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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Apr 23. 2023

지르고 보기

100km 달릴 결심

  무라카미 하루키가 야구를 보다가 갑자기 소설가가 되어야 되겠다 생각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2023년 2월의  어느 날이었다. 2월의 어느 날이었는지, 그날은 월요일이었는지, 토요일이었는지, 그날은 달리기를 했는지, 날씨는 맑았는지, 막바지 겨울로 추운 날이었는지, 봄이 오기 전 따뜻한 날이었는지, 오전이었는지 오후였는지, 자기 전이었지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갑자기 어떤 생각하나가 튀어 올랐다.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해야겠어!




 이제 풀코스 마라톤도 겨우 뛰는 내가 울트라 마라톤을 생각하다니... 100Km를 뛰면 거의 죽을 것을 안다. 사람이 뛸 수 있는 거리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이걸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예전에  내가 달리기를 초보로 하던 시절에(지금도 초보이긴 하지만...) 학교에 철인 3종경기, 풀코스 마라톤, 트레일러닝의 고수 선생님이 계셨다. 그 고수선생님 앞에서 나는 하프 마라톤을 뛴 것을 자랑하며 한참 관심이 생긴 달리기 이야기를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때 울트라 마라톤을 뛰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100Km 마라톤이었는데, 거의 다 와서 너무 힘들어서 눈앞에 보이는 여관이었는지 모텔에 들어가서 주무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그때는 내가 100Km는 절대 도전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사람이 그 절대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 고수선생님도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도 도저히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든 일이다.


  나는 왜 갑자기 울트라 마라톤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는가? 이런 생각도 운명과 같이 찾아온다.  한꺼번에 많은 운명들이 나에게 달리기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첫 번째 운명은 그 당시 내가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베른트 하인리히의 뛰는 사람이라는 책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시는 100Km를 뛰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100Km를 뛰는 사람, 그 이상을 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거리를 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아마 옆집 아저씨가 그렇게 뛰었다는 말처럼 친근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울트라 마라톤이라고 하면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저자들의 이야기는 친근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나는 세뇌를 당했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100Km 달리기를 할 수 있다고 나에게 용기를 준 사람 때문이다. 달리기 크루 사람들과 책모임(그날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을 하다가 크루 중 한 분이 100Km 달리기 이야기가 나와서  울트라 마라톤은 내내 달리지 않고 걷기도 하고, 중간에 밥도 먹고, 간식도 먹고, 그렇게 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적어도 걷지 않았다고 말하며 힘들게 완주했지만 나는 걷기도 하고 중간에 밥도 먹고 놀며 가면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겁상실'이 생겨버렸다. 겁상실은 나의 오래된 지병인데, 기억상실처럼 한번 나가면 잘 돌아오지 않는다. 드라마의 기억상실처럼  큰 충격이 과해지만 가끔 돌아오기도 하지만 100Km를 뛰어보기 전까지는 그 겁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세 번째 운명은 같은 달리기 크루의 J가 울트라 마라톤을 뛰는 것을 본 이후였던 것 같다. J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100Km를 달려서 2023. 부산비치울트라마라톤에서 무려 3위라는 성적을 냈다. 당연히 나는 J만큼 훌륭한 러너도 아니며, 속도도 낼 수 없을 것이고, 수상권도 아니지만 J가 뛰고 있는 순간에 그 경험이 너무 부러웠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분명 어려운 일인 걸 아는데, 그것을 이겨내고 있는 J가 부러웠다.  울트라 마라톤에 대한 생각은 운명처럼,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그렇게 나에게 들어와 버렸다. 


  100km는 엄청 먼 거리다.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운전해서 가도 시속 100Km/h로 달리면 정확하게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 서울에서는 천안까지가 100Km, 우리 집인 진주에서 부산까지가 100Km 정도 된다. 항상 운전해서 갈 때 40킬로 정도 남으면 내가 풀코스를 뛰는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두 발로 그 거리를 뛰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는 이미 나의 주변사람들에게 도전 목표를 말하고 다녔다. 내가 중간에 포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마음으로, 신청해 놓으면 미래의 내가 알아서 수습하겠지라는 마음으로, 달려보다가 도저히 안되면 포기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는 엄마가 없는 등굣길 차 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가 못하게 하면 저지르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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