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50Km를 성공한다면 나는 100Km 마라톤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무모하고, 단순한 생각. 100Km 울트라 마라톤 준비 겸 나는 50Km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동안 나의 경험상 내가 21.1Km의 하프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으면, 42.195Km의 풀코스도 가능했다. 다른 사람들은 중간 과정, 풀코스를 뛰기 위해 35Km 이상을 뛰어보는 연습과정을 거치지지만 나는 무모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50Km와 100Km는 영역자체가 다르지만, 50Km를 울트라 마라톤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번에도 내가 50Km를 뛰어 낸다면 나는 100Km의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전을 하기로 했다.
50Km를 뛰기 위해서 따로 훈련을 하거나 연습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풀코스 보다 조금만 더 많이 뛰면 된다고 생각했다. 최종목표는 100Km이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숙제부터 해치우는 편이다. 내일의 걱정은 내일 하면 되니까... 나의 무모함도 나의 재산이다. 시간제한도 있기는 했지만 50km에 8시간 정도였다. 42.195Km를 5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을 했다. 힘들면 걸어서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번에 도전한 대회는 대전 한밭벌울트라 마라톤 대회였다. 이 울트라마라톤 대회는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되었다가 3년 만에 개최되는 대회로 올해 12회째라고 했다. 대회장에 도착했을 때 3시 30분쯤 되었다. 주차공간도 많지 않다고 했지만, 약간 들뜬상태였기 때문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마라톤 대회는 항상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항상 첫 참가가 중요한데, 이번대회가 50Km이긴 해도 나의 첫 울트라 마라톤 대회이기 때문에 많이 설레었다. 주차장에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집에서 나오기 전부터 옷을 갈아입고, 무릎테이핑까지 마치고 웬만한 준비는 다하고 나왔기 때문에 핸드폰과 러닝 조끼만 들고 엑스포공원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엑스포 다리만 건너면 행사장이었다.
미리 홈페이지에 공지된 참가자 명단을 봤을 때 알았지만 대부분이 100Km를 뛰시는 분들이었다. 접수대 근쳐에서 한분이 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며 "박주영씨, 왜 50Km를 참여혀~? 100Km 참가하지" 라며 말을 거셨다. 나는 울트라 마라톤은 처음이라는 말과 함께 부끄럽게 웃었다. 50Km에 참여하는 사람은 3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등번호(등번호 3 자릿수, 6백 번으로 시작하는 등번호는 모두 50Km이다.)를 보고 50Km에 참가하는 사람을 보면 반가웠다.
2023년 5월 13일 3시 30분경의 대전 날씨는 무척 더웠다. 나는 싱글렛과 반바지를 입고 갔는데 낮의 날씨는 어깨가 따가울 정도로 햇볕이 강했다. 저녁에는 날이 서늘해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자정이 되기 전에 끝날 것이라고 예상해서 바람막이를 챙기지 않았다. 내 옷차림을 보고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특히 중년의 여성분들이 많이 걱정해 주셨다. 울트라 마라톤은 일반 마라톤 보다 더 연세가 많아 보이는 분들이 많아 보였다. 100km 가시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다들 메고 있는 가방도 가득 차 보였다. 나는 물과 에너지젤밖에 챙기지 않았는데, 50Km 러너인 내 가방은 가벼워 보였고, 내 마음도 설렘과 함께 당연히 완주 가능하다는 듯 가벼웠다. 나는 할 일이 너무 없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사람구경도 했다. 울트라 마라토너들의 가방은 모두 다 달랐는데, '이렇게나 러닝조끼가 많다고?', '저분들 가방에 뭐가 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가방을 가지고 가지 않고 허리벨트에 에너지젤만 차고 달릴 생각도 했었기 때문에 어떤 짐들이 들어 있는지 궁금했다. 울트라 마라톤이 처음인 초짜가 대회장에 일찍 도착하면 할 일이 없다. 베테랑이신 분은 돗자리 등을 깔고, 얼굴에 검은 옷을 덮고 주무시는 분들도 계셨고, 다들 함께 뛰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에너지를 보충하는 등 분주하게 자신을 할 일을 하는데, 나만 할 일이 없어서 괜히 어슬렁 거리며 대회장 주변을 지켜보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초보인 내가 어설프게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마찬가지겠지만...
울트라 마라톤 대회는 50Km, 100Km 순서 없이 함께 출발했다. 나는 미리 나의 가민워치에 50Km GPX를 저장시켜 놓았다. 기계를 설명서를 읽어가며 사용방법을 익히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가민워치에 LiveTrack 기능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예전에 달리기 크루의 J 님이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LiveTrack으로 응원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파란색 점을 따라서 달리는 것이 실시간으로 눈에 보였기 때문에 마라톤대회 생중계를 보는 것 같았다. 신박하기도 했지만 J님이 뛰는 것을 보고 있으니 옆에서 보는 것처럼 용이 쓰이고, 응원하게 되었다. 그 파란 점만도 몇 시간이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것을 알아가는 것은 너무 귀찮은 일이지만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닐 때가 많은 것 같다. 나는 나의 LiveTrack을 나의 지인들에게 공유하였다.
개회식이 끝나고, 카운트다운을 한 후 제12회 한밭벌 울트라마라톤 대회가 시작되었다. 달리기 시작의 풍경은 한빛탑을 향해 뛰었다. 은색 광채가 빛나보였다. 날씨는 좀 더운 편이었지만 시작은 상쾌했다. 울트라 마라톤의 시작은 일반 마라톤보다 시작을 천천히 뛴다. 막 치고 나가는 사람이 없다. 다들 여유 있게 뛰었다. 앞으로 뛰어야 할 거리가 너무 많이 남았지만 한 발 한 발 나가면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차곡차곡 뛰어나갔다. 나도 더 속도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앞에 사람들에 막혀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시작은 천천히 즐기면서 뛰기로 했다. 10km를 달려야 첫 번째 CP가 나왔다. 중간에 목이 말랐지만 가지고 간 물을 마시지 않았다. 참을만하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CP까지 달리는 동안은 50Km가 얼마나 먼 거리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달렸다. 1Km를 달렸을 때는 이만큼을 49번 더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5Km를 달렸을 때는 이만큼을 9번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Km를 달렸을 때는 이만큼을 4번 더 달리면 된다고 생각하며 달린다. 첫 번째 CP까지는 꽤 멀었던 것 같다. CP에 가면 맛있는 물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10Km 이전의 아직까지는 여유로운 모습
첫 번째 CP에서는 물과 이온음료, 콜라와 머핀이 제공되었다. 4조각으로 잘려 있는 머핀을 서서 몇 개 먹었다. 점심을 1시쯤에 먹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뛰면서 배가 고팠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한 조각을 먹고 바로 뛰어가는 동안 나는 두 조각을 먹었다. 내가 잘 먹으니까 CP봉사자분들이 나에게 큰 머핀 한 개를 다 들고 가라고 했다. 그건 너무 먹보처럼 보일까 봐 거절했다. 그렇지만 눈은 머핀에만 고정시키고 집중해서 먹었다. 머핀뿐만 아니라 물도 먹고, 콜라도 먹고 이온음료도 마셨다. 다음 CP에 떡이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 머핀을 먹는 것을 멈추고 물을 한 모금 먹은 후 다시 주로로 향했다. 달리기 시작하니 많이 먹은 탓에 옆구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평소에 달리기를 할 때는 거의 새벽 공복상태에서 달리기 때문에 옆구리가 아픈 일이 없는데, 옆구리가 갑자기 아프니 당황스러웠다. 나는 달리기를 멈추고 걸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천천히라도 달리기로 생각했다. 견디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한 5분쯤 달리기 또 옆구리 아픈 것은 괜찮았다. 첫 번째 CP를 지나고 두 번째 CP를 향해서 달리자. 그렇게 CP를 하나씩 지다가다 보면 끝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CP에 도착했을 때는 봉사자분들이 방금 막 도착한 떡을 꺼내고 있었다. 떡은 먹어야 하니까 떡을 꺼내주실 때까지 또 기다렸다. 눈이 빠지게 떡상자만 쳐다보며 현기증이 날뻔했다. 절편이 맛있었지만 아까 옆구리의 고통을 생각하며 꿀떡을 못 먹은 것이 아직도 서운하다. 꿀떡을 못 먹었지만 물과 떡을 먹었기 때문에 다시 옆구리가 아파왔다. 첫 번째 CP를 지났을 때는 오른쪽 옆구리가 아팠는데, 두 번째 CP를 지나고는 왼쪽 옆구리가 아팠다. 두 번째 오는 옆구리 통증은 곧 지나갈 것을 아니까 그냥 견디면 되는 것이었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고 아는 것이 힘이다. 그냥 그대로 가기로 했다. 사람들이 앞에 몇 명씩 보이면 그 사람들만 쫒아서 달렸다. 나는 거의 같은 페이스로 달렸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제치고 달리기도 하고 추월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승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갈 길은 멀었으니까.
두 번째 CP를 지나니 조금은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여러 가지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생각들이다. 주로 오른쪽으로 내 키의 허리까지 오는 풀숲을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내가 만약 지금 화장실이 너무 급하면 저기 들어가서 볼일을 보면 내가 보일까 안보일까?'라든지, '입술이 너무 마른 것 같은데 사진을 찍으면 입술이 허옇게 나오겠네. 다음부터는 꼭 립스틱을 들고뛰면서 중간중간에 발라줘야지.', '립스틱은 너무 잘 지워지는데, 틴트 같은 것은 좀 유지력이 좋으려나, 입술 문신을 해야 하나.', '아 요즘 너무 눈밑이 쳐진 것 같은데, 특히 달리기 후에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보면 다크서클 같은 것도 보이고... 진동봉이 달린 아이크림을 살까? 그게 효과가 있을까.' 이런 잡생각들이었다. 지금생각해 보면 내가 달리는 동안 정말 바빴구나. 10킬로마다 에너지젤을 하나씩 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해 4개를 챙겨 왔는데 앞에 가는 사람이 맨몸으로 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내 것을 하나 줘야 하나 고민도 하고(결국은 주지 않았다. 완주를 위해 좀 이기적이 되기로 했다.), LiveTrack덕분에 나의 달리기 크루 사람들이 내가 어느 속도로 어디를 뛰고 있는지 심박수는 괜찮은지를 다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들(내가 CP에서 물을 마시면 그들끼리 "이제 급수를 하나보다" 이런 말이 오고 간다.)을 의식하며 달리기도 했다. 뛰는 동안 화장실에 보여서 화장실도 한 번 갔다 왔다. 달리다가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는 것을 보아서 배터리 걱정도 해보았다. 달리면서 '이제 다이어트를 해야 되겠다.', '보강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 '100Km 대비 훈련도 체계적으로 해봐야 되겠다.'라는 다짐도 했다. 목이 마르면 물도 먹고, 지금까지 내 소모 칼로리도 계산해 보았다.
대회 측에서 시작 전 뽀송뽀송하고 제정신일 때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컨셉사진을 찍어주셨다. 울트라 마라톤의 좋은 점은 오르막이 나오면 무조건 걷는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조금의 오르막이라도 나오면 다 걸으니 나도 걷고 싶었다. 사실 나는 50km라서 뛸 수 있을 정도의 경사였지만(여수 마라톤에 비하면 경사도 아니었다. ) 오르막길은 걷고 싶은 마음을 실행에 옮기기에 너무나 바람직한 명분이었다. 20km 이후로는 걷고 싶다는 마음과 뛰어야 한다는 마음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뛰면서 규칙을 정하기로 했다. 오르막은 걷자. 앞에 차가 오면 걷자(위험하니까). 주로가 너무 안 좋으면 좀 걷자. 물 마시고 싶을 때는 좀 걷자. 이렇게 정하고 나니까 걸어야 될 타이밍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오르막길이 나오면 너무 반가웠다. 일반 마라톤에서는 오르막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처럼 질색을 하지만, 울트라 마라톤에서는 오르막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사실 풀코스 마라톤보다 조금 더 먼 50km를 달릴 뿐인데,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해진다.
날이 조금씩 어둑어둑 해지다가 세 번째 CP(여기서도 에너지바랑 초코바를 먹었다.)를 통과하자마자 컴컴해졌다. 미리 가지고 간 해드랜턴과 보행경보등을 켰다. 좀 전에만 해도 앞에 사람들이 잘 보였는데, 이제 빨간 불빛만 보였다. 이제부터는 불빛을 보며 뛰는 수밖에 없다.
29Km 지점이 50k 울트라 마라톤의 반환점이었다. 반환점에서 내 번호표를 보고 수기로 번호와 도착시간을 적었다. 일반마라톤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시간기록을 센서로 측정하지만 울트라 마라톤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수기로 작성했다. 예전에 센서가 없을 때는 다들 수기로 기록을 측정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예전에는 기록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환점을 돌아가니 배가 너무 고팠다. 나는 뛰는 동안 배가 고팠다가 안 고팠다가 자주 그런다. 머핀과 떡, 에너지바 등을 그렇게 먹었는데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한편으로 내가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아마 태어나서 지금까지 에너지를 제일 많이 쓰는 날은 오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해가 지면서 약간은 추워지는 것 같았지만 러너에게는 상쾌한 날씨였다. 나의 기억으로는 20km~30Km 구간이 제일 시간이 안 가고 힘들었던 것 같다. 마라톤을 마치고 고도를 보고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 구간이 평지 같아 보였지만 고도가 아주 조금씩 높아지는 구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30km~40km 구간은 금방 지나가는 것 같았다. 금방 32km, 35Km, 37km가 되었다. 35Km 구간부터 이상하게 힘이 났다. 풀코스 마라톤에서는 가장 힘든 구간인데, 이상하게도 '달릴만한데, 지금 아픈데도 없고, 크게 지치지도 않은 것 같고..., '라고 생각이 들었고, 밤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밤이 꽤 늦었을 텐데도 단톡방에서의 응원은 계속 이어졌다. 달리는 순간도 끝나고 난 지금도 너무나 고맙다. 달리는 동안에도 그 단톡방 글자를 읽으면서 힘이 되었다. 응원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스포츠 종목에서 그렇게 응원을 하는 것이다. 응원으로 우리는 기적도 만들어내니까...
마지막 CP에서는 주먹밥을 먹었다. 밥과 김만으로만 된 주먹밥이었지만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세상에서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달리기 중 허기진 몸으로 먹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주먹밥이 너무 맛있다며 주먹밥을 입에 넣었다. 기억은 항상 미화되는 법이지만, 그렇게 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50km를 한 일곱 번쯤 참가한 사람처럼 여유롭게 먹었다고 나의 기억은 그렇게 그리고 있다. 마지막 CP는 지나가기가 아쉬웠다. 다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쿨하게 물만 마시고 지나가기도 했다. 나보다 늦게 도착한 여자러너분이 주먹밥을 먹지 않고 물만 마시고 뛰어갔다. 내가 먹는 동안 나를 앞질러 뛰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 나도 그만 먹고 이제 뛰기로 한다. 이제는 많이 먹어도 배가 안 아팠다. 나의 몸이 계속해서 움직이니까 나의 장기들도 움직이지 않는가 보다 생각을 하면 뛰었다. 저녁이라 길이 잘 안 보일뿐더러 나도 길을 몇 번 잃어버릴 뻔했는데, 앞에서 뛰어가던 여자분도 길을 헷갈려하며 멈추기도 했다. 그래서 제법 되는 거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울트라 마라톤은 모두를 동지로 만든다고 했다. 나와 같이 달리고 있는 선수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동지이다. 그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갔다. 그분 덕분에 페이스를 잘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7~8 Km를 남겨 놓고 그분과 함께 뛰었는데, 함께 뛰는 것은 고통이나 외로움을 반으로 나누는 것 같았다. 함께 뛰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힘이 많이 되다니... 어디에서 왔는지, 달리기를 한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최고기록은 얼마인지를 알게 되었고, 50Km에 참가하게 된 계기도 알게 되었다. 다리는 뻐근하고 무거우며, 앞으로 남은 거리는 멀고, 뛰어도 뛰어도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렇게 같이 달리다 보니 멀리 있는 엑스포 다리가 보였다. 눈에 보이지만 신기루처럼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50Km를 거의 다 뛰어갈 때쯤 100Km를 생각했다. '이걸 한번 더 뛰어야 한다고...?" 그렇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마음을 먹는 것이 무섭다. 항상 그렇듯, 100Km를 달린다고 생각하면 50Km를 다 와갈 때는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원래 모든 마라톤이 그렇듯, 다와 가면 제일 힘들다. 다리가 안 움직일 것 같지만 어떻게든 움직인다. 인체는 신비롭다. 가도 가도 끝이 없지만 항상 끝은 있다. 아무리 힘든 순간도 결국은 끝은 온다. 우리는 그 시간만 잘 버티면 된다. 달리기도 마찬가지이다. 5Km를 달리든, 50Km를 달리든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달리고, 버티고, 견뎌내면 결국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결승점에 들어와서, 약간 늙어 보이기도 하고 몸이 부은 것 같기도 하다. 50Km를 뛴다고 살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결승선을 향해 들어갔다. 11시였다. 딱 6시간이 걸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봤다. '더 이상 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한 편으로는 나에 대한 칭찬, 또 마지막으로는 100Km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나에게 여러 감정들이 폭풍처럼 막 밀려올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나의 반응은 단순했다. 결승선에서는 사진을 찍어주셨다. 들고 있는 꽃다발은 다회용으로 나는 내가 순위권이라서 주는 것인 줄 착각했지만, 그 꽃다발은 결승점에 온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는 용이었다. 이때의 가장 압도하는 감정은 안도감이다. 오늘은 안 뛰어도 된다는 안도감. 달리고 싶어서 마라톤을 하면서 달리지 않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다니...
마라톤을 마치고 미역국을 먹었다. 밥과 반찬, 미역국을 먹어야 하지만, 나는 살찔 걱정을 하여 미역국만 먹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주먹밥과 미역국을 먹고 싶은 사람은 마라톤을 시작해야 한다. 함정은 모든 음식이 다 맛있어지는 마법이 있다는 것이다.
11시가 넘은 시간까지 LiveTrack을 보면서 응원해 주시던 분들이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고마움을... 아마 혼자 달렸으면 50Km를 달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상대로 50Km를 달려냈다. 나는 100Km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라톤을 하면서 나는 자신감을 얻는다. 결국 내가 해내고 말 거라는 자신감...
사람들은 나에게 왜 뛰냐고 물어본다. 고통스러울 때 나오는 신경전달물질(엔도르핀 등)에 중독되었고, 달리면서 먹는 음식들이 너무 맛있고, 달리기는 건강에 좋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며, 정신건강에도 좋다. 이런 모든 것들을 통틀어 결국에는 해내는 내 자신이 너무 좋아서 나는 달린다.
자랑스러운 기록증이다. 이런 기록증을 차곡 차곡 쌓아가면서 나의 마라톤 경험치도 차곡차곡 쌓아갈 것이다.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청 긴 거리 이긴 하지만, 내딛는 한발한발이 중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