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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와 함께라면 Mar 21. 2023

태리 친구 ‘복돌이’의 행방불명

못 말리는 천방지축 태리와의 동거(7)

2020년 2월 말 전원생활을 하겠다고 가평에 홀로 이사를 온 그때. 펜션 앞 작은 배나무 농장에는 2개월 된 강아지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복돌이. 복돌이는 시골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믹스견, 즉 ‘시고르자브종’이었다. 전해 듣기로는 진돗개와 래브라도 리트리버의 믹스견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생김새와 체형으로 봐서는 아마도 믹스견과 믹스견의 자손일 확률이 컸다.     


복돌이의 견주는 당시 면에서 살고 있었고 농장에는 오전에 출근했다가 오후에 퇴근하고는 했다. 어린 복돌이는 홀로 농장에서 지냈고 당시에는 목걸이만 하고 목줄은 하지 않아 이웃인 우리 집에 놀러 오고는 했고 그런 복돌이를 나는 대견하게 생각했고 귀여워했다.       


그해 3월 초에는 날씨가 무척 추웠다. 어느 날은 밤사이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가평은 서울보다도 평균기온이 3~5도 정도 낮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더 춥게 느껴진다. 특히 한겨울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 들판으로 강풍이 몰아칠 때에는 시베리아 추위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아마도 시베리아의 추위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는 않으리라.     


추운 겨울날의 복돌이


나는 기름보일러를 틀어 따뜻한 방에서 잠을 청하다가 문득 복돌이 생각이 났고. 혹시 “복돌이가 이 추위에 얼어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어 외투를 걸치고 복돌이를 데리러 갔다. 복돌이는 자기 집에서 흔한 이불 한 장 없이 한구석에서 오들오들 떨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시고르자브종인 럭키. 하지만 모든 강아지가 그렇듯이 럭키도 무척 귀여운 강아지였다.


나는 복돌이를 안아 들고 집에 딸린 데크에 사방을 비닐로 쳐서 막아주고 전기난로를 피워 공기를 따뜻하게 데운 다음 아예 푹신한 이불까지 덮어줬다.     


복돌이는 다음 날 늦게까지 늦잠을 잤는데 나는 다시 복돌이를 안아 들고 원래 복돌이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혹시라도 복돌이의 견주가 이런 모습을 보면 싫어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시골에 사는 견주분들은 “개는 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설을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사람이 추위를 느낄 정도면 개들도 똑같이 추위를 느낀다고 한다. 


매일 아침 산보를 같이 하던 복돌이     


당시에는 나의 반려견 태리를 입양하기 전이었으므로 아침에는 주인 몰래 복돌이를 데리고 뒷산으로 산보를 다녔다. 복돌이 나를 잘 따라왔고 심심한 ‘홀로 산책’을 같이 해준 대가로 맛있는 간식을 주고는 했다. 당시에는 강아지 간식을 미리 준비해 놓지 않아. 하루 전에 간이 되어 있지 않은 고기나 새우 등속을 놔뒀다가 주고는 했다.      


그런데 복돌이에게 맛있는 간식을 준 것은 나의 실수였다. 복돌이가 견주가 주는 사료를 잘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견주가 사료를 주면 복돌이는 먹는 둥 마는 둥 한 입 두 입 먹다가 밥그릇을 물리기 일쑤였고 견주가 퇴근을 하면 어슬렁어슬렁 걸어와 간식을 달라는 듯 눈망울을 말똥거렸다.     


복돌이는 우리 집을 자기 집인 양 드나들었고 추운 겨울날 따뜻한 잠을 재워준 탓에 복돌이는 거의 매일 밤 우리 집에 와서 잠을 자고 가고는 했다.      


어느 날 아침은 나도 늦잠을 자고 복돌이와 산보를 다녀왔는데 어느새 견주가 농장에 와있었다. 나는 견주에게 사과를 했다.     


“심심해서 복돌이와 같이 산보를 했네요. 미리 말씀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복돌이가 없어진 걸 보고 벌써 데려간 줄 알았어요.”     


견주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행운의 선물 복돌이


그러던 어느 날 복돌이의 견주가 복돌이에게 목줄을 채워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는 사건이 있었다. 아마도 복돌이의 견생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강아지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에 놀러 와 한참을 놀고 갔던 복돌이. 실컷 뛰어놀다가 졸음이 쏟아졌던지 데크에 그대로 쓰러져 자고 있다.


“김 사장 내가 보아하니 복돌이를 귀여워하던데 복돌이를 줄 터이니 복돌이를 키우세요.”   

  

갑작스러운 선의에 나는 의아했다. 당시 나의 펜션사업을 도와주던 김실장은 복돌이를 받아서 기르자고 했다. 복돌이의 '복'은 영어로 ‘good fortune’ 곧 ‘행운’이니까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마음속으로 갈등이 오갔다. 분양받은 아이가 오기 전까지 복돌이와 함께 지낼까?  


하지만 나는 복돌이를 맡을 수가 없었다. 우리 가족은 이미 반려견을 분양받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고 며칠 안 있으면 반려견을 데리러 가기로 약속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부터 중 대형견 두 마리를 기르는 것은 여러 가지 사정상 무리였다.      


“복돌이도 귀엽고 말씀은 참 고맙지만 저희는 반려견을 분양받기로 되어 있어요. 지금은 복돌이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복돌이의 견주는 “좋아하는 강아지를 준다고 하는데도 거절하는 건 뭐냐”는 듯 복돌이를 데리고 갔다. 호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복돌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니 정확히는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내가 가평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쯤 되고 복돌이는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때 생후 2개월짜리 태리가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우리는 혹시나 복돌이가 태리를 시샘하지 않을까 걱정하였는데 복돌이는 의젓하게 태리를 맞이해 주었고 둘이서는 외롭지 않게 잘 놀고 간식도 같이 먹고는 하며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돌이 우리 집 데크에서 태리와 놀고 있었는데 복돌이의 견주가 복돌이를 데리러 왔다. 복돌이보고 집에 가자고 했을 때 복돌이는 한사코 거부했고 복돌이의 견주는 복돌이에게 목줄을 채워 강제로 끌어가기 시작했다. 복돌이는 가기 싫다고 몸부림쳤다. 하지만 복돌이의 거부를 허용할 견주가 아니었다. 집에 가기를 한사코 거부하던 복돌이는 힘에 의해 강압적으로 땅에 질질 끌려가다시피 집으로 돌아갔다.    

  

감금된 복돌이, 2미터에 국한된 시골개의 운명


넓은 농장, 혼자서 오후 시간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무료하게 집을 지켜야 하는 아니 정확히는 묶여있어야 하는 그 생활이 복돌이는 얼마나 지겨웠을 것인가. 그러나 내가 복돌이의 생활을 또 복돌이 견주의 행동을 문제 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복돌이에게는 복돌이의 견생이 있기에.     

2개월, 3개월 차에 서로 만나 친구가 되었던 두 반려견이 이제는 둘 다 성견이 되어 다시 만났다. 그래도 서로를 잘 알아보는 듯 럭키는 의젓했고 태리는 까불었다.


그날 이후로 복돌이는 우리 집에 놀러 오지 않았다. 아니 놀러 오지 못했다. 복돌이에게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굵은 목줄이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복돌이는 그 목줄을 결코 풀 수 없었다. 그리고 농장의 정문에는 울타리가 생겨 나도 함부로 그 집 마당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태리의 재롱과 개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고 태리를 키우는 재미에 복돌이는 서서히 우리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태리가 6개월쯤 되었을 때 마당에서 놀다가 복돌이가 살고 있는 농장으로 뛰어들어갔다. 복돌이가 보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태리를 체포하기 위해서 월담을 하여 농장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 마당과 농장 사이에는 돌담이 쌓여있었는데 그 돌담을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면 바로 농장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복돌이와 태리는 서로를 잘 알아보았고 둘이서는 한참을 뛰어놀았다. 물론 복돌이는 목줄이 묶인 채로. 복돌이는 이제 평생 2미터 이내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다른 시골개들처럼.     


태리가 더러 복돌이를 올라타거나 물려고 하는 등 복돌이에게 건방진 행동을 취해도 복돌이는 무던하게 태리의 재롱(?)을 잘 받아주었다. 복돌이는 나도 무척 반가워해줬다. 이제 다 커서 성견테가 나는데도 꼬리를 흔들며 안아달라고 응석까지 부렸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복돌이의 의기소침해진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해 겨울도 역시 날씨는 어김없이 추웠다. 12월에 영하 20도를 넘어가는 날들이 많았다. 나는 복돌이가 걱정되어 안 쓰는 이불을 한 채 들고 복돌이의 견주에게 전달했다.      


“날이 추운데 복돌이집에 좀 깔아주세요.”

“지난 겨울에도 괜찮았는데 별일 있으려고요. 알겠습니다.”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새털 같은 날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복돌이의 집에는 아무런 이불도 깔리지 않은 채 또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찾아왔다.     


복돌이의 행방불명


태리가 우리 집에 온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은 것이 산책이다. 많을 때는 하루에 4~5번을 산책하거나 같이 원반 던지기 등을 하며 놀아줬다. 산책길에는 농장에 있는 복돌이가 가끔 보이고는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복돌이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곧 그 사실을 잊고 말았다.     

'평생 2미터'의 삶에 갇힌 럭키. 여름에는 무척 더웠고 겨울 또한 몹시 추었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복돌이의 견주와 만나는 일이 있어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복돌이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복돌이가 안 보이네요?”

“내가 얘기 안 했나? 복돌이 다른 데로 갔어요”     


“다른 데라뇨 어디로?”

“네 저기 먼데 있는 농장으로 보냈어요.”     


"어디 농장인데요?"

나는 혹시라도 근방에 갈 일이 있다면  럭키 있는 곳을 들러볼 요량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 어디더라 이름을 까먹었네."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기르던 반려견을 파양 하다니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반려견을 파양 하는 사람들을 혐오 내지는 경멸해 왔기 때문이었다. 반려견도 가족인데 입양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파양이라니.     


복돌이는 어디로 갔을까? 이름 모를 농장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까? 니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시골에서 다 큰 시골 믹스견을 귀엽게 키워주고 돌봐줄 견주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견주가 최소한의 양심만은 지켰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뿐이었다.     


복돌이는 잘 살고 있을까?      


복돌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3년 전 우리가 나누었던 즐거웠던 추억을 생각하며 행복하게 지내기를 태리와 함께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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