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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Aug 03. 2022

무등(無等), 완성길

무돌길을 걷다

무등(無等), 완성길     


  완성길을 찾아 나선다. 무돌길이 이어지지 않는 구간을 연결하여 완성길이 되었다는 소식을 진즉에 들어 알고 있었지만 차마 나서지 못한 길이다. 벚꽃이 지고 새잎이 얼굴을 내미는 희망의 날이 오면 순례길을 걷기로 오래전부터 나 자신과 약속을 했다. 그 길은 무돌길 제15길  종점 광주역에서 각화동 제1길의 시작점을 연결한 곳이다.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광주의 소중한 길이다. 그 길을 빼고 광주를 이야기할 수 없기에 완성길이라 이름 붙였으리라.      


  샛바람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느 집에서 라일락 향기가 담장을 넘어 길손의 발걸음에 설렘을 가득 안겨준다. 완성길을 따라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운 듯 무거운 것은 이 길에 서면 숙연해지기 때문이다. 광주역으로 들어가 무등산을 보면서 육교를 통과한다. 무등산은 등급이 없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기원하면서 말없이 빛고을 광주를 내려다보고 있다. 숙연했던 고개를 들면 마주 보이는 곳, 어느 곳에서든 볼 수 있는 무등의 길.      

 

  육교를 빠져나와 걸으니 저 멀리 전남대학교 정원이 보인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오랜만에 5·18 민중항쟁 사적지 앞에 서본다. 민주화운동 최초 발원지가 무색할 정도로 흑백사진이 흐릿하다. 도서관 등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생들을 불법 구금하였던 역사적인 현장. 강제 해산시켰지만 항쟁의 불씨가 되었던 곳이다. 이곳부터 민주의 길이 있다. 정문에서부터 용봉관과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5km에 이르는 길이다. 정의의 길을 향해 걷는다.        


  박관현 언덕이 보인다. 신군부의 반인권적 폭력에 죽음으로 저항했던 민주열사라는 표지석에는 사진과 함께 설명이 곁들어 있다. 일행이 유튜브 동영상을 연결하자, 피맺힌 절규의 목소리가 안타깝게 울려 퍼진다. “우리가 민주화 횃불 성회를 하는 이유는 이 나라 민주주의 꽃을 상징하는 것이오, 이 횃불과 같은 열기를 우리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우리 민족의 함성을 수습하여 남북통일을 이룩하자는 뜻이며 꺼지지 않는 횃불과 같이 우리 민족의 열정을 온 누리에 밝히자는 뜻입니다.”라고 외치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그 당시 상황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그 투쟁이 있었기에 현재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자리 보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5·18 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42주년이 되지만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이 진상규명되지 않고 있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진실은 답이 없고 30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뼈아픈 현실만이 존재한다.           

  조금 오르니 31세에 생을 마감한 윤상원 숲이 나온다.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지만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운동가의 길을 걸었던 오월 광주의 영원한 대변인이다. 그는 ‘진실된 삶, 정의로운 사회,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열사의 흉상 앞에서자 누군가가 시작하여 다 함께 부르는 “님을 위한 행진곡”노래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윤상원 열사와 박기운 열사의 영혼결혼식 넋풀이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노래는 해외에서도 불의에 저항하는 상징적 노래가 되었다. 들불야학을 이끌었던 박기순 열사와 5·18 민주항쟁 시민군 대변인으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켰던 윤상원 열사의 투쟁정신은 기리 남아 기억될 것이다.     


  김남주 뜰앞에 선다. 옥중에서도 굴하지 않고 시 쓰기를 했던 김남주의 시는 민중의 구호와 노래였다. 삶 자체가 시였고, 혁명가의 삶을 살았던 불굴의 전사였다. 체험적 삶 앞에 무엇을 논할 수 있으리. 시대적 아픔 앞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외면했던 시인에게 들려주는 「시인이여」를 들으며 시대를 논하지 못하는 시인은 진정한 시인이 아니라는 문구가 스친다.   


  교육지표 마당 조형물 앞에 선다. 비민주적 비인간적인 교육정책을 비판하고 교육의 민주화를 선언했던 내용을 가슴에 새기며 걷다 보니, 벽화 마당 ‘광주 민중항쟁도’ 앞이다. 5·18 민중항쟁의 공동체 정신과 가마솥에 밥을 짓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통일운동의 열망을 담은 백두산 천지와 팔짱을 낀 청년의 그림은 학생운동의 열망이 들어있다. “혁명 광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월은 해년마다 오지만, 시대적 상황은 더 이상 나아지지 않고 있다.     


  5·18 광장 앞에 선다. 1980년 봄, 학생과 시민들이 민주화를 외쳤던 곳이다.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주의 확립 등의 시위를 했던 곳이다. 꽃 피우지 못하고 져버린 젊은 민족·민주 열사를 기억하니, 그때의 민주화 열망과 함성이 귓전을 맴돈다.   이제 광주를 이야기하면 이 정의의 길을 빼놓을 수 없으리라. 광주 민주화운동의 성지, 교정을 통과하며 이 길을 가슴에 품는다.      


  오치 굴다리를 지나 천지인(天地人) 문화소통길을 향해 걸으면서도 정의의 길에서 만난 민주화운동의 여운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문흥동 성당을 지나 각화마을에 도착하기까지 끊어진 길을 연결한 무돌 완성길은 광주역에서부터 시작하여 8.2km다. 짧은 길이지만 마음의 길이는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5·18 정신의 의미깊은 길이다.          


  지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무등산 자락의 천년문화를 걸어서 갈 수 있는 아름다운 무돌길. 무돌길만큼 의미 깊고 열망 가득한 길은 어느 곳에도 없으리라. 무등 정신이 가득한 51.8km를 걸어 완성길 8.2km를 향하여 마무리 짓는 무돌길 완주를 꿈꿔본다. 무등(無等)에 이르는 길, 민주화운동의 성지 순례길이 하루빨리 정착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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