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 사는 사람 중 등산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알고 누구나 한 번은 도전하고 싶어 하는 창원시계종주라는 트레킹코스가 있다.
창원국제사격장에서 진해 양덕교회를 잇는 , 창원과 진해를 감싸 안고 있는 9개 산 능선을 타고 올라가는 코스, 35Km 정도의 거리의 트레킹 코스이다.
달리기 크루의 J님에게 "시계종주 관심 있어요, "라는 말을 시작해서 J님의 "같이해요, "라는 말에 낚였다. 그날은 J님이 나와 함께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같이 뛰어주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사실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시계종주에 대한 감이 없었다. 그냥 등산을 긴 거리로 하면 되나 보다고 생각했다. 등산이랑 다른 건 뛸 수 있을 때는 천천히 뛰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나름 영남알프스 9봉을 3번 완주한 적이 있었고,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나로서는 등산에 대해서는 "나는 등산 생초짜는 아니야."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시계종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시계종주계획을 수락해 버렸다. 무지한 자는 용감했다.
창원 시계종주 지도
무지해서 용감한 나는 시계종주하기 일주일 전까지 초록창에 '창원시계종주'라고 찾아보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보지도 않았다. 같이 가는 이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나 할까... 5월 초에 날짜를 맞추다가 가장 적당한 날이 6월 6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6월 6일은 적당한 날이 아니었다. 시계종주를 하기엔 6월은 더웠고 현충일이었다.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날인데, 그런 날을 이용하여 나의 목적을 채우고자 했다. 음... 막 신나고 즐거운 일은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했다. 나는 놀러 가는 게 아니다. 나는 훈련을 하러 가는 것이다. J님과 같이 100Km를 뛰기로 했고, 내가 50Km 이상을 뛰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10시간 넘게 달려보는 것도 훈련이 될 것이라고 했다. J님은 나에게
100Km 예방주사라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장거리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훈련이라는 말이었다.
5월 27일 토요일에 6월 6일 창원시계종주를 위한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내가 잘 모르는 M도 합류하기로 했다고 했다. 얼굴도 한번 본적 없는 분이지만 고된(그때까지 그냥 막연하게 힘들겠지 정도 생각했다.) 길을 함께 간다고 생각하니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6월 3일 같은 달리기 크루의 JJ님까지 같이 하게 되었다. JJ님이 함께 한다고 해서 정말 반가웠다. 첫 풀코스를 뛸 때 일면식도 없는 나를 J와 JJ님이 도와주어 첫 풀코스를 뛸 수 있었다. 그렇게 또 한 번 같이 뛸 수 있다는 것이 고맙고 기쁠 수밖에 없었다.
창원시계종주는 급수가 제일 문제라고 했다. 6월은 초여름, 더운 날씨이고 중간에 물이나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 어려움의 핵심이었다. 산 경로 중간에 물을 숨겨 놓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다가 J의 차를 중간지점인 상점령에 세워두고 차 안에 물과 간단한 요깃거리를 두어 보급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보급지까지 갈 수 있을 만큼의 물과 보금품은 각자가 챙겨야 했다. 물을 너무 많이 가지고 가도 짐이 되었다. 물을 너무 많이 가지고 가지 않으면 목이 말라서 죽을 것이다. 뭐든 적당한 선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나는 1.5L 정도를 러닝배낭에 챙겨 넣었다.
6월 6일이 점점 가까워지자 걱정스러운 마음과 기대되는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입을 옷과 준비물들을 챙겼다. 무릎과 발목 테이핑을 하려고 스포츠테이프도 잘라 놓았고, 에너지젤도 챙겨서 러닝 조끼에 넣어두었다. 에너지젤뿐만 아니라 여러 간식들도(많이 들고 갔는데 하나도 먹지 않았다.) 챙기고 물도 챙겼다. 며칠 전에 다가와서야 여러 시계종주후기들을 몇 개 읽었는데, 힘이 많이 들고 포기도 많이 한다고 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후기도 많았다. 그래도 GO! 였다. 내가 이게 얼마나 힘든지 알았다고 해서 지금 와서 무를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치지 말자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창원시계종주 원정대 팀과 아침에 만날 약속을 정하고 준비를 이어갔다. 6월 5일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모든 할 일을 시계종주를 마치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기보다는 약간의 불안감과 설렘 때문에 집중을 할 수가 없는 날이었다.
6월 6일 1시 30분을 전후로 알람을 5개 정도 맞췄다. 잠은 한 4~5시간 정도 잤다. 8시부터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1시 30분에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물을 마시고, 아침을 먹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움직이는 일이 자주 있는 일이지만, 한밤중에 움직이는 일은 적막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다. 모든 행동이 두 배 정도는 느려지는 것 같다. 그렇게 몸을 예열시키고 정신을 깨워야 뭐라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아침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챙겨놓은 장비들을 한 번 더 챙겨서 나가는 것까지 30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50분이나 걸렸다.
삼정령에서 J를 만나서 내차로 출발지인 창원국제사격장까지 이동했다. 6월의 새벽 4시 기온은 약간 쌀쌀했지만 바람막이를 가지고 가면 10분 만에 10시간 짐이 될 것 같아서 차에 나 두고 가기로 했다. 4시에 나, J님, JJ님, M님 이렇게 4명이 모였다. 출발 전 화장실에 갔다가 출발을 시작했다. 각자 해드렌턴을 쓰고(나는 해드렌턴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 산길을 비추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초반 약간의 경사에서 내가 뛰고 싶다고 하자 동행자들이 처음부터 힘을 빼면 안 된다고 말렸다. 첫 산인 정병산은 가파르기로 유명한 산이었다. 나도 정병산을 올라가 본 적이 있지만, 의욕만 앞섰다. 그 섣부른 의욕만 앞선 결과는 정확히 5분 후부터 드러났다. 가도 가도 오르막인 정병산을 올라가면서 숨은 가파지고 다리는 아파왔다. 원래 산을 올라가면 종아리가 가장 아팠는데, 엉덩이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종아리 근육이 아픈 것과는 다르게 엉덩이가 아픈 것은 기분이 좋다. 뭔가 운동이 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종아리는 굵어지면 무다리가 된다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 같지만 엉덩이에 근육이 붙으면 몸짱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숨은 점점 더 가쁘고, 심박수는 늘어나고, 금세 땀이 많이 나고, 쉬고 싶고 앉고 싶고, 눕고 싶어졌다. 출발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서 앞으로 올라갈 고도와 힘든 고생길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아직 새벽이라 깜깜해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게 다행이었다. 힘을 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서 올라가고 있는데, 40분 만에 날이 밝아지고 있었다. 점점 꼭대기와 가까워질수록 첫새벽의 창원시내가 눈에 들어왔다. 야경과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해가 뜨기도 전, 가로등이 꺼지기도 전, 그 푸르스름한 하늘아래 창원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산 위에 있는 기분은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하게 움직여 성공한 자에게만 보여주는 그런 풍경 같았다. 그것은 아마 뿌듯함이었을지 모른다. 한참 잠을 자고 있을 시간에 뭔가를 도전하고 있고, 움직이고 있는 나 자신에게 보내는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병산에서 보이는 창원시
정병산 꼭대기에 5시가 되기 전에 도착했다. 항상 올라가는 길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도 산꼭대기 바람은 상쾌하다. 그렇게 산 정상에 올라가자마자 망각세포들이 열심히 일하여 5분까지만 해도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다시는 안 해!' 라며 기어올라오던 몸뚱이는 시원한 풍경과 살에 닿는 바람으로 인해 '이 맛에 등산하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8개의 봉우리가 남아 있었다. 정상을 올랐다는 기쁨보다 잠깐이라도 사진 찍고 쉴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정병산 정상 이제 능선을 타면서 오르고 내리 고를 반복하면 된다. 정병산을 내려가자 뛸만한 완만한 능선이 나왔다. 스틱을 검처럼 잡고 그때부터 뛰기 시작했다. 바람을 가르며 뛰는 기분이 좋았다. 로드를 뛰는 것보다 속도가 나지는 않지만 트레일러닝만의 매력이 있다. 보폭이 일정하지 않으며, 오르막 내리막이 예측 불가능하게 번갈아가며 나타나고, 푹신한 흙길을 뛸 때 몸에 충격이 덜 온다는 점. 또 나의 발걸음을 계산하며 다음발 놓을 곳, 그다음 발 놓을 곳을 찰나에 판단하며 간다는 것, 그런 것 때문에 다른 잡념이나 생각들이 사라진다는 점등이 매력인 것 같다. 트레일러닝은 로드에서의 러닝보다 확실히 잡다한 생각이 많이 나지 않았다. 올라갈 때는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어, 눕고 싶어, 목말라, 힘들어....' 등 내 몸의 편안함을 갈구하는 욕구만 올라왔고, 평지나 내리막에서 달리기를 할 때는 바닥만 보고 내 발걸음에 집중해서 달렸다. 그렇게 한 아침 7시까지 달리다 보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고 하는 현타가 왔다. 아직 7시밖에 안 됐는데, 앞으로 남은 시간이 8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달릴 때 찍힌 것인지 달리는 척할 때 찍힌 건지 모른다. 내가 항상 꼴찌라 내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다.
달리기를 하면서 같이 뛴 동행자들은 산딸기를 발견하면 따주었고, 오디도 따먹었다. 나를 잠깐이라도 쉴 수 있게 해주는 산딸기가 너무 고마웠고, 누구라도 운동화 끈이 풀렸다고 먼저 가라고 하면 꼭 같이 가야 한다며 기다려 주기도 했다. 산 정상을 올라갈 때마다 정상에 올랐다는 감흥보다는 '사진 찍는다고 좀 쉬겠다'라는 생각이 더 먼저였다. J가 나에게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위한 예방접종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50Km 울트라를 뛰는 것보다 트레일러닝이 더 힘들었다. 로드를 장거리로 뛴다는 것은 아무리 많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달리기 때문에 거리가 빨리 줄어들었다. 하지만 트레일러닝은 오르막은 느리고, 내리막도 느렸다. 달릴 수 있는 평지는 많이 없었다. 로드 달리기보다 더 전신을 사용하고, 다리 근육에 자극도 많이 되었다. 물론 쉬는 시간도 많았지만 트레일러닝을 하는 동안 100Km를 뛰게 되면 이것보다 더 힘들면 어떡하지? 그런 공포도 느꼈다. 달리면서 M님이 말했다. "야구선수 이대호가 이런 말을 했어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도전하지 않는 것이 실패라고, 도전을 해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경험이라고요." 그래, 나는 지금 도전하고 있고, 지금 도전 중이니 나는 성공을 하거나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지금 이 힘든 도전이 값지게 느껴졌다.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나가는 것에만 집중하겠다고 생각했다.
달리기 하다가 산딸기
9시 50분쯤 되었을 때 중간지점인 상점령, 보급지에 다다랐다. 이제 반정도 왔지만 물도 먹고,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장거리를 뛰려면 이렇게 끊여서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다. 좀 쉬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30분 후의 일까지 걱정하지 않는 것, 지금 당장만 생각하는 것. 그래야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다. 삶에 대해서도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 듯이 달리기도 지금만 생각해야 행복하게 달릴 수 있다. J님이 보급으로 준비한 바나나, 토마토, 사파이어포도와 무화과깜파뉴(며칠이 지나 이 맛을 잊지 못하고 J님에게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다.), 초코파이, 이온음료, 콜라, 물, 양갱, 에너지젤 등 정말 나는 정신없이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허겁지겁' 먹었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다. 내가 뭘 먹고 있는지도 모르고 먹고 있을쯤에 현충일 묵념 사이렌이 울렸다. 묵념을 할까 계속 먹을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나의 생존본능이 애국심을 이겼다. 고민을 깊게 할 문제가 아니었다. 타는 갈증과 배고픔이 먼저였다. 목으로 넘어가는 모든 것이 달았다. 10시 정도밖에 안되었지만 이미 온몸이 땀이 절어 있었다. 나는 평소에 땀이 잘 안나는 편인데, 러닝배낭 아래쪽 옷이 축축해서 혹시 물이나 에너지젤이 새는 건 아닌지 계속 확인을 했다. 물이나 에너지 젤이 아니라 순수 땀이 흘러서 축축한 것이었다. 아마 내가 태어나서 제일 땀을 많이 흘린날이었을거다. 조금씩 배가 차자 먹는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나는 한 끼 정도의 열량을 섭취했던 것 같다.
꿀같았던 보급시간
이제 반을 더 달려가야 한다. 다들 초반보다 말이 없어졌다. 음식을 섭취하고 나니 옆구리는 아팠지만 그래도 힘은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리는 무거워지고 있었고, 중반을 넘어갈수록 만사가 귀찮아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삼점령에서 불모산까지 올라가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등산스틱을 잡고 거의 기어오르다 시피 올라갔다. 내 몸이 처질 수록 다른 사람들과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 반 이상 왔기 때문에 돌아갈 수도 없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을 했다. '아픈데 없고, 아직은 죽을 만큼 힘들지 않고, 이 시간은 결국 지날 갈 거 고 버티면 완주할 수 있어! 아직까진 버틸만하잖아. 아직까진 괜찮아. 힘이 있잖아.'라고 말했다. 이런 자기 체면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덜 힘들다. 힘든 것에 익숙해지고 적응하면 된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다.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하면 별거 아니다. 모든 것이 내 생각에 달려있었다. 달리기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다.
불모산을 오르고, 다시 내려갔다. 이렇게 올랐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내려가는 일이 싫어진다. 원래 등산할 때 내려가는 일이 싫었지만 발이 아프고 잘 미끄러지고 다리에 힘을 줘야 하니 힘들고 그래서 싫은 게 아니라 내려간 만큼 또 올라가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모든 산꼭대기가 다 붙어 있어서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면 시계종주를 할 때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도 힘들 때는 도움이 된다. JJ님이 삼각김밥을 좋아하시는데, 전주비빔삼각김밥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M님은 자신의 가게에 시그니처 메뉴인 얼음 넣은 함양사과주스가 너무 먹고 싶다고 했다. 보급지에서 그렇게 먹었는데도 먹고 싶은 게 많았다. 일단 날씨가 더웠고, 나도 시원하고 달달한 것이 먹고 싶었다. 살얼음이 있는 냉면도 들이키고 싶었다. J님은 물을 2리터 한꺼번에 벌컥벌컥 먹고 싶다고 했다. 사람의 몸은 이렇게 힘들 때 욕구가 단순해지나 보다. 먹고 마시는 것만 찾는 것을 보면.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서도 생리적 욕구가 가장 먼저이지 않나.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다른 욕구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 우리는 각자 먹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며 행복해했고, 엄청난 에너지를 태우고 있었다. 잠시나마 힘든 걸 잊을 수 있다. 물을 많이 마셨지만 땀이 많이 나서 화장실은 크게 안 가고 싶었지만 안민고개에 가면 화장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민고개만 기다려졌다. 또 우리 달리기 크루 K언니가 응원을 온다고 했다.
안민고개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포기하는 곳이라고 했다. 안민고개에 가면 차도 많이 다니고 택시를 부르면 온다. 하지만 안민고개에 가자 이미 70~80% 지점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K언니를 보자 그동안 언니를 봤던 것 중에 가장 반가웠다. K언니는 진해에 살았고, 가까우니 응원을 왔다 했지만 우리를 보러 일부러 집에서 이까지 와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시원한 물과 바나나, 에너지바를 또 마구마구 먹었다. K언니가 아니었으면 물을 아끼면서 먹었을 텐데, 시원한 물을 넘기니 다시 행복해졌다.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면서 충분히 쉬었다. 올라갈 시간이었다. 이제 아무 생각 없이 다리만 움직이겠다 생각했다. 얼마 남았는지 생각하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2~3시간만 지나가면 끝이 날 거다. 올라갈 때는 힘들고 평지를 뛸 때는 행복하고, 내려갈 때는 어렵겠지. 이건 당연한 거다. 그리고 당연히 힘들었다. 다리는 천근만근이었고, 이미 몸은 피곤한 상태였다. 우리 몸의 최대 에너지 비축량이 2000Kcal 정도 된다고 했는데 이미 몸에 축적된 에너지를 다 사용했다. 힘들고 어렵지만 가야 했다.
무슨 정신으로 장복산과 덕주봉을 올라갔는지 모른다. 모르는 이유는 기억이 잘 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면 기억이 잘 안나는 건가.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하며 풀코스 마라톤을 뛰면서도 그 고통을 기억하지 못하여 또 풀코스 마라톤을 참가하고, 또 고통을 느끼고, 또 망각하고 하는 것인가? 진짜 기억이 많이 나지 않는다. 정말 힘들다. 정도도 아니었던 것 같다. 안민고개에서 부터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그저 시간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느낌이었다. 덕주봉은 특히 정상석이 없어서 여기가 정상이라는 느낌도 없었다.
저기 멀리 덕주봉이 보이고, 덕주봉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장복산이다. 마지막 산인 장복산에 올랐다. 산정상에 그늘이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장복산도 마찬가지였다. 바위들을 올라가야 제일 높은 곳에 정상석이 있는 그런 산이다. 하루 중 제일 더울 때인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대견했다. 사실 오르막길은 기어 올라가다시피 올라갔고, 복장만 트레일러너처럼 갖춰 입어 무늬만 트레일러닝이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축하하기로 했다. 장복산 위에서 창원시와 진해시가 다 보였는데, 우리가 뛰어 왔던 그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기 저기 멀리 창원국제 사격장이 보였고 그 위에 처음 올랐던 정병산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산능선들이 쭉 이어져 있었다. 눈으로 봐도 내가 걸어온 길들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걸어서 이 먼 거리를 두 발로 갈 수 있는 거리인가? 정상은 더웠지만 내가 걸어온 길을 더 눈에 담아 가고 싶어서 오랫동안 산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멋지다. 대단하다" 이런 인정의 말을 듣는 것도 좋지만 나 자신에게 스스로 박수가 터져 나오면 진짜다.
먹고, 쉬고, 달렸던 시간들 까지 거의 합쳐서 1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근육통이 있었고,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아무런 잡념과 걱정이 없는 상태였다. 걱정이 있어도 걱정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나는 힘들었던 만큼 성장했다. 몸과 마음이 더 단단해지고, 버티고 이길 수 있는 체력과 힘도 더 생겼다. 100Km를 향한 도전을 위한 도전이었지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6월의 초록은 5월의 초록보다 더 진하다. 완전히 무르익은 여름이 될 때까지 다시 차곡차곡 준비하여 나는 도전을 한다. 계속되는 도전이라도 계속해서 달라진다. 나는 그래서 달리기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