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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 Aug 07. 2023

배추전

경상도에서만 먹는 음식: 겨울 오후에 먹는 간식

  나는 음식 나오는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  김태리가 주연을 맡은 "리틀 포레스트"다. 다섯 번 이상 본 것 같다. 이 영화는 봐도 봐도 이상하게 힐링이 된다. 영화에서 헤원(김태리)이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너무 맛있게 잘 먹는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일은 엄청난 힐링이 된다. '리틀 포레스트'에 나온 음식들이 다 채식음식이라고 하던데, 모든 음식들이 다 먹고 싶은 음식들이다.  도시의 삭막함에 지친 김태리가 배가 고파서 내려왔다는 시골집에  도착하여 제일 처음 먹는 음식이  눈밭에서 언 손을 녹여가며 겨우 파낸 추와 파를 넣고 끓인  배춧국이다. 간 남은 쌀로 밥을 짓고, 국과 밥을 싹싹 비워내는데, 겨울에 그 영화를 본다면 무조건 그날 저녁은 배춧국이다. 단하게 끓인 국이지만, 한겨울 추위를 녹일 만큼 따뜻하고 달큰한 배춧국이 얼마나 맛있어 보였는지 모른다. 그 다음날 김태리는 눈을 치우는 날 해 먹기 좋은 수제비와 배추전을 쳐 먹는다.


 그래 겨울에는 배추전이지.

 

   대구 경북지방에서는 겨울이 되면 배추전을 해 먹는다. 여름에도 먹을 수 있지만 주로 겨울 음식이다. 겨울 배추가 더 크고 달아서 그런 것일까. 여름에는 더워서인지 배춧잎을 한 잎씩 부쳐서 먹는 배추전은 잘 안 먹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부터 먹던 배추전은 겨울방학이 되어 해가 짧아진 덕에 늦은 오후가 되면 어둑어둑해지려고 하고, 날씨도 추워질 때쯤 엄마가 간식으로 부쳐 주시던 배추전이다. 왜 전은 반찬으로 먹는 것보다 간식으로 먹거나 술안주로 먹을 때가 더 맛있을까.  나는 모든 전(경상도 사투리로 찌짐이라고 한다.)을 다 좋아한다.  달큰한 배추와 밀가루와 기름의 조합은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가족들과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배추전을 찢어 입에 넣는 것은 행복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세상에 행복은 크게 멀리 있지 않는 것 같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맛있다고 느낄 수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경남에 와서 충격을 받은 사실이 있다. 경남에서는 배추전을 먹지 않는다는 것. 경남도 밀양, 거창 등과 같이 대구 경북과 인근해 있는 경남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제일 처음 발령받은 거제, 통영, 남해안 쪽 도시들에서는 배추전을 모르는 눈치였다. 대구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남편은 진주 사람인데, 신혼 때 내가 배추전을 처음 해준 날, 배추전을 처음 먹어 본다고 했다. 이럴 때 보면 경남과 경북은 식문화가 같은 경상도라고 묶기는 어려울 때가 있다. 아무튼 식당에서도 잘 팔지 않는 배추전을 다른 지역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 음식은 아마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파전이나 김치전처럼 해물이나 고기가 올라가지도 않고, 여러 가지를 섞지도 않는다. 필요한 재료는 딱 4가지. 배추, 물, 밀가루, 기름이 전부이다. 하지만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 우리는 이맛을 알고 있다. 기름과 밀가루의 맛, 거기에 배추의 달달함과 아삭함을 더한 맛이다. 레시피도 계란프라이만큼이나 간단하다. 밀가루와 물을 섞어 반죽을 만들고 배춧잎을 한 장씩 떼어내어 반죽물에 담가 기름에 부쳐내면 끝이다. 나는 배추 줄기 쪽을 손으로 뚝뚝 부러 뜨려 굴국진 배추줄기를 평평하게 펴준다. 인터넷 레시피를 보니 칼로 두들기거나 칼집을 내거나, 뜨거운 물에 데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성질이 급해서 그냥 손으로 마구 분지른다. 밀가루와 물의 농도에 따라 약간의 바삭함과 쫀득함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약간 묽게 하여 바삭한 식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가위로 깔끔하게 잘라서 먹는 사람도 봤지만, 배추 전은 손으로 찢어서 돌돌 말아먹어야 배추줄기부터 이파리까지 한꺼번에 입에 넣을 수 있다.


이 배추전의 장점이라면 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배추만 있으면 해 먹을 수 있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배추를 씻는 정도의 기본 손질만 하면 된다. 또, 다른 전에 비해 소화가 잘되는 편이다.  많이 먹을 수 있다. 혼자서 먹으면 3장이 한계치지만 가족들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찢어진 전을 한줄기 씩 입에 넣으면 끝도 없이 들어간다. 래 같이 먹으면 소도 한마리 먹을 수 있다.


  양념장은 보통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 세 가지를 합한 양념장이 기본이다. 너무 간단해 보이고 단순해 보이지만 이 단순한 맛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배추전을 쭉쭉 짖고 양념장에 찍어서 한입 가득 넣어 씹는다. 배추줄기의 달큰함과 아삭함과 함께 얇은 배춧잎에 가득 뭍은 밀가루와 기름의 고소함까지 한입에 느껴야 한다. 작게 잘라서 넣어도 별맛이 없다. 내 경험상 한입 가득 넣고 먹어야 맛있다. 술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한겨울, 차가운 막걸리가 당기는 그런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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