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주저앉은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먼저, 사진으로 인사드립니다. 위의 사진은 옛날 사진입니다. 제가 30대 초반에 인도 티베트 난민촌인 다람살라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세상 다 잊고, 한 시절 방랑했습니다. 지금은 머리가 허연 노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나간 세월이 다 꿈만 같네요. 뭐, 요즘의 하루하루도 다 꿈처럼 보일 때가 많지요.)
가끔 저는 제가 달팽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3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30여 년간 여행하고, 여행기 쓰고, 수많은 강의를 하고, 소설을 쓰고, 수많은 강의를 하면서도 늘 '왜 이렇게 나는 안 풀리나?...' 하는 답답함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여행기, 여행에세이를 26권이나 내고, 요즘에는 늦은 나이에 소설을 두권이나 냈으니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몇 년 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배낭을 메고 무작정 세상을 떠돌며... 즉, 전 생애를 걸은 길인데... 이것밖에 안 되었나 하는 생각에 한동안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책 한 권 한 권 낼 때마다 얼마나 힘이 들던지... 그런데 세상이 묘한 것이 다 포기하려고 할 때쯤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고, 또 몇 권 내다가 책도 안 팔리고, 책 내기도 힘들어져서 포기하려고 하면, 또 연락이 오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소설은 또 어떻고요? 혼자서 늘 습작을 했지만 실패, 실패, 실패... 아, 이제 실패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끈질기게 시도하다 보니 작년에는 '무인카페'(문학수첩, 2024), 또 올해는 '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문학수첩, 2025)를 출간했습니다. 그 유명한 '해리포터 시리즈'를 낸 출판사이다 보니, 아, 내 책도 그렇게 팔리려나 하는 착시 현상이 생겼지만 역시나 안 팔리더군요. 당연한 거지요.
어쨌든 지금도 늘 글을 씁니다. 블로그든, 일기든, 소설이든 쓰고 또 씁니다. 안 쓰면 제 삶이 무너질 것만 같아서요. 안 쓰면 그냥 삶이 허전하고, 허망하고, 짜증 나고... 친구도 별로 없고, 사회활동도 하지 않다 보니 그저 쓰는 거 하나 붙잡고 삽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그렇습니다. 특히 이곳은 글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오는 곳이다 보니, 본격적으로 쓰고 싶은 생각도 드네요.
돌이켜보니 저는 '달팽이'처럼 살았어요. 한 시절 바쁘게 활동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남들에 비하면 굼뜨고 느립니다. 잘 헤매고... 길눈도 밝지 않아서 늘 헤매고... 그 바람에 글 쓸 거리가 많아지더군요. 맞습니다. 제가 달팽이처럼 느리고, 헤매고, 또 가끔은 집속으로 쏙 들어가서 가만히 은둔하는 삶을 살아서, 제 가슴에 고인 게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다 글로 나오는 자양분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 헤매고, 느린 분들 실망하지 마세요. 언젠가 그런 경험조차 다 써먹을 수 있습니다.
'글로 여행하기' 시리즈에서는 제가 수십 년 동안 여행하고, 글 쓰는 과정에서 겪었던 것들을 쓸 생각입니다. 글을 불러내는 요령과 함께 글의 힘, 글의 치유 능력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이 글은 예전에 제가 5, 6년간 상상마당에서 강의를 한 후, '여행작가 수업'이란 책을 냈었는데 그것을 토대로 하되 더 싱싱한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여행작가 수업' 책은 이미 절판이 되었거든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분들, 상처를 글로 극복하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달팽이의 집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는 자기 집을 자기 등위에 지고 있습니다. 천천히 기어가다가 위험하거나, 피곤할 때 집으로 쏙 들어가서 쉬지요. 1988년부터 배낭 메고 세계를 떠돌았으나 다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이곳으로 돌아와 방황하던 저는 늘 ‘정신적인 집’을 원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내 집 하나 만들자, 내 세계 하나 만들자’ 하며 썼습니다. 어디에 있든, 어느 순간이든 그 집 속에 있으면 편안할 것 같았습니다. 특히 슬프고, 괴로울 때 절실했습니다. 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달팽이 집을 만드는 것과도 비슷했습니다. 힘들게 썼지만 저는 종종 제가 만든 집속으로 콕 숨어서 쉬었습니다. 저는 저의 피로와 상처를 글의 집 속에서 치유했습니다.
2. 글의 모호함과 회의
글은 모호합니다. 언어학자 소쉬르가 잘 분석했지만 글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기호일 뿐입니다. 그 기호 자체가 사물이나 개념은 아닙니다. 우린 글이나 말을 통해서 상상할 뿐입니다. 우리가 ‘개’라고 글자를 적거나, 말을 할 때 ‘개’라는 실체가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호를 통해서 머릿속에서 개를 상상할 뿐이지요. 백 명이 상상하는 개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추상 명사는 더 합니다. ‘사랑’이라고 말하면 사랑이 보이나요? 모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안다’고 생각하지요.
단어가 그런데 하물며 문장과 긴 글은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모호한 개념, 상상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깨달음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말을 길게 하면 고승들이 방망이로 때린다지요? 정신 차리라고. 언어에 팔리지 말라는 겁니다. 하여 언어를 끊는 참선에 몰입합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세속인들은 언어를 사용해서 생활하고 세계를 이해합니다. 거기서 수많은 과장과 오해도 발생합니다. 제가 종종 글에 대해 회의하고 절망했던 부분입니다. 글을 쓰면서 상처가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결국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보고, ‘자기 식대로’ 이해합니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지만 동시에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3. 글의 유희성과 위험성
글은 신뢰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닙니다. 글은 계속 흘러나오는 샘물 같아요. 쓰다 보면 묘하게도 글이 글을 끌고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어떨 때는 원래의 제 경험, 생각보다 멋진 글이 나오지요. 뇌 속의 수많은 신경 세포들이 자기들 스스로 유희를 벌인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이거 뭐지? 글 쓰는 나보다 앞서서 솟구치는 이 향연은? 나라는 실체는 무엇이고 경험과 기억은 뭐야?
‘진정성’ 있게 글을 쓰자는 이야기를 종종 해 왔지만 그쯤 되니 글은 ‘유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아, 글이란 것은 원래 유희야!’ 이런 생각에 빠져서 자기 재능에 몰입하는 순간이 함정입니다. ‘멋진 글’에 집착하다가는 자칫 거짓으로 뒤범벅된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특히 여행기를 쓰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고의적으로 있지도 않은 사건을 만들면 거짓이지요. 그러나 진실을 쓴다 해도 종종 현장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보다 더 좋고, 자극적인 글들이 나올 때, 너무 그것을 즐기면 약간의 과장법을 넘어서 ‘거짓 감정’이 됩니다. 그 거짓의 대가는 언젠가 치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다 속았지만 지금은 누구나 다 가서 확인하고 인터넷을 통해 표현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4. 글의 진정성이란?
흔히 글을 쓸 때 진정성이란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진정성 있게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모든 경험을 일기장처럼 나열하면 진정성일까요? 제가 볼 때, 그것조차도 진실은 아닙니다. 어차피 언어는 경험을 자신의 뇌 속에 기억으로 간직한 후, 그것을 기호라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몇 번의 굴절 현상이 생깁니다. 어떤 언어를 쓰더라도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아무리 진실된 글이라도 그것은 개념과 상상의 덩어리입니다. 글은 현실의 일부분을 기호를 통해 ‘떼어 놓은’ 부옇고 모호한 세계입니다. 쓰는 사람들은 그 부연 세계 만드는 것이고 읽는 사람들은 자기식대로 이해하고 해석하고 상상합니다. 각자는 각자의 집을 짓는 것이지요.
한때 이런 사실 앞에서 저는 표류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뭔가 허공에 ‘거짓’의 성을 쌓는 기분이 들었지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해도 결국 이런 유희 아닐까, 하는 생각. 글을 쓰면서도 그런 회의에 빠져 흥이 나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5. 글의 긍정적인 측면, 글에는 치유 능력이 있다
그러나 저는 달팽이처럼 계속 전진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결국 그 모든 것이 ‘마음의 조화’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숙명이었지만 언어의 긍정적인 면도 많이 보이더군요. 사람은 언어를 통해 망가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언어를 통해 다시 일어나는 존재입니다. 어떤 고난, 고통, 회의 속에서도 언어를 통해 해결 방법을 짓고,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글의 힘, 말의 힘이 있습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저의 집을 짓는 것이었고, 이왕이면 ‘좋은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좋은 집은 무엇일까요?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줄기차게 나올 겁니다.
제가 몇 년 전 ‘상상마당’에서 여행작가 수업을 5, 6년 정도 한 적이 있습니다. 10주간의 과정이었는데 그때 많은 수강생들을 만났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중에서 50대 중반의 가정주부가 생각나네요. 혼자서 인도 여행을 3, 4개월 동안하고 와서 여행기를 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분이 쓴 원고를 보니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글도 잘 썼지만 경험도 드라마틱했습니다. 인도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도 그렇지만 남편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인도 가기 전에 이미 거의 파탄이 났습니다. 재판정에 가서 이혼 도장까지 찍었답니다. 그쯤 되면 남편이 꼬리를 내릴 줄 알았는데 남편은 판사의 이혼하겠냐는 질문 앞에서 아주 우렁차게 “네!” 해서 기가 막혔다고 합니다. 이제 구청에 이혼 서류를 제출만 하면 이혼인데 제출하지 못한 채 그녀는 속만 부글부글 끓였습니다. 그때 듬직한 아들이 ‘엄마 인도 갔다 와’ 하면서 비행기표를 끊어주었다는군요. 하여 요절복통 인도여행을 하고 와서 쓴 글인데 아쉽게도 출판사를 찾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 여행기가 10년만 더 일찍 나왔어도 히트를 쳤을 텐데 아쉬웠어요. 결국 자비로 출판을 했는데 그분은 저에게 책을 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쩠던 책 쓰기는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정을 받거나, 팔리는 것을 떠나서 제가 치유되었어요. 묘하게도 책을 쓰고 나니 남편을 용서하게 되고 측은하게 느껴졌습니다. 책이 나왔어도 그 인간은 보지도 않고 변한 것은 하나 없지만요.”
네, 글의 힘입니다. 스스로 치유한 거예요. 글을 쓰며 속에 쌓인 것을 다 풀면서 너그러워진 것일까요? 아니면 ‘에이, 세상 다 그렇고 그런 것이지.’하는 달관의 경지에 이른 것일까요?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습니다. 나중에 들은 소식입니다.
“아이고 수백 권의 책이 팔리지 않고 방에 쌓여 있는데, 그걸 보기만 해도 골치가 아파져요!”
하하. 책 원고 쓰고, 출판하는 것도 어렵지만 팔기는 더 어렵지요. 책을 내는 순간 이제 유통, 홍보, 저장, 판매 등 다른 차원으로 접어드는데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그분은 책을 씀으로 인해서 자기 치유를 했고 또 아들이 좋은 곳에 취직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삶은 계속 요동치니까. 며느리를 얻으면 또 고부간의 갈등을 겪겠지요. 그러나 그때마다 말로, 글로 풀고 정리하며 사는 사람은 쉽게 좌절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아서 계속 나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긍정적인 언어, 생각이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좋은 언어로 지은 ‘자기 집’은 우리를 위로해 줍니다. 글의 힘입니다. 구독해주시고, 라이킷 많이 눌러주시면 힘이 나서 좋은 이야기 많이많이 풀어 놓겠습니다. 그거 내 혼자 가슴 속에 갖고 가면 뭐하겠습니까? 많이많이 나누고 싶네요.
(다시 사진으로 인사드립니다. 글의 표현보다도 이렇게 매번 다른 사진들로 인사하는 것도 읽는 분들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런 방식으로 해봐야겠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제 인생 자체가 30대 초반부터 방랑, 방황의 세월이었고, 모든 것이 막막했는데 여기까지 살아 왔네요. 사람은 다 살게 마련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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