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향 그녀

by 최점순

허브향 그녀

사월 끝자락, 햇살 고운 아침이다. 목련 꽃망울 부풀 때만 해도 설렘이었다. 곧이어 여행 갈 거라는 기대를 코로나가 밟아버렸다. 대신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 줄 섰다. 방역당국과, 의료진, 봉사자들도 바이러스와 사투 중이었다. 마스크를 써도 외출은 쉽지 않았다. 전국 농가에서는 자식같이 키운 꽃들이 트랙터에 깔려 진홍색 눈물을 흘렸다. 졸업과, 입학, 학교 수업도 온라인으로 바꿨다. 서로의 가슴에 한 번 달아주지 못하고, 졸업 입학이 지나갔다.

팬데믹이다. 언제 이 유행병이 마침표를 찍을지 아무도 모른다. 이웃들이 전염병에 걸려 죽어 가는데도 인간은 간사하게도 자신의 안이 만 생각했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로 나가지 못하고 삼시 밥을 해 먹으니 울혈이 올랐다. 황혼 이혼이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 전철을 탔다. 5호선 종로3가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했다. 흑백 마스크를 한 전철 안 풍경이 공포영화 속 인물들 같았다. 저만치서 20대 여자가 채치기를 했다. 모두의 시선이 벌래보듯이 경멸의 눈동자들이 그녀에게 꽂혔다. 가게마다 태산같이 쌓인 꽃무더기로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시장 모퉁이를 돌았다. 어느 집을 선택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문득 몇 집이라도 마수걸이를 해주고 싶었다. 첫 집에서 꽃값을 현금으로 지불하고, 대박 치세요라고 했다. 주인은 돈에, 침을 퇴 퇴 뱉어 머리에 쓱, 발랐다. 다섯 집을 그렇게 꽃값을 지불하고 축복했다. 주인들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신문지에 화분 열 개를 둘둘 말아 비닐봉지 다섯 개로 나누었다. 남편은 무거운 큰 봉지를 세 개 들었고, 나는 가벼운 봉지 두 개 들었다. 종로 3가에서 5호선을 환승하고 전철 안에 발을 들여놓는데, 남편이 들고 있던 화분 두 개가 바닥으로 쏟아져 누워버렸다. 승객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던 경멸의 눈알이 내게로 쏠렸다. 종로에서 광화문역, 서대문역 들어와서 충정 역에서 충심으로 고개를 숙여 에오 개역을 숨 가쁘게 올랐다. 공덕역에서 집으로 오는 동안 내내 마음을 다스려도 그런 원수가 없었다. 남편이 대문을 열고 버럭, 화를 냈다. 당신, 시장에서 꽃 팔아 주는 것을 봉사한답시고, 무슨 망신이야.

“화분 많이 살 때 알아봤어, 당신이, 데레사 수녀야,”

입안이 간질거리며 올라오는 욕을 참느라 입술을 비틀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문지로 알몸을 가리고 온 로즈메리는 거실 바닥에 누웠다. 허브향기를 풍기며 옷을 벗어 부끄럽다고 고개를 옆으로 숙이고 몸을 비틀고 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베란다 빈 화분에 허브를 꾹꾹 눌러 심었다. 이상하게도 입안에 맴돌던 말은 허브향이 스며들었다. 허브화분 3개, 몬스테라 2개, 서양란 3개 다육이 3개 향이 가득 찼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봉지에 싼 꽃들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손님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눈길을 끌었다. 남편은 무뚝뚝하게 말이 없다.

제주에서는 상춘객들의 발길을 막았다. 관광객들이 못 오도록 유체 꽃을 트랙터로 엎었다. 남쪽이 신호탄 되어,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꽃밭을 지나갔다. 농부들은 겨우내 밤잠 설치며 물주고 온도 맞춰 키운 꽃을 엎어야 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농민들이 튤립 대궁을 꺾는 광경은 내 손바닥에 고통처럼 전해졌다.

지구촌 전체가 바이러스에 걸렸다. 세계적인 자동차 공장도 멈춰버렸다. 그러나 그 덕분인지 미세먼지도 줄었다. 하늘의 은하수가 망원경 없이도 보였다. 바닷가에는 인간에게 빼앗겼던 모래사장에 거북이가 부화를 했다. 바이러스가 세상을 정화시켰다는 것일까. 전염병은 다시 인종차별을 야기했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그동안 물질주의는 대량생산을 부추기고, 인간의 욕망은 끝없었다. 차들을 세워놓아 석유 값도 조절되었다. 세계로 통하는 길을 막아버리니 여권도 무의미해졌다. 공항으로 오가던 셔틀버스도 멈췄다. 대신 사람들은 집 밥을 먹고 가족들과 지내게 되었다.

아침에 약국 문 앞에 줄을 섰다. 혹시나 내 앞에서 동이 날까 조마조마했다. 누가 새치기할까 싶어서인지 의심하는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 그런데 내 앞에서 동이 났다. 여러 약국을 돌아다녔지만 이번 주는 마스크를 살 수 없다고 했다. 애초에 중국 우환에서 건너 온 전염병이었다. 하지만 마치 전염병이 대구가 발생지인 것처럼 우리나라를 미개한 국가로 낙인찍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대한민국 사람들을 혐오하며 국경을 막았다. 그러나 유럽 열강들이 휴지나 생필품 사재기, 배달된 남의 택배를 훔쳐 가는 미개의 미개인 후진국의 민낯을 보았다. 선진국은 의학박사들과 현대식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전염병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동물원을 폐쇄하니 관람 수입이 끊겨 동물들은 굶어 죽었다. 코로나는 더 이상 인간이 주인으로 내 버려두지 않았다. 이번에 그것을 알려주는 경고장을 날린 샘이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웃집 방문하듯이 세계를 사람들은 여행을 다녔다. 지구촌은 바이러스 확진자의 동선이 되었다. 세계 모든 사람들이 전염병을 옮길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자영업자 소상인들, 직장인들이 실직으로 시름에 빠졌다. 서울 황학동에는 식당 철거 용품이 태산같이 쌓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부의 지침을 따르며 마스크를 쓰고 긴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세계인들이 우리나라를 후진국 이이라 했지만, 코로나 19를 겪는 동안 누구 하나 사재기 남의 택배 훔쳐 가는 일은 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 모두는 마스크 한 장에도 신뢰를 잃어버렸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신의 세상이 된 것이다. 무슨 처방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세계 보건기구 (WHO)에서 바이러스 신약을 개발한다는데, 인간의 잃어버린 믿음을 무엇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 하루빨리 그 약도 개발하면 좋겠다. 이 전염병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도 않고 오직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하찮은 것이 사람들을 존엄성을 한 번에 훼손 시켰다. 이 병에 걸리면 격리되었다가 사망하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고별인사도 나눌 수도 없게 만들었다. 외국에는 섬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매장되거나 감당하지 못한 시체들이 길거리에 나뒹굴었다.

코로나19 발생 (2020.4. 27) 백일 만에, (전 세계 확 진자)가, 3,060,631명, 사망자가 2211, 253명 앞으로 이 숫자를 갱신될 것이다. 바이러스 치료 약은 정영 없단 말일까? 안타깝게도 아직은 퇴치할 약은 개발하지 못했다. 빛의 속도로 약을 개발한다고 해도 최소한 일 년 이 년이 지나야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사람의 죽음이 그저 숫자로만 들린다. 너무 큰 숫자는 의미가 아니라 숫자로만 다가왔다. 우리나라 병원마다 코로나19로 격리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세계의 문턱을 넘은 바이러스는 선진국 후진국을 따지지 않았다. 전 세계에 사람들은 마스를 사기 위해 경쟁적이 되었다. 사람을 거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창밖에 풍경은 녹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젊은 시절 울퉁불퉁했던 모난 구석이 다 깎였다. 세월을 견디고 보니 물처럼 술술 섞여드는 게 인생이라면 그러한 것들도 감사할 따름이다. 자식들은 독립하고 떠난 뒤통수를 바라보며 짝사랑 한지도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 이 집에서 외손자 세 명을 키우며 재롱을 보며 살았다. 사람 꽃에 빠졌던 기쁨도 돌아보니 추억이 되었다. 화분에 옮겨 심어 놓은 꽃은 기운을 차렸다. 남편과 나는 종일 침묵했다. 불편한 심기를 풀고 가고 싶었다. 저녁에 묘안을 짜냈다. 어둑해지자 밖으로 나갔다. 시장을 한 바퀴 돌다 보니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을 핑계 삼아 분위기를 돌려보고 싶었다. 낮에 화분이 깨어질 때 우리 부부 마음에도 금이 갔다. 화가 풀리지 않은 남편 기분을 돌리기 위해 할머니 보쌈과 소주 한 병을 샀다.

허브향 그녀가 양 볼이 터지도록 상추에 보쌈을 쌌다. 상추쌈에 소주도 한잔 권했다. 술에 성분이 무엇이든 간에 마술처럼 닫힌 마음의 빗장을 푸는 열쇠 같았다. 남편의 눈가가 사르르. 보쌈과 소주 한 잔에 녹아버렸다. 싸움보다 먼저 지는 법도 터득한 나이였다. 남은 삶을 즐길 것 같기에 더 달달한 인생이 아닐까. 코로나19도 인간의 끈끈한 정 앞에는 허물어지길 바란다. 남편이 한 마디 툭, 뱉었다.

“그래, 꽃보다는 당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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