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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Oct 15. 2023

돔배기

나 너 좋아하냐?

  나는 반찬투정을 할 수 없는 가정 분위기인 엄부엄모(엄한 어머니와 엄한 아버지)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밥상에서 "이것도 먹어봐"라고 했는데, 감히 '싫어요'라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였고, 다소 맛이 없을지라도 맛이 어떠냐는 질문에는 "먹을만하다."


힘들게 밥상을 차린 엄마 앞에서는 뭐든 맛있게 먹어야 했다. 다행히 싫어하는 음식도 거의 없고, 못 먹는 음식도 없었다. 그 덕에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고, 나는 지금도 새로운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여행을 가서도 만약 입맛에 잘 맞지 않는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것이면 일단 입에 넣고 본다. 그래도 어릴 때는 내가 내색하지 못한 싫어하는 음식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경상북도 지방에서 제사상에 올리는 돔배기이다.


 돔배기는 경북지방에서는 제사상에 꼭 올려야 하는 음식 중 하나다. 하지만 경남에만 와도 돔배기라는 것을 잘 모른다. 돔배기는 상어고기를 직사각형으로 잘라서 염장하여 숙성시킨 것을 말한다. 염장하여 잘 상하지 않기 때문에 바닷가 쪽보다는 내륙지방에서 많이 먹는 것 같다. 나는 처음에 돔배기가 상어고기인 줄 알고, 고기를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모른다. 

상어고기 돔배기


  내가 어릴 때 먹던 돔배기는 정말 짰다. 그리고 숙성을 시켜서인지 특유의 암모니아 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조금 굵은 손가락만 한 돔배기 한 조각이면 밥을 한 그릇 다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어릴 때는 그 반찬을 먹으면 다른 반찬을 먹을 수가 없었고, 특유의 암모니아 향과 짠맛이 싫었지만 밥상에서 반찬투정을 할 수 없었으니 상어고기를 먹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먹었는데, 어째서인지 제사도 없는 우리 집에 이 돔배기는 일 년에 몇 번씩 정기적으로 양성되고 있었고, 한번 밥상에 올라오면 며칠 동안 참고 먹어야 하는 반찬이었다.  아마 내 생각에는 지금도 소고기 보다 비싼 상어고기를 친척접 제사에 참석할 때마다 큰집에서 대접하는 의미로 싸주시는 바람에 우리 집에 계속 나타났던 것 같다. 밥상 위에 올라온 돔배기 고기를 볼 때면 빨리 이 반찬이 소진되길 바라면서 먹은 나한테 돔배기는 그런 반찬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기에, 돔배기를 먹는 일은 밥상 앞에서 멀리 내려다보고 크게 생각해야 하는 일이었고, 오늘부터 하루에 두 동강씩 먹으면 3~4일 안에 끝날 수 있겠다는 계산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가 어릴 때 그렇게 싫어하던 돔배기가 먹고 싶었던 시기가 있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살다가 경남으로 발령을 받아 경남에 내려와서 살면서 그 맛을 잊고 지냈는데, 임신하고 6~7개월쯤 되었을 때, 이상하게도 갑자기 그 쿰쿰한 짠 덩어리가 먹고 싶어 진 것이다.  경남에서는 시장에 가도 구할 수가 없고 파는 식당도 없어서 친정 엄마에게 돔배기가 먹고 싶다고 말했더니 엄마는 상위포식자인 상어고기는 중금속이 많아서 임산부에게 안 좋을 것 같다며 나를 말렸다. 아무튼 나는 내가 싫어했던 그 짜고 쿰쿰한 덩어리가 너무 먹고 싶어졌다.


  내가 출산을 하고 나중에 친정에서 가서 돔배기를 먹을 기회가 있어서 먹었는데, 그 짠맛이 아니었다. 사실 돔배기는 내가 크는 동안에도 짠맛을 점점 줄여가고 있었다. 돔배기는 찌거나 굽는 방식으로 조리하는데 제사상에 올릴 때는 산적으로 꼬지에 꽂아서 조리한다. 나는 최근에 돔배기를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는 구워서 먹었던 것 같으니 기름을 뿌리고 구웠다. 기름기가 하나도 없는 생선이었다. 나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염장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소금을 전혀 뿌리지 않고 한번 씻은 후 바로 구웠는데, 굽고 나서 한입 먹고는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너무 싱거웠기 때문이다. 요즘은 콜드체인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그런지 옛날처럼 염장을 하지 않고 냉동을 하나보다. 삭힌 냄새도 많이 나지 않는다. 눈을 감고 먹는다면 닭가슴살을 먹는 것 같기도 하다. 나무위키에서는 잘 부서지는 스팸을 먹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 식감은 아닌 것 같다. 돔배기에는 상어고기 특유의 결이 살아 있다. 그 결과 결 사이에는 아주 얇은 막 같은 것도 존재한다. 젓가락으로도 쉽게 부서지긴 하지만 다른 생선살보다는 단단하다.


  이제는 그 짜고 쿰쿰한 암모니아 냄새가 올라오는 그 돔배기는 먹을 수 없는 건가. 어릴 때로 돌아간다 해도 그 음식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왜 그 음식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 돔배기를 어떻게 하면 먹지 않을 수 있을까 눈치를 보던 그 시절에 그 가벼운 걱정거리가 그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싫어했지만 점점 중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이상한 맛이고 싫어하는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음식을 먹기가 힘들다고 생각하니 또 그리워진다.

  아마 우리 아이들은 상어라고 하면 아기 상어 노래를 떠올리며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상어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의 상어라고 하면 돔배기를 떠올린다. 돔배기는 그때는 별로 안 좋아했지만 지금은 아련하게 생각나는 남사친 같은 존재다. 

'나 너(돔배기) 좋아하냐?'


 어쩌면 사실은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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