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작할 무렵, 아침저녁으로 좀 쌀쌀해졌다 싶을 때, 땅콩을 수확한다. 땅콩 줄기를 힘주어 위로 당기면 흙과 뿌리와 함께 땅콩이 줄줄 달려 올라온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땅콩을 한 냄비를 삶아서 주셨다. 꼭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학교 다녀온 후 간식으로 먹는 삶은 땅콩은 나에게 너무 친숙한 음식이다. 밤과 함께 먹는 땅콩은 찐 밤과 함께 가을 운동회나 가을 소풍에 항상 함께하는 심심풀이 땅콩이었다.
가을에는 땅콩과 삶은 밤을 간식으로 먹는다. 삶은 밤은 반을 갈라 티스푼으로 파먹는다. 그 옆에 항상 있는 삶은 땅콩은 숟가락을 퍼먹는 밤이 퍽퍽하게 느껴질 때, 하나씩 까서 입에 넣는다. 근데 이렇게 익숙한 삶은 땅콩을 경상도에서만 먹는다고? 그냥 삶아 먹는 건 간단한데 이걸 경상도에서만 먹는다고? 그럼 다른 지역에서는 땅콩을 볶아서만 먹는다고? 처음 삶은 땅콩을 경상도에서만 먹는다는 말을 들었는 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가을이 되면 밤을 쩌먹는것처럼 땅콩을 삶아 먹는 일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땅콩을 좋아한다. 볶은 땅콩, 삶은 땅콩, 땅콩밥, 땅콩조림, 땅콩강정 등 다양한 방법으로 먹을 수 있지만 특히 땅콩버터를 좋아한다. 그 고소하고 달달한 맛은 모든 음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요즘은 아침으로 유행하고 있는 사과와 땅콩버터를 함께 먹고 있다. 예전에는 땅콩버터가 엄청난 칼로리와 다이어트를 할 때 멀리해야 되는 음식으로 알려졌지만 요즘은 풍부한 불포화지방산과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으로 포만감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좋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땅콩버터를 마음껏 먹는다. 원래 모든 땅콩을 좋아하지만 햇땅콩은 꼭 한번 삶아 먹어주어야 한다.
삶은 땅콩은 볶은 땅콩과 맛이 전혀 다르다. 아마 이것이 같은 음식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맛이 전혀 다르다. 삶은 땅콩은 견과류의 같은 느낌이라면 삶은 땅콩은 곡기와 같은 느낌이다. 이것을 밥으로 먹지는 않지만 약간 삶은 옥수수와 더 가까운 느낌이 있다. 볶은 땅콩은 딱딱하고 고소한 느낌이 있는 반면에, 삶은 땅콩은 더 부드럽고 단맛이 더 느껴진다.
땅콩을 삶는 방법은 간단하다. 흙에서 캔 땅콩은 약간 말리면 오래 저장하고 먹을 수 있다. 땅콩 통째로 삶는데, 흙을 깨끗하게 씻어낸다. 그리고 땅콩이 잠길 정도로 물을 넣고 20분 정도 삶으면 된다. 다른 사람들은 소금도 넣던데, 나는 그냥 삶는다. 그리고 다 익은 땅콩을 건져서 먹으면 된다. 뭔가 더 잘 삶는 법이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그냥 삶는다. 그냥 삶아도 맛있기 때문이다.
왼:삶은 땅콩과 생땅콩의 차이 중: 땅콩 속껍질을 벗기면 이렇게 뽀얀 땅콩이 나온다. 오:나란히 들어 있는 땅콩들
땅콩 껍질이 몸에 좋다고 했다 엄마는 껍질째 먹으라고 했지만 그 부드러운 속살과 달큼한 맛 때문에 껍질을 까고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물론 하나하나의 껍질을 까는 것은 너무 귀찮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냥 먹는 편이다. 내가 힘겹게 땅콩을 하나하나 까먹는 것을 보고 아들이 삶은 땅콩을 수북이 까주었다. 땅콩에서 물이 많이 나온다고 하며 투덜거리는데, 그 맛에 먹는 것이다. 물을 가득 머금은 달큼 고소한 땅콩은 씹을수록 맛있어 많이 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