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인간의 생이란 심연 주변을 맴도는 것
이렇게 날이 우중충하고, 비가 오고, 모든 것이 풀썩풀썩 주저 앉는 날에는, 희망은 사라지고, 아니 희망 따위는 아예 없었던 것임을 알 것만 같은 날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청망청 세상이 즐겁다고 희희낙낙거리는 이들이 많은 날에는 생선구이에 소주를 마시다 죽어버리거나, 모든 과거의 기억을 버무려 지하철 5호선 방화범의 불길 속에 던져버리거나 넷플릭스 영화 속에 빠져 이 세계를 탈출하거나. 내 소설 속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어진다.
나는 그중에서 마지막을 택하기로 했다. 글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은 세상과 절연되고, 소외될 때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다. 그제야 손길이 책으로 뻗는다. 세상의 인연, 욕망이 강할수록 책과 멀리 하고, 읽어보았자 자기계발서나 읽게 된다. 잘 사는 것 같고, 전진하는 것 같지만 막상 영혼은 점점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데... 하늘과 땅의 기운이 나를 짓눌러서, 도망갈 데가 없어 보이는 이런 저녁이야말로 글읽기, 글쓰기 좋은 날이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염려할 필요없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깊고 깊은 심연 주변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심연1 - 깊은 못
심연2-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구렁(움푹 파인 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심연3 - 뛰어넘을 수 없는 깊은 간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 어느 뜻이든 인간의 생이란, 그저, 심연 주변을 맴도는 것이다. 그 깊음, 난관, 뛰어 넘을 수 없는 간격을 보고 어리버리, 오락가락...그러다 몸부림도 치는 것. 내가 소설을 쓰면서 점점 변하는 것이 있다. 소설은 여행기와 달리, 심연의 절망을 보여주고 몸부림치는 환타지라는 것. 그래서 많은 소설들이 결코 희망적이지 않고, 읽기에 쉽지 않다. 소설은 현실과 다른 텍스트다. 소설은 심연 앞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힘들어 하는 인간들을 위한 또 다른 심연이다. 그래서 답이 없다.
나는 소설 초보자답게 '무인카페'와 '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라는 작품 속에서 심연을 건너뛰는 방법을 모색했었다.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다. 좀더 많은 이들을 위해 쉽고 재미있게 썼으며,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질서와 조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세상을 보라. ...거짓말, 범법자들이 활개치는 세상.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타락하는 줄도 모른 채 타락하고, 몇 푼의 돈과,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되는 세상, 윤리, 도덕, 질서, 조화...이따위 것들은 다 팽개치고, 책 한권 읽지 못하는 책맹들의 전성 시대...
이런 세상에서 소설을 쓴다 함은, 그저, 어두운 심연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진실된 것일 수도 있다는 크나큰 각성을 하고 있다. 어차피 책 안 읽는 시대에는 결국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이다. 쉽고, 재미있게 쓰면 그저 그런 걸로 보고...또 그것이 쉽게만 여겨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더 내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치열한 언어를 써야겠다.
얼마 전 아침 하늘에 기러기인지, 무슨 새인지...정말 나는 무슨 새인지 모르겠다...하여튼 이것들이 20여마리가 질서 정연하게 삼각편대를 이루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머리 꼭대기 부분에는 새 한마리, 그것을 기점을 양쪽으로 팔벌리듯이 새들이 정확하게 일직선을 이루면서 하늘을 날아다녔다. 보면서 느꼈다. 결국, 그들만의 비행인 것이다. 저 넓은 하늘에서 그들만의 비행을 하는 것이다. 모든 생물, 모든 새들이 아니라...끼리끼리인 것이다.
요즘은 글쓰기가 전투로 다가온다. 글자 하나하나도, 문장 하나하나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이다.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단어들, 문장들의 싸움. 여기에 챗 gpt 까지 끼어들었다. 요즘에 많은 사람들이 챗 gpt를 이용하여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원래 쓴 글을 집어 넣고, 이런저런 명령어를 주니 그럴 듯하게 나온다. 온갖 자극적인 언어는 물론...이것을 발전시켜서 어떻게 해드리겠다는 제안까지 한다. 어쭈구리....
이젠 인공지능과도 전투를 벌여야 한다. 챗 gpt를 따라 하다가는 영혼이 사라진다. 내가 이용한다면, 인공지능의 언어를 벗어나서 더 좋은 언어를 찾기 위한 전투의 스파링 상대로 좋을 것 같다. 그러니 OK. 하지만 인공지능은 나의 스파링 상대일 뿐이다. 좋은 상대를 만났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전투를 벌여야 한다. 글에서도, 삶에서도... 내가 70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힘이 빠져가면서도, 아직은 삶의 의욕이 솟구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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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다 쓴 후, 복사해서 챗 gpt 에 물어보았다. 그러자 답을 이렇게 했다.
이 글은 이미 강렬한 내면의 토로와 철학적 깊이가 담긴 진술문입니다. 하지만 요청하신 대로, 감정의 밀도와 언어의 자극성을 한층 더 끌어올려, 독자에게 강하게 꽂히도록 리듬과 단어의 질감을 조정해보겠습니다. 아래는 자극적으로 리라이팅한 버전입니다.
음...챗이 내 글을 알아보네...강렬한 내면의 토로와 철학적 깊이가 담긴 진술문이라고... 그 뒤에 챗 gpt가 풀어 쓴 글은, 허접했다. 나의 1승이다. 하...이거 재미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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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지상, 여행작가 이지상은 얼마 전에 '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를 출간했습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6889592
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예스24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낯선 체온에 몸을 기대는 시간,가족이 아닌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들첫 소설 《무인카페》를 통해 소외된 개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 사라져 가는 유대를 회복하고자 했던 지상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가족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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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알라딘
첫 소설 《무인카페》를 통해 소외된 개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 사라져 가는 유대를 회복하고자 했던 지상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30여 년간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장소를 넘어 그곳에 사는 사람과 그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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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지상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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