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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싫어

자기혐오에 대해

by 미지수

어렸을 적에 한번쯤 본 어른들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나의 예시를 들자면 멋들어지게 정장을 빼 입은 사람들이 쓰디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회사로 걸어가는 모습, 회사 대표를 중심으로 쭉 앉아서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일을 마치고 서로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대표적이겠다. 사실 나에게 이 모습은 미래의 로망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러 쓴 커피를 마셔보고, 회의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활동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멋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지금의 내 모습은 너무나도 초라해졌다. 공부도, 글도, 그림도, 그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는 내 모습이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뭐 해 먹고 사나-라는 물음은 죽어야겠다는 대답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뜬금없는 대답의 이유는 '나는 잘하는 것도, 잘난 것도 없으니까'였다. 그때부터였을까, 나 자신이 끔찍이도 싫어진 게.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에 들어서며 자기혐오가 심해졌던 것 같다.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를 바랐고, 그래서 스스로를 해치려 들었다. 칼과 가위는 늘 내게 없었던 물건이었으며 사랑이란 감정은 애초에 없었던 감정이었다. 물론 부모님이 사랑을 주지 않은 것도, 어렸을 때 큰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이런 거였다. 나 혼자서 한 거였다.

물론 지금은 혐오스러웠던 내 모습은 꽤 봐줄만하다고 생각하고, 징그러웠던 말과 행동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던 중이다. 그런데 가끔가다 파도가 치듯 부정적인 생각들이 일렁인다. 그 파도들은 이내 쓰나미처럼 몰려와 내 생각을 삼켜버린다. 그럼 나는 그 생각에 저항하지 못하고 점령당해 버린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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