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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Feb 12. 2024

2024년 2월 10일 식도락 음식 일기

엄마의 설 나기와 딸의 설

"엄마, 이번 설에는 뭐 해 먹을 거야?"

우리 집 묵도리의 잔뜩 기대에 찬 질문이다

"글쎄, 간단하게 몇 가지 해서 먹지 뭐"


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는 우리 집은

그냥 식구들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 위주로

형식을 갖추지 않고 해서 먹는다.


시장을 보면서

모둠산적, 탕국, 갈비찜, 닭갈비, 잡채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재료들을 담아 왔다.


나물 종류는

따로 준비를 하지 않았다.

야채 가격이 너무 올라서

꼭 설 대목에 먹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한편으로는

지난가을에 말려 둔 여러 종류의 묵나물과

여러 종류의 물김치를 먹기로 했다.


 <아들의 손에서 탄생한 모둠 산적 만들기>

먹고는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평소에는 잘해 먹지 못하는 모둠 산적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하나씩 빼서 먹는

내 손 안의 뷔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열을 가하면 줄어드는 소고기는 조금 넉넉하게 8cm로

썰어서 미리 양념으로 재워 두고,

식감과 맛까지 훌륭한 느타리버섯 

깨끗하게 씻어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참기름,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해서 준비해 둔다.

당근, 대파, 게맛살, 단무지는 6cm 정도

길이로 준비한다.


며칠 전 엄지손가락이 칼에 베여서

붕대를 감고 있어 움직임이 둔하고 불편한 나는

아들에게 준비한 재료들을 꼬지에 끼우고

전을 부치는 것까지 미리 부탁을 했더니

돌아오는 답,

"내가 해 주면 뭐 해 줄 건데?"라며 장난을 친다.


내가 아들에게 일을 시키는 이유는 이렇다.

남편과 딸에게 시키면 되지만

두 사람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편을 시키려면 설명하는 시간에 내가 하는 게 더 빠르고, 또다시 나의 손을 거쳐야 되고,

딸은 음식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기미상궁 역할은 기가 막히게 해 낸다.


이렇다 보니

내가 집을 비울 때는

부엌에서 해야 할 일들을

아들에게 일러두고 가는 게 습관이 되었고

두 사람은 먹기만 하면 되는,

아들은 엄마의 역할이고 남편과 딸은

그냥 평소대로 남편과 딸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집에 있거나 없거나

밥 먹는 것에 불편함이 없는 두 사람이다.

부럽다~


재료의 순서를

당근 - 대파 - 소고기 - 느타리 - 단무지 - 게맛살로 정한 뒤

커다란 아들의 손에서 산적꼬지들이 완성되어 갔다.


재료들을 꼬지에 끼우는 작업이 마무리되면

이제는

부침가루에 묻혀서 정리해 두고

계란물에 한 번 적셔

중불 - 약불로 굽는 과정이 남는다.


맨손으로 계란물에 꼬지를 적셔

프라이팬에 올리다가

손가락까지 살짝 데었는데

이것을 본 아들이

집게를 가져와서 본인이 직접 한다.

집게로 끼워 놓은 꼬지를 집어

계란물에 적셔서 팬에 올린다.

놀라운 것은

간간이 핸드폰을 보는 여유까지 부리면서

익어가고 있는 순서에 맞게

정확하게 알고 뒤집는 것이다.


익었는지를 여기저기 뒤집어보면서 확인하는

나와는 다르다.


'어, 저 여유로움은 뭐지?'

경력 30년의 내공인 내가 갖는 궁금증이다.


결국

맛있는 모둠 산적도

나의 손에서 시작해서

아들의 손에서 마무리되었다는 것이다.


                       <명절의 대표 음식 - 갈비찜>



***설 한 달 전부터 시작되는 엄마의 명절 나기

 부엌문은 닫아 놓아도 여기저기에서 황소바람이 들어오고,

틀면 물이 나오는 수도 시설도  없는,

거기다 불까지 지피면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불편함에도 엄마는 일찌감치 설 준비를 하셨다.


 번째 하는 일은

식혜와 강정을 만들 때 필수품인 엿기름용 보리싹 틔우기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조청을 고우고, 고운 조청으로 쌀강정과 들깨 강정을 만들어서 큰 비닐에 담아 보관하셨다.

강정은 처음에는 쌀로만 했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몸에 좋은 콩도 튀겨 넣고

튀긴 찹쌀도 적당히 섞어서 희고, 노랗고, 검은 색깔을 맞추어서 만드셨다.


들깨강정은 어린 나이에도 참 맛있었고,

강정 사이에 박혀 있던 땅콩은 고소했다.


 키보다 더 큰 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쌀강정은

긴 겨울 우리들의 간식이었고 설이 되기도 전에 절반 이상은 

벌써 우리들의 입으로 사라졌다.


설 대목이 되면 제일 붐비는 곳이 떡방앗간이다.

강정과 달리 떡국 용 가래떡은 방앗간에서 준비해야 하기에 

모든 음식에 정성을 다 쏟으시는 엄마는 일찌감치

쌀을 불려서 방앗간으로 가셨다.


방앗간이 바쁘면

가래떡을 뽑을 때 기계를 한 번 더 적게 돌리게 되고

그러면 쫄깃한 식감이 덜 하다는 엄마의 음식에 대한

열정과 사랑의 발로에서다.


뽑아 온 가래떡은

집 마루에 올려놓고 말렸고

고양이와 쥐가 먹지 못하도록 우리가 보초병이 되기도 했다.

꾸덕하게 마르면 밤새 아버지께서 떡을 써셨다.


그때는 지금처럼 방앗간에서 떡국 떡을 썰어주지 않은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가래떡을 썰기 위해 칼날이 새파랗도록 갈아 사용하셨는데

우리는 아버지가 다칠까 봐 가슴조리며 바라보다 잠이 들곤 했다.


아버지는 가래떡을 적당한 두께와 예쁜 각도로

써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렇게 준비한 것으로

어머니는 설날이 되면 혼자 사시는 동네 어르신들, 먼 친척벌 되는 어른들께 

떡국을 끓여 집집마다 돌리셨는데,

엄마를 따라 같이 가면

떡국을 받아 든 어른들께서는 정성과 맛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셨고, 같이 간 나에게는 세뱃돈을 주셨다.


다음으로는

콩을 불려서 두부를 만드셨고

구경하는 우리들에게는

뜨끈한 순두부에

간장, 통깨, 고춧가루, 파, 참기름으로 만든 양념장을

올려 주셨다.


엄마의 음식은

정말, 너무나 맛있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설음식으로는

단연 '식혜'다.


부엌의 가마솥에서 하얀 밥알이 춤을 추며

위아래로 솟아오르기를 반복할 때쯤이면

엄마는 아궁이에서 타고 있는 장작불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내어 물을 뿌리셨다.

식혜 만들기가 끝났다는 것이다.


식혜는 커다란 항아리로 옮겨지고

옮겨진 식혜는 겨울 추위에 살얼음으로 변한다.

이때부터가 내가 식혜를 즐기는 시점이 된다.


큰 그릇에 살얼음이 동동 뜬 식혜를 가득 담아와서

따뜻한 방에 엎드려 이불을 덮고

식혜를 먹기 시작한다.


식도를 타고 몸속으로 들어오는 식혜의 차가움으로 닭살이 돋고  방바닥은 뜨끈하다.

먹은 후에는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잠을 자는 것이

식혜를 즐기는 나의 방식이다.


이것 외에도 생선도 미리 사서 빨랫줄에서

꾸덕하게 말려 보관해 두셨는데,

특히  전갱이는 나를 위해 꼭 사셨다.


2일, 7일 시골장이 서는 날에는 우리들에게 입힐 설빔도 준비해 두셨는데

미리 사 둔 새 옷을 장롱 서랍장에 넣어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입어 보았고

빨리 설날이 오기를 열 손가락을 이용해 세어보기도 했다.




그 시절의 설은 한 달 전부터 시작되었고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졌다.


굽어져 있는 동네 골목마다 가득 채운 맛있는 음식 냄새에 우리들은 신이 났고 세상 행복했었다.


몇십 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왔지만,

집안엔 고소한 기름냄새를 품은 공기가 가득 차고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는 엄마의 목소리, 방에서 떠드는 우리들의 목소리가

어제 일 같이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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