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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동안 사랑에 빠진 마을, 체코의 베히녜

Bechyně(베히녜) 마을에 다녀오다

by 담소

숙소에서 약 30여분 떨어진 아름다운 마을, Bechyně(베히녜)를 향해 출발했다.

베히녜 마을로 가는 길...

그야말로 장관이다.

매일 보는 아름다운 풍경에 그때마다 넋을 놓고 보기도 하고 감탄사를 내뱉지만 지금 이 순간 하늘아래 포근히 담겨 있는 평화로운 보헤미아의 시골 풍경은 나를 다시 감동으로 이끈다.

오가는 자동차 없는 적막한 도로, 이렇게 360도를 빙 돌면서 멈춤 없이 하늘을 볼 수 있는 풍경에 머물렀던 적이 있나 싶다.

너무 아름답고 안온한 풍경에 잠시 차에서 내려 영상을 찍어본다.


멋진 풍경을 계속 이어나가는 와중에 우리는 마침내 베히녜 마을에 도착했고 주차를 하기 위해 마을의 중심 베히녜 광장으로 들어섰다.

휴일 아침,

적막한 마을 광장은 분수에서 뿜어대는 물소리와 주변의 새소리들이 관광객의 북적거림을 대신하고 청명하고 맑은 하늘 아래 광장 벤치에 앉아 있으니 체코의 작은 시골 마을에 스며있는 특유의 느림과 여유로움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마을의 정경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소박함과 함께 우아함이 느껴지는 광장이었다.

성당의 은은한 종소리와 사람들의 느긋한 발걸음에서 오는 편안함, 오래된 나무 벤치 위로 쏟아지는 봄 햇살의 풍요로움, 주변의 푸른 풍경, 이 모든 게 어우러지니 한 편의 영화 장면에 내가 들어가 있는 듯하다.

오래된 성당과 고풍스러운 시청건물,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이 광장은 체코 대부분의 전통적인 마을과는 조금 다른 직사각형 구조를 가지고 있어 확 트인 조망이 마음에 들었다.

광장 한쪽에는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 베드로와 바울 성당 (Kostel sv. Petra a Pavla)이 자리 잡고 있는데 성당의 시계탑은 마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도 시계탑 전망대에 올라가 베히녜 마을을 한눈에 담아보기로 했다.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좁은 나무 계단을 올라가니 자그마한 방이 예쁘게 꾸며져 있다.

궁금해 물어보니 예전 종지기가 살았던 방을 꾸며 놓은 거라고 하는데 마치 지금도 살림을 하고 있는 듯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가는 계단과 과거 종지기의 방


중세 유럽의 많은 교회 종탑에는 종지기가 상주하며 종을 울리는 역할을 수행하던 방이 존재했었다고 하는데 이 성당 종탑에도 종지기를 위한 방이 존재했나 보다.

요즘의 성당 종소리는 프로그래밍된 타이머에 따라 자동으로 울려 편리하고 정확하긴 하지만 대신 낭만이 사라진 듯싶어 아쉬운 마음도 든다.


방에서 나오면 바로 전망을 볼 수 있는 테라스와 연결되어 있는데 폭이 좁아서 한 방향으로만 이동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도 관람객이 우리뿐이라 여유롭게 오갈 수 있어 편한 마음으로 머물 수 있었다.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베히녜 마을은 주변이 드넓은 초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특히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루즈니체 강과 어울린 무지개다리 풍경은 압권이었다.

멀리 보이는 무지개다리와 마을 광장 풍경

독특한 아치형 철근 콘크리트 다리인 베히녜 다리(Bechyně Bridge)는 체코어로 "두호비 모스트(Duhový most)"라고도 불리는데 뜻은 "무지개다리"라고 한다.

다리에 도로와 철도가 함께 놓인 구조는 드문 편인데 이 다리는 독특한 아치 구조는 물론 철도 및 도로를 함께 이용하고 있어 유명한 다리라고 한다.

루즈니체(Lužnice) 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현재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는 다리보다 멀리서 보는 다리 풍경이 훨씬 아름답다.



마을을 산책하는 도중 요새를 만났다.

베히녜 요새는 루즈니체(Lužnice) 강 절벽 위에 세워진 요새 형식의 성으로, 마을과 강 그리고 베히녜 철교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위치에 있었다.

이 요새는 단순한 군사적 요새라기보다는 중세 고딕 요새에서 르네상스 스타일의 귀족 성으로 발전한 건축물이다.

13세기에 지어졌지만, 당시의 건축물은 오늘날 거의 남아 있지 않고 1581년, 로젠베르크 가문이 화려한 프레스코화 장식이 돋보이는 안락한 르네상스 양식의 저택으로 재건했다고 한다.

절벽 위에 세워진 요새, 루즈니체 강과 마을을 내려다보는 전망, 그리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 자리한 이 성은 베히녜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놀랍게도 이 요새는 미완성의 요새였는데 '악마의 벽'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이유가 안내판에 설명되어 있었다.

전설의 내용은 계곡 반대편에서 성품이 좋지 않은 성주가 성을 쌓다가 어려움을 겪자 악마를 초대하여 성을 쌓기로 한다.

그는 이러한 대가로 악마에게 주민들의 영혼을 팔기로 약속하며 단, 악마가 아침까지 성벽을 완성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를 위해 악마는 새벽이 왔음을 알리는 마을의 수탉들을 모두 사들였는데 주민 중 한 할머니만이 그녀의 수탉을 숨기고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새벽이 되자 할머니의 수탉이 울고 악마는 사라졌으며 이로 인해 벽은 미완성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서 할머니가 수탉을 품에 안고 있는 동상을 볼 수 있었다.

할머니의 수탉

이 요새가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것은 로젠베르크 귀족가문의 몰락과 30년 전쟁의 전후로 인해 미완성이 되었다는 얘기가 더 와닿지만 이 전설은 인간의 교만과 탐욕을 경고하는 교훈으로 내려오고 있는 듯했다.

이런 전설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요새 내부에 있다고 했지만 우리는 내부에 들어가지 못한 채 상상에 맡겨야 했다.

성 외곽을 걷는 길이 온통 초록의 나무와 강에 둘러싸여 무척 아름답다.

절벽 위에 세워진 마을답게 절벽 아래에는 루즈니체 강이 흐르고 그 강을 따라 멋진 산책길이 뻗어 있어 점심식사를 하고 이 산책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광장 쪽으로 올라갔는데 조용했던 광장이 식당을 찾는 사람들로 조금은 북적인다.

광장에 있는 베트남 식당에서 먹기로 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광장에 있는 식당 중에서 그곳만이 사람이 제일 많아 맛집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광장 쪽 테이블에 자리가 나는 걸 확인하자마자 우리는 바로 식당으로 가서 음식을 주문했다.

소고기 볶음밥과 칼라마리 요리를 주문했는데 음식의 맛은 조금은 짠 듯했지만 양도 푸짐하고 가격에 비해 맛도 있었다.

휴일이라 그런지 가족끼리 자전거를 타거나 자전거 동호회인들끼리 하이킹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헬멧을 쓰고 자전거 타는 복장으로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


식사 후 몰려오는 졸음을 참고 우리는 요새 뒤편에 있는 산책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숲 속으로 가는 도중 강물에서 아이들이 옷을 벗어던진 채 물장난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은 5월 초, 따뜻한 날씨이지만 맨 몸으로 강물에 들어가긴 쉽지 않을 텐데...

한쪽에 벗어놓은 아이들의 옷을 보니 어지간히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나 보다.

베히녜 마을에는 아름다운 산책 코스가 많아 상황에 따라 선택해 걸을 수 있었다.

우리는 어렵지 않은 '베히녜 - 푸슈트(Bechyně - Poušť) 트레일'을 걷기로 했다.

왕복 50분 정도의 길이었는데 계속 루즈니체 강을 따라 걷는 코스라 경치는 물론 산책길이 아주 잘 정비되어 있어 걷기에 무척 편했다.

조용한 자연 속에서 산책을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이었다.

마을 주민들도 가족과 함께하는 산책 코스인 듯하다.

강 위의 나무다리를 건너는 개가 무서워 자꾸 주저앉으려고 하는 모습이다.

주인은 어쩔 줄 몰라하고 개는 더 이상 가지 않으려 용을 쓰는 모습에 웃음도 나오고 안쓰러움도 생긴다.

사람도 개도 모두 무서움 앞에서는 행동이 비슷한가 보다.


한참을 걷다가 바위에 설치된 줄에 매달려 바위벽을 타고 걷는 사람들이 보여 한참을 지켜보았다.

이 운동은 '비아 페라타(Via Ferrata)'이다.

절벽을 걷는 사람들

강이나 협곡을 따라 바위에 설치된 철제 줄과 발판 등을 이용해 바위벽을 걷듯이 오르는 이 운동은 주로 체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등에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암벽등반과 하이킹의 중간 형태로 초보자를 위한 코스도 있고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할 수 있다고 하니 나도 나이 한 살만 덜 먹었어도 시도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ㅎㅎ


강 건너편에 지어진 별장들에는 주말을 맞아 가족들이 강가에서 낚시를 하거나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등 편안하게 자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대도시에 머무는 사람들이 주말을 맞아 자연속에서 쉬려고 찾은 모양이다.

참 평화롭고 여유 있는 모습들이다.


오늘 우리가 방문했던 베히녜 마을은 중세의 매력을 간직한 채 보헤미아 시골 마을에서 숨어있는 보석 같은 마을이었으며 평온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숙소에서 겨우 30여분 떨어진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푸른 풍경이 가을에는 어떤 화려한 변장을 할지 너무 궁금했다.

베히녜 마을의 가을 풍경을 보러 가을에 꼭 다시 오자고 약속했다.

나는 오늘도 아름다움에 취하고 사랑에 빠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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