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내가 대학교 3학년 2학기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학교를 갔는데 갑자기 온몸에 힘이 없고 춥고 숨이 찼다. 처음엔 춥고, 삭신이 쑤셔서 감기 몸살인 줄 알고 집에 가서 쉬어야 되겠다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대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서 15분이면 가는 거리에 있었는데, 그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그때 길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쌍둥이 동생을 만났다. 걸어오는 형태가 심상치 않았다. 나랑 같은 증상을 앓고 핼쑥한 얼굴로 기어가다시피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장염이었다. 우리의 추론으로는 전날 친척집 제사에서 얻어온 쥐포튀김(이것도 경상도에서 먹는 음식이다)이 범인이었다. 그동안 뭘 먹어도 장염은 안 걸리는 아주 튼튼한 장기를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처음 경험하는 장염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당황스러웠던 것은 먹을 수 있는 것이 흰 죽이랑 이온음료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몸에 힘이 없는데 흰 죽만 먹자니 더 힘이 없었다. 3일은 흰 죽만 먹고 있던 시점이었다.
엄마가 우리가 거의 다 나았다고 판단하셨는지, 이제 더 이상 흰 죽은 못 먹겠다고 아침에 드러누워서 한 말 때문인지, 저녁에 묵은 김치를 쫑쫑썰어 넣고 자극적이지 않게 김치밥국을 끓여주셨다. 나는 사흘동안 흰 죽만 먹었으므로 며칠 만에 간이 된 죽을 먹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몸에서 소금기가 돌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이 된 음식을 먹는 기분이었다. 세계관이 바뀌는 맛이라고나 할까. 이온음료로 전해질을 채우고 있었지만 짠맛과는 다르다. 나는 소금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벗어나 신세계를 영접한 것이다.
엄마가 끓여준 대신에 이제는 내가 끓여 먹는 김치밥국
우리가 살던 대구 쪽에서는 김치밥국이라고 불렀지만 경남은 갱시기라고 부른다고 했다. 경남사람들에게 이런 걸 먹어봤냐고 물어보니 다들 알고 있었다. 김치밥국은 옛날 겨울에 쌀이 많이 없을 때 적은 쌀로 양을 불려서 먹기 위해 끓여 먹었던 것이라고 들었다. 멸치육수에 묵은 김치, 신김치를 쫑쫑 썰어 넣고 거기에 콩나물, 파, 식은 밥을 넣어 끓이는 게 기본 레시피이다. 김치 때문에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맛이 있다. 여기에 떡국떡이나 참치 같은 다른 것들을 추가로 넣거나 김가루를 뿌리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장염 이후 나의 김치 밥국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달라졌다. 겨울에 가끔 먹기도 했지만, 그렇게 감흥이 없었는데 나에게는 아플 때마다 혹은 추운 겨울 밖에서 오들오들 떨어 삭신이 쑤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생각나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그저 그렇다가 내가 아플 때 나에게 위로와 행복을 주는 녀석으로 신분상승을 했다.
나는 죽은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죽보다는 딱딱하고 바삭바삭한 식감을 가진 오래 씹는 음식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김치밥국은 다르다. 김치밥국은 김치와 콩나물을 가득 넣어 끓인다. 씹어서 먹을 수 있는 건더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밥에서 나어는 전분기로 국보다는 죽 같고 죽보다는 국 같다.
김치밥국을 수저로 떠서 입에 넣는다 긴 콩나물 때문에 숟가락을 써서 뜨는 게 만만치 않다. 밥보다 김치랑 콩나물이 더 많다. 적절히 잘 골라가면서 밥과 김치와 콩나물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순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칼칼하고 시원하다. 한겨울에도 몇 수저 퍼 먹다 보면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꽁꽁 언 몸을 녹이는 음식은 뜨거운 몸을 식히는 음식보다 더 위로가 많이 된다. 온몸이 따뜻해지며 노곤하게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밥 먹고 바로 따뜻한 이불속에 드러누워 오징어처럼 구워지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