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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Sep 21. 2023

싸리나무 상념

어지러운 마음자락을 쓸다

  

 

  쓰윽쓰윽 잠결 속으로 가지런한 소리가 파고든다. 꿈결인 듯 아닌 듯 절집 마당의 가지런한 빗자루 결이 머릿속을 왔다 갔다 한다. 예전에는 고층빌딩보다 마당이 있는 집이 많아서 누구나 빗자루로 마당을 쓸었다. 그 빗자루의 재료는 싸리나무였다. 그 나무는 보라색의 앙증맞은 작은 꽃을 피웠다. 고속버스를 타고 먼 길을 떠날 때면 도로 창문을 통해 야산에서 피어나는 싸리나무 꽃을 보았다. 꽃은 수줍은 얼굴로 어디 가는지 묻는 것 같기도 했다.   

 

  휴일 아침, 잠은 즐겨야 하는데 가지런한 빗자루 소리에 세포들이 서서히 깨어난다. 가을의 초입임에도 불구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창문을 열어놓고 잤다. 그 사이로 빗질하는 소리가 들어온 것이다. 더 이상 자고 싶어도 세포들이 어서 일어나라고 제촉한다.     


  열린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아파트 놀이터 주위의 나무가 제법 붉노란빛으로 물들어 있다. 저 나무에서 낙엽이 진 모양이다. 경비아저씨가 놀이터 주위에 떨어진 나무를 쓸고 있다. 바야흐로 낙엽진 계절이 오고 있는 것이다.    


  어젯밤 근무한 아저씨인지. 새벽같이 출근한 아저씨인지 모르겠지만 저 빗자루 소리는 오랜만에 듣는 아침을 여는 소리다.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는 응당 빗자루가 있었다. 싸리나무로 엮은 빗자루. 그 빗자루로 무엇이든 쓸어 담았다. 쓸고 나면 또 어지럽혀진 마당이 있었다. 요즘은 마당이 있는 집도 없지만 마당이 있어도 잔디를 심기 때문에 빗자루가 지나간 결을 볼 수가 없다.    


  언젠가 송광사 절집에 갔었는데 배롱나무 아래에 빗자루가 지나간 가지런한 자국을 발견하고 마음이 싸아했던 적이 있었다. 여러 개의 싸리나무 줄기를 모아 묶어서 빗자루를 만든다. 빗자루는 예쁘고 가지런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당을 쓸다 보면 닳고 닳아 몽당이가 되어버린 빗자루도 있다. 자기 몫의 일을 열심히 한 결과물이다. 문득 빗자루가 지나간 흙마당이 그립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저 소리가 정겨운 것은 쓸고 나면 정갈해지는 마당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던 유년이 그립기 때문이다. 향긋한 꽃내음의 보라색 작은 꽃잎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문득 싸리나무 꽃말이 궁금하여 검색을 한다. 사색, 상념이란 단어가 추출된다. 싸리나무 소리에 온몸의 세포가 일제히 깨어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싸리나무 이파리는 정갈하다. 그 줄기 또한 가지런하다. 그 나무로 만든 빗자루로 마당을 쓸었으니 쓸고 나면 마당이 정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는 마당이 없어진 것처럼 싸리 빗자루를 본지도 오래되었다. 유년의 흙마당을 쓸었던 빗자루도 차차 없어지고, 그 결이 사라진 것처럼 사람들의 가지런한 마음도 없어진 것 같다. 마당이 어지럽혀져 있으면 마당을 깨끗하게 쓸었던 빗자루가 그립다.    

 

  예전의 우리 선조들은 그 빗자루로 마당만 쓸었을까. 아마도 마당을 쓸면서 어지럽혀진 마음도 쓸지 않았을까. 쓸어도 쓸어도 어지럽혀진 마당처럼 마음도 때를 묻어 수없이 다잡아도 어지럽혀지지 않던가. 문득 쓸어 담아 버릴 빗자루 하나 갖고 싶다. 마음을 정갈하게 만들 빗자루 하나.    


  싸리나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나무다. 여러 가지 용도로 쓰기 위해 집 울타리로도 사용했다. 싸리나무로 만든 것이 비단 빗자루만은 아니다. 빗자루, 지팡이, 바구니를 만들고 싸리나무를 엮어 사립문을 만들기도 했다. 회초리도 만들었다. 사리분별을 모르면 때려서라도 가르치는 것이 회초리다.   

  

  옛날 한 선비가 싸리나무 앞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울고 있었다고 한다. 그 연유를 물은즉 일찍 어머니를 여읜 선비를 아버지 혼자 기르면서 잘못을 하면 싸리나무 회초리로 혼을 냈다고 한다. 폭우로 어머니를 잃고 시신을 찾지 못해서 어머니의 묘가 없었다. 과거시험공부를 하러 입산하기 전에 아버지는 어머니 대신 싸리나무 회초리로 가르침을 주었으니 어머니를 대신한 회초리라는 말을 했다. 그 가르침을 받아 과거에 급제하였다면서 어머니를 대신한 싸리나무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어디선가 읽었던 회초리(回草理)란 단어. 회초리를 맞고 처음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란다. 물론 꽃으로도 때리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은 회초리를 들 어른이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빗자루나 사리분별을 모르면 알게 했던 회초리나 같은 의미인 것 같다.     


  아무래도 오늘은 산으로 가야겠다. 지금쯤 싸리나무 잎도 노랗게 물이 들었을 것이다. 쓸 마당은 없지만, 싸리나무 줄기라도 한 묶음 가져와야겠다. 정갈한 잎들과 가지런해지는 흙마당의 결을 마음으로 느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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