별인사가 끝난 뒤 농부가  소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쓸어주자  황소도 말귀를 알아들은 듯 북쪽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농부는 소에서  거둔 빈 고삐를  말아 쥐고, 농부의 아내는 국수틀을  끌어안고,  경상도 할머니와 막순이는 서로의 손을 잡고,  동수와 학수는 강가에  남은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마지막 배에 오른다.


순식간에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강을 건넌.


그러나 강을 건넜다는 기쁨도 잠시,  이곳부터는   팔도로 흩어져 각자의 고향으로  가야 한다. 막막함과  두려움으로 인해  대부분이  무리를 떠나지 못한다.


그러자 이번엔 학수가  어수룩한 목소리로 외친다.


"우리는  인자 각자 고향으로 가야 헙니다. 근디   병자와  노인 그리고 아이와 여자들한테는  애로운 길이 될 것인디.  어떻게 허믄  좋컸습니까?"


한 남자가 매우 억울한 목소리 대꾸한다.


"클 나았어여.  여기까정  오기가  얼매나 심들었드래요?  아! 인자부텀 참말로   집이  갈라카믄  얼매나 망이 심들것소.  어떠헐러우.  신짐승도 있을 끼고  산짐승보다 더 무섭제는 놈들도 있을낀데 .  크을 났았어요.  이르케  맨싸뎅이로  부딪히면  살아서 고향 갈 사람이  얼마나 있겠소이.  옛날에 고향서  늑구가  이동하는 하는 봤는디말요. 머 늑구   아나. 내 말은 동향 사람들끼리  마카 묶꺼가지고. 장갱이들이  앞장을 서면 되지 겠드래요 .   길 아는 사램은 얼푸 나와  길잽이하고.  내가 이전에 삼장사를 해가지 길이  빠삭하드래요. 잊을라고 해두 자꾸 생각이 나잖소.  내가 여그서 마카 지달리구 있을 기래요."


강원도 방언을 모르는 사람들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는데   말을 알아들은 사람들이 슬금슬금 강원도 사나이 앞으로  모여든다.   

그러자 너도 나도  외치며 고향 사람들을 모은다.


"전라도는 이 짝으로 싸게 싸게  오시랑게여."


"저는 경기도입니다. 경기도는  이쪽으로  어서 오십시오."


"황해도 사람덜은 이 짝으로  오시라요."


"갱상도 사램은 여로  오이소. "


"충청도 사람 오세유."


"평안도 사람덜은 몽땅 이짝으로 모이시라요."


"제주도 사람은 어디로 모수 꽈?"


"제주도는 일로 붙어.  우리랑 같이 가믄 되것고만. 목포서 배 타야 된 게."


사람들이 팔도로 나뉘자 이제는 고향사람들끼리  안전하게 갈 방법을 궁리한다.

길잡이가 맨 앞에 서고 그다음엔  경험이 많은  노인들, 다음엔 힘이 약한 사람들과 아이들이  맨 뒤에는 전쟁에서 싸워 본 경험이 있는 남자들이 선다. 약한 이들이 뒤처지는 것을  예방하고   혹시나 있을  후방 공격에  대비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늑구들처럼. 


엉켜있는   거대한  한 덩어리의  빛이  여덟 갈래로 나뉘어  팔도의  아리랑을 부르며 고향으로 향한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정성스러운 걸음으로 모국 땅을 아장아장  밟으며 아리랑 고개를 넘고 넘는다.


동수와 학수가 이끄는 무리도 전라도에 땅에 들어선다.   전라도 땅에 도착하자   그중에서도 동향인 사람들을 찾는다.


서른 정도 된 젊은이가  동향 사람을 찾느라 큰소리로 외친다.


"정읍 사람 습니까? 정읍 사람 습니까?"


정읍이라는 말을 듣자 동수와 학수의 눈이  동그래지며 젊은이를 바라본다.


"정읍 사람인가? 우리도 정읍인디.  형님이랑 나도  정읍에서 왔는디."


"어르신도 정읍에서 오셨단가요.  외갓집이 연월리여라. 아실란가요."


"연월리라고? 우리도 연월리에서 왔는디.  누구여."


"예? 연월리에서 오셨다고요.  혹시... 장만일 씨   아버지 되십니까?"


"자네가 만일이를 아는가?"


"예. 알다마다요.  우리 식구들이 연월리에 다시 터 잡고 살게 해 준  분인디요.   군산서 하는 미곡상다가  일본 놈들 한테 다 뺏기고 오갈 데가 없어서  연월리로 이사를 갔지라이. 어머니 고향인 게요.  안 사람이 일본 사람이라 어딜 가도 눈총을 받는디   장만일 씨가  마을 사람들을 설득히가꼬 우리가 연월리에 살 수 있어지라.  아버님도  훌륭한 분이라고   들었는디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어라."


"그려.  우리 만일이가 그랬단 말이여."


"예.  장만일 씨는 진작에 결혼을 허셨고 아들이 둘인가 셋인가  두셨지라. 모친도 건강하시고  동생 장삼일씨도   지내시고요."


"혹시 우리 형님네 소식은 아는가?  방장산 올라가는 길에  있는 집인데.  아들 이름이 이영달이네.  지금 마흔 살이 되었는디."


"혹시  방장산 올리가는 길,  새막산에 있는 집 말씀이신가요?  거기엔  이상한  젊은 아짐씨랑  말 더듬는 머스마,  이 이름이...  그려 몽이가 사는 집인디.  소리 허는 애요."


"이영달이 동네에 없단 말인가. "


"죄송하지만 그런 분은 모르것는디요."


동수와 학수는 성일로부터 그간의 마을 소식을 들으며 걷는다.   새벽이 다되어  연월리에  들어선 세 사람은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새암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물을 마신다.  


성일은 마음이 조급한지 물을 마시는 둥 마는 둥 한다.


동수가 성일을 향해 말한다.


"가보시게. 얼마나 처자식이 그립것는가. 먼저 가보시게."


"예, 어르신. 저는 먼저 다녀오겠습니다."


"그려." 


"동상, 고향 물맛 좋지."


"예,  성님."


그러나 대답하는 동수의  표정이 어둡다.


"왜 그러는가? 동상."


"식구들이 를  반겨줄까요? 우리 아들들은 나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인디.  마누라는 아직 잘 있것지요.  동안 어떻게 된 것은 아니것지요.  막상 고향에 온 게 무서워라.  이십 오 년이나 얼굴 한번 안 보고 살았는디.  둘째 놈 돌 때 갔응게.  잘 컸을랑가.  어려서 띠어놓은 놈이라 더 눈이 밟히는 가벼요. 어째 첫째 아들은 별로 걱정이 안되는디 둘째  삼일이는  목에 걸린 까시 같을까."


"그럴 것이여. 자네가 삼일 만세 운동 때문에  쫓겨 다니느라  품에 한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헤어졌으니까.  첫째 아들은 어려서  얼러주고 목마도 태워주고 등목도 해주고  아버지 노릇 할 만큼 해줬응게 걸리는 것이 없는 거고."


"그리서 그런 것일까요?"


"나도 무서워.  여기 왜 돌아왔나 모르것네, 영달이는 마을을 뜬 것 같고. 마누라는  저 세상 간 것 갔은디.    말만 서방이고 아버지지  내가 식구들한테 해준 것이 뭐가 있는가.  인자는 잘해줄 수 있는디.  다 없다잖여."


동수와 학수가 새암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허리가 꼬부라져서   코가 바닥에  닿을 것 같은   뽕할머니가  걸어온다.  수백 살은 되어 보이는 뽕 할머니.  어린 동수와  학수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으면  배가 부를 때까지  오디를 따먹게 해 주었고  실을 뽑고 남은  번데기를  선뜻 내주었었던 할머니.  뽕 할머니는 그때보다 허리가 조금 더 꼬부라졌을 뿐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지금도 누에를 올리다가 나왔는지   새하얀  머리에  누렇게 익은 누에 한 마리가  고개를 쳐든 채로  붙어 있다. 뽕 할머니가 동수와 학수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보자 보자  어디 보자.  그리여. 너는 도옹수, 장 동수. 보자 보자 어디 보자 . 하악수.  이 학수. 글쟈?" 


"예. 할머니.  뽕 할머니. 잘 계셨어라? 여전히 짱짱하시구만요. "


"짱짱허긴. 안 아픈데가 하나도 읎어.   명줄이 징그럽게  안 끊어진 게  사는 거지. 늙으면 죽어야지.   인자 돌아온거여. 허던 일은 잘 힜고?"


"예.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할머니."


"그려. 욕봤구먼.  동수는 집에 가봐. 식구들은  잘 있어. 다들 얼마나 기다리것는가.  낮에도  여기 모여서  한바탕 난리굿을 하고 갔단게.  집에 들어가 봐. 기다릴 것이여."


동수가  몹시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머뭇거리자   학수가 동수의 등을 떠민다.  


"얼릉 가봐.  식구들이 기다린다고 하잖여. 나는 뽕할머니랑 여기 더 있을랑게.  마누라 없는  집에  가서 뭐 헐 것이여."


동수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간다.

마당에  들어서자   지붕도 들었다 놨다 할 것 같은   코골이 소리가 들린다.

 

이방에서  '크흐윽읗...' 하면


저 방에서  '으 그으 그 극.' 하고


그러면 건넌방에서  ' 크르르르르르....'로 응수한다.


동수가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하고 안방에 들어간다.  초로의  아낙이  큰 대자로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동수가  독바우댁을 흔들어 깨운다.


"여보, 나 왔단게. 임자. 임자. 선례. 선례야."


"어 어음음음...   인자  왔소.  밥 먹었소. 진지 잡수쇼.  웃목에 밥 차려 놨응게."


윗목을 바라보니 아내가 차려놓은 밥상이 있다.  남편이 돌아오면 언제라도 먹을 수 있도록 늘 상을 차려두고 잠을 자나보다. 작은 개다리 상 위엔  밥 한 그릇, 물 한 그릇, 간장 종지 하나가 놓여 있다.  동수가  어두움 속에서 달각달각 숟가락질을 하니   동수의 처가 누운 채로 여몽여각 남편을 위로한다.    


"배 고팠소? 여태 밥도 못먹었갑네. 고상힛소.   어디 있다 오니라... 인자 왔소. 으음..."


"미안하네. 흑흑. 미안혀."


"그런 얘기는 난중에  헙시다.  삼일이  잔 게.  여기 누워 주무쇼.  으으음. 쩝쩝."


독바우 댁이  꼬물꼬물 몸을 움직여  자기 옆에 누울 자리를 만들어 준다.  동수가 밥그릇을   비우고   아내  옆에 누워   물끄러미 얼굴을  바라본다.  주름지고 여위였으나 여전히 곱고 사랑스러운 아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한참 동안  비빈 후 아들들  얼굴을  보기 위에 마루에 나가니  건넌방에서  젊은 남자의  우렁찬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둘째 아들, 삼일이인 것 같다.


"삼일아. 삼일아. 애비 왔어. 애비가 왔당게. 삼일아. 아버지 왔어야. 삼일아."


삼일이가  이부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문 쪽을 바라보고  몸을 부르르 떨더니  몸을 훽 돌려서 등을 돌리고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쓴다.


"아버지 들어간다."


동수가 방에 들어가  삼일의 등을 바라본다. 삼일은 동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으나  아버지를 바라보지 않는다.


"삼일아. 듣고 있지. 안 자는 거 알어. 그려 그냥 듣기만 혀.  내가 미웁냐?   너희 형제랑 어머니만 남겨두고 가서.  미안혀.  내가 할 짓을 힜다. 미언허다.  그래도 후회는  없어.   독립도 보고  우리 아들 등짝도 보고.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여.  잘 커줘서 고마워.   삼일아.  삼일아.  얼굴 한번 보자. 으응?  그려.  대답 좀 혀.  삼일아."


"그런 사람 몰라라우."


"그래. 그래. 잠 깨워서 미안허다."


동수는  멋쩍게 삼일의 방에서 나와    사랑방 벽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본다.  신돌 위에  아이  고무신 세 켤래와 여자 고무신 한켤래. 그리고 커다란 남자 고무신이 있다.   큰 아들 만일이의 방이다.  동수는  며느리와  손주들, 아들이  엉켜서 자는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제일 큰 고무신을 바라본다.


"그려. 잘 있었구나.  고맙다. 장하다. 만일이.  우리 큰아들."


동수는 마당에 서서 집을 바라본다. 초가지붕, 문짝들, 흙벽, 기둥, 구멍 난 창호지, 에 걸린 빗자루, 마루에 놓인 요강, 가족들이 발을 닦은 걸레.  부뚜막에 걸린 솥단지. 살강에 올려진 이 빠진 그릇들,  고향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  것들을   눈에 담고 새암으로 나온다.   


새암에 나오니 학수가  노년의  여자를 끌어안고 울고 있다.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   학수의  마른 얼굴이  몹시 부어 있다.  동수가  늙은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깜짝 놀란다.


"형수님? 형수님이요?  형수님. 어떻게 왔소."


"동수 되련님.   잘 기싰소?"


"예, 형수님."


"되련님. 식구들 얼굴은  보셨소?"


"예, 형수님.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몰르것소. 형수님은 어디에 계시다 오셨소?"


"산에 가 있었지라잉, 오셨다는 소리 듣고 내려왔소이.   두 분이 잘 돌아와 주셔서 참말로 고맙소잉.  시간이 오래 걸려도  오실 줄 알았소.   고맙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히서.  근디  서방님도 되련님도 하나도 안 늙은 것을 본 게  연월리 떠나서 얼마 못 살았는갑소.   나는 여기서  한참 늙도록 살았는디.  기다리다 본 게 어느새 시간이 가버리서.   오시면 같이 갈라고  기다리고 있었소. 와줘서 고맙소잉.  나도 인자  아무 한이 없소.  서방님 만났응게. 서방님도  한이 없지라?"



학수가 부은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독립이 되았고 임자 얼굴도 봤는디 무슨 남은 한이 있것는가. 다만 영달이 얼굴을 못 봐서 서운허네.  백두산 왔을 때 본 게 장정이 되았드만. 지금은 어디에 있을라나."


"영달이는 잘 지내고 있어라. 물 건너에 있응게 가보지는 못허지만 나는  알 수 있당게요."


그때 먼저 집에 갔던 성일이 새암으로 오고 있다. 많이 울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어 있는데도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완연하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고생 많았소. 우리  진짜 고향 갑시다. 뽕 할머님.  부디  만수무강  허십시오."


새벽 첫 닭이  운다.


소원을 이룬 세 사람은 따뜻한  빛 속으로 사라진다.  영혼들  지켜보는  새암 옆의 늙은 뽕나무가 온몸의 잎사귀를  흔들며  눈물겹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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