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령 Aug 03. 2024

1장 1945년 8월 15일

2화   암탉은  울면서  달걀을 낳는다.



정용은  라디오 방송을 듣고  집에 들어가려다 독바우 사는  영술의 집으로 향한다. 가족끼리  양계장을 경영하는 영술 어릴 적부터 정용과 가장 가까운   동네 친구다.  

영술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더위에 지친  동무가  신발도 벗지 못하고  엉덩이를 엉덩이를 걸친 채로  누워있다.

"영술아. 뭐 허냐?"

"왔냐.  되다. 이제 막 누웠다."

영술이 누운 채로 대답을 하는데  정용의 뒤로 영술의 처, 순이가  따라 들어오며   도깨비 같이 눈을 뜨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날이 뜨거서  닭들이  다 디져가는데 뭐 허냐."

어느새 네 아이의 어머니가 된 영술의 처는 남편뿐 아니라  시동생들과  남편 친구에게까지   거리낌 없이 호령을 하는 이 집의  암호랑이다.  더위에 죽어나가는 닭 때문에 어지간히 속을 끓인 탓인지 남편의 동무를 보고도   눈인사  한번 없이 다짜고짜  신경질이다.

누워있던 영술 무안한 기색으로 슬그머니 일어나 아내를 향해.

"왜 그려. 날이 뜨건 것을 어찌라고. 자네도 여기 앉어서 열 좀 식혀. 끓을 탕 고만 끓이고."

"지금이 제일 뜨건 때여. 닭장에 물이라도 뿌리야지.  어딜 앉어?  닭들이 떠죽는디. 새 신랑은 잠깐 여기 있고  헌 신랑은 나오고."

아내가 더운 바람을 일으키며 나간 길로 영술이 마지못해  따라나가며   제 마누라에겐 입도 뻥긋 못할 말들을 목을 길게  빼고 속닥거린다.  

"니미럴. 날이 뜨거서  닭이 죽는 것을 나한테 어찌라고 그려. 더위 먹은  닭을  골라  잡고  부채질이라고 살살해주라는 것이여 뭐시여. 니미. 나도 더워 죽것는디.   이럴 줄 알았으믄 우리  삥아리들 따라 개울이라도  가는 것이였는디. 잘못힜어.  좋은 말로 히도 되는 것을  저렇게 소락대기를 질러 싸면  서방이 냉방이 된단가?  니미.  예폔네 무서워서  숨도 크게 못 쉬고.  어매. 뜨거라.  안되것어.  오늘은   뚜드려 패 줘야 것어.  두 주먹이 울어서 못살것다.   감히  누군 줄 알고.  너는 여그 쪼깨 있어라잉. 정용아. 금방....."

그러는데 대문 밖에서  성난 포효 소리가 들린다.

"뭣혀. 얼릉 안 오고.  길선이 아부지."

"알았당게. 금방 나간당게. 정용아. 가지 말고 기다려라잉. 가지 말어. 참  사나이 꼴이 우사 스라서."

꽁지가 빠질세라 바지를 추켜올리며 다리를 끌려 달려가는 영술의 꼴이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한때 불주먹이라 불리던  사나이.  일본 왈패들의  면상에  주저 없이 주먹을 날리고  세상에서 계집을 제일  우습게 여겼던 남자가   제 반토막한 아내 앞에선  오금조차 펴지 못한다.    

주인 없는 집에 혼자 남겨진 정용은  드난살이하는 머슴처럼  쪽마루 끝에  앉아  친구가 나간 대문을 바라보며  좀 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천황의 발표를 곱씹는다.

'분명히 천황은 전쟁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일본이 조선 땅에서  물러나겠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조선은 어떻게 된다는 말이지.  일본이 물러나면 도대체 누가 이 허약한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인가.  왕조를   도난당한 지  무려  삼십오 년이다.  우리 손에 무엇이 남아있어  독립을 한다는 말인가.  나처럼  못난 놈은 어쩌란 말인가.  조선은  오래전에  죽었고  재로 흙으로  사라졌고  곰팡내 나는 족보에  이름으로만  남았다.   아버지처럼.

그럼에도  얼굴조차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  그것을  보물처럼  가슴에 품어 가시에 찔리고 칼에 베이는 어리석은 나는 어쩌란 말인가.  

일본이 물러가면  누가 거친 일꾼들에게 일을 시키고 과실을 누가  거둘 것인가.  난 아직  과수원을 경영할 능력이 없다.   무능한  사람이다.  그놈들 말처럼  원래부터 하급 족속일지도 모른다.'


끝도 없는 진창길을  굴러야 하는  수레바퀴처럼    악착같이  패배의식과 열등감이 정용에게  들러붙는다.  


정용의 아버지는 1910년, 정용이 태어나기 전 해에  할아버지와 함께  가산을 일부 정리하여 고향을 떠났으나 한 달 만에  나란히  돌아왔다고 한다.  유골함에 담겨.  그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잇단  상을 치르고 난 어머니는 그제야 정용을 가진 것을 알았다고 한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정용을 임신한 채로 아버지 친구의 소실이 되었다. 어머니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납득할 수 없는 어머니의 행동은  아들에게 전해져  수치와 오욕으로 물들게 하였다.

그때 홀랑 젖은 영술이  물을 뚝뚝 흘리며  죽은 닭 다섯 마리를 손에 들고 대문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온다.   그리고  바로 뒤엔  영술의 처가  역시 젖은 채로   정용을 의식하며  암코양이처럼   따라온다.  어디서 구르다 왔는지 옷매무새가 몹시  흐트러져있고  붉게 상기된 얼굴엔 부끄러운 기색이  감돈다. 영술 안사람을   바라보는 정용을 의식하고  죽은 닭을   마구 흔들며  큰소리를 친다.

"닭이 다섯 마리나 죽어버맀어야.   긍게 우리 어부인이  난리를 칠만도 허지. 닭장에  시원한 물을  뿌려줬응게 오늘은  괜찮것지. 아까 낮이까지만 히도  암시랑토 않었는지 그 새를 못 참고 죽어버맀네.  불쌍허게.   임자.  얼릉 삶어. 더 있으면 못 먹어."

"예.  임자는 개울에 가서 아그들 데리고 오시오잉."

그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영술의 처가  오랜만에 실실 웃고 있다. 정용은 순간  단곡댁이  아까  한말이 생각나 몸이 절로 움츠려든다.


'독바우 양반은 팔뚝이  바우 같소잉.'

정용은   오그라든  어깨를 피며   오랜만에 일기가  좋은 소학교 친구, 영술의 처에게  격의 없이 말을 건넨다.

"순이야.  아그들 데리고 올텐게  닭 맛있게 삶아주라잉."

그러자 순이는  힐끔 돌아보더니  어릴 적  얼굴 표정을 그대로  되살려 대꾸한다.

"반말하지 마라잉. 내가 너보다 두 살 더 많은디  좋은 말로 헐 때  누님이라고 혀. 콧구녕에  목침을 박아가고  한 구녕으로 합쳐버리기 전에."

두 남자는  으르렁대는  순이를 뒤로 하고   한 손으로 코를 잡은 채  개울로 걷는다.  집을 나오자 허리를  곧추세운 영술이 자랑스럽게 입을 뗀다.

"순이 봤냐잉. 내가 이런 사람이여. 오랜만에 볼기짝을 때려줬더니만 아주 고분고분 허고만.  엣햄."

"참말로 대단허고마잉.  불주먹 영술이가  까시란 가시네  앞에서 찍소리도 못 허다가 뒤돌아서서  장군님처럼 큰소리를 치는 것이  아주 볼만허 다잉.  장군님.   저그를 보십시요잉.  너그 쫄따구들  있습니다."

저 멀리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는 어린아이 넷이 보인다.
길선이,  길님이,  길상이, 길남이.  
열 살, 여덟 살,  여섯 살, 네 살.   
딸, 딸, 아들, 아들.
완벽하게 구색을 갖춘 영술의 졸개들이다.

"봐라. 봐라.  우리  삥아리들. 아이고. 여워라."

"그려 보고 있다.  졸병들이 아주 용맹허다.  영술아. 근디 밀여. 

 아까 라디오 들은 게 일본이 물러갈 것 같은디."

"그려.  근디? 가라 혀. 아쉬울 것 없응게."

"글믄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지금처럼 살믄 되지. 너는 과수원 허고   나는 양계장 허믄서. 우리가 언제는 나라 덕보고 살았냐?  내 나라는 순이, 길선이, 길님이, 길상이, 길남이. 아버지. 동상들. 그리고 너도 헐래?  허고 싶으면 시켜주고.  나는 그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이지  다른  생각 안혀.  내 헐 일은 자식들을 많이 낳아서 내 나라를 크게 만드는 것이여.  약한 사람이라도 많이 모이믄 힘센  사람 한 명쯤은 처치 허지 않것냐.  싸움이  별 거냐. 쪽수고 근수여.  순이랑 나는 이 나라의  씨암탉이  되기로 힜어.  내가  너그 어머니 남편처럼 애국도 허고 매국도 허는  큰 인물이  아닌게로  누가 오든가 가든가 뭔 상관있것냐."


"......"
 
아이들이 있는 개울로 걸어가니  영술을 본떠  깎은  목각 병정 같은 아이들이  역시 거의 젖은 채로 영술에게  뛰어온다.  점심을  먹고 헤어졌을 텐데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이 달려들어  몸을 비벼대니   갈라진  흙바닥에  맑은 물이 뚝뚝 떨어진다.

영술은 길상을 업고  정용은 길남을 목마 태우고   두 딸은 손을 맞잡고  집에  돌아가니 순이가  끓는 물을  닭이 담긴 동이에  푸고 있다.  
영술, 순이,  정용 그리고  네 아이들까지 우르르 가세하여  닭털을 뽑으니 닭 다섯 마리가  순식간에  옷을 벗는다.  정용은  깃털을 벗고 가지런히 누운  닭 다섯 마리가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섬뜩하다.

정용은  만삭의 아내,  애야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곧  닭이 다 삶아졌으나  아무래도 저녁은 집에서 먹어야겠다며  상을 물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순이가 따라 나와  달걀 소쿠리를 건네준다.

"각시 갖다 줘.  잘 히줘. 자고로  여자가 애기 가졌을 때  잘히줘야  되느니라. 누님 말씀 명심허고. 알겠느냐."

"예. 누님.  고마워서 어찐다요."

"되았고. 너는 소쿠리도 먹냐?  소쿠리는 처먹지 말고  도로 갖고 와라잉. 우리 집은 계란보다 소쿠리가 더 귀한 게. 그리야 우리 조카님 계란을 계속  댈 것 아니어."

오늘도 육식을 하진 않는  애야를 위해  모양 좋은 계란만 모아  순이가 각별히 챙겨둔 것이다.  정용이 계란으가득 찬 소쿠리를  가슴에 꼭 안고  독바우 고개를 넘어  연월리로 돌아간다.   독바우 고개를 넘자니 자연스레  꽃분이가 떠오른다.  십수년 전, 정용이  첫 번째 아내, 꽃분이를  등에 업고  수없이  읍내 의원에 다녔던 길이다.  병이 깊어  깃털같이   가벼워진 꽃분이가 고갯길은 굳이 걷겠다며  정용의 등에서 내려와서  푹 꺼진 눈으로 울듯이 웃으며 말했다.


"서방님  무겁것소." 


"안 무거.  하나도 안 무거.  자기 계집도 못 업으면 그것이 사내여."


"미안허요. 이릏게 아퍼서 면목이 없소."


"내 자식  낳다가  병이 났는디  내가 자네 볼 낯이 없지."


"머스마였는디. 그리도  에미는   살것다고 서방 등 업혀서 약방이나 다녀싼게   넘부끄랍소. "


"자식은 또 얻으면 되는 것이지만 자네는 하나여.  날 닮아 못난 아들이것지.  업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소잉.  나 인자 그만 미안해해야소."


무거운 죄책감을 내려놓은 꽃분은  한결 더 가벼워져서 정용의 등에 다시  업혔다. 그리고 며칠 뒤에 아들이 잠든  산에  묻혔다.

 

아직도 눈에 선한 분이를   지워내듯이 정용은 애야가  지어준 저고리 옷 섬으로 눈 언저리를 닦으며 고개를 넘는다.   


연월리 집에  들어섰을 땐  애야는  한창 진통 중이다.  원천댁과 귀화는 오늘 아침부터 산기가 조금 있었고 다섯 시쯤 양수가 터졌으니 아무리  빨라도  늦은 밤이나  내일  새벽쯤에 아기가 나올 것이라고 했지만   애야는 저녁 여덟 시경에  딸을 낳는다.

정용은  땀으로  득해진 애야의  이마를   여러 번  쓸어주고   갓 태어난 아기를 바라본다.    신생아가  닭백숙과 겹쳐 보여서  닭털  뽑은  손으로   만지기가   꺼림칙하여 망설이는데   원천댁과 귀화가  갓난아기를  정용의 품에 안겨주며 누구를 닮은 것  여러 번 묻는다. 아기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닭백숙을 닮은 것 같다고 대답할 수없어  장모님을 닮은 것 같다고  얼버무린다.  사위의 대답을  들은  귀화는 무척 감격스러운지 눈물을  글썽이다 이내 활짝  웃는다.

정용도  오랜 망령에서  풀려나  안도한 듯이    보일락 말락 작게 웃는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